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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일들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 기자말

누구나, 어디에 살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면 습관적으로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살고 있는 집이 어디쯤인지 찾아보게 된다. 나도 그랬다. 서울에 살 때나, 지금 살고 있는 신도시에서나, 높은 곳에 올라가면 우리집을 찾곤 했다.

혜화동 인근에 집을 마련한 뒤 서울의 옛지도를 자주 찾아보곤 했다. 창경궁과 혜화문 언저리를 손으로 짚어가며 이쯤이 우리집이군, 가늠할 때면 기분이 남다르다. 서울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나의 주거지는 대부분 4대문 바깥, 새롭게 형성된 신시가에 속해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파트 또는 빌라였다. 반듯반듯한 격자형 도로를 끼고 상가 건물들이 줄을 서 있고, 그 길을 질러서 집으로 들어가는 동선은 엇비슷했다. 상가의 간판 서체까지 대부분 비슷한 곳에서 주로 살았다.

이전 집주인 어르신의 아버님이 쓰셨다는 아주 오래된 장롱이다. 역사는 개인의 삶에도 흐른다.
 이전 집주인 어르신의 아버님이 쓰셨다는 아주 오래된 장롱이다. 역사는 개인의 삶에도 흐른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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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이곳이 예전에는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다. 어릴 때부터 살았으면 또 모를까, 집값에 맞춰 살기 편한 곳을 찾아 이사를 온 곳에서 옛모습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다.

지금 살고 있는 신도시로 이사 와서는 더 그랬다. 편의와 효용을 극대화한 신도시는 직장의 출퇴근과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위한 도구적 역할에 매우 충실했다. 바둑판처럼 잘 정리된 도로 위에서 잠시 정신을 놓으면 운전대를 잡고 이 길 저 길을 뱅뱅 돌아다녀야 한다.

블럭마다의 모습이 똑같아 지금 서 있는 여기가 어디인지 혼동이 될 때가 많았다. 그것 말고 이곳에서는 일상의 불편함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이런 현재의 편리함에 만족하며 살았을 뿐 옛 자취를 찾아보려는 생각을 거의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혜화동 인근에 살 곳을 마련하고 나니 내가 살아갈 집과 동네의 옛 모습이 궁금해졌다. 이사갈 집에서 가까운 병원과 관공서, 도서관, 맛있는 밥집, 미장원 등 편의시설 등을 찾아보면 끝이었던 때와는 사뭇 달랐다. 창경궁과 창덕궁이, 성균관이, 혜화문이, 한양도성이 모두 다 '우리 동네'의 경계 안에 들어와 있으니 더욱 그랬다.

마침 그무렵 나와준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서울편>을 읽는 재미도 각별했다. 그동안 내가 만들어온 책 중에 창덕궁, 창경궁을 다룬 내용들도 새삼스럽게 들춰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 서울의 옛지도다.

지도를 보고 있으면 내가 서 있을 서울이라는 땅에 배어 있는 시간의 지층이 한결 두텁게 느껴진다. 오래 되었다고 해봐야 몇십 년 세월에 익숙한 내게 몇백 년의 시간이란 말할 수 없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땅에 내가 발을 딛고 살게 되었다는 사실이, 표표히 흐르는 역사의 한귀퉁이에 발을 딛고, 일상을 누린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경이롭게 느껴졌다.

역사란 바라보는 대상일 뿐, 내가 그 안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조선시대 역사, 일제강점기의 역사와 오늘의 나의 접점을 떠올리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 역시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혜화동 인근에 집을 마련했다고 하자, 현대사를 공부하신 선생님은 3.1독립운동 당시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해주셨다. 또 어떤 분은 조선시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풍류에 대해 말씀해주시고, 이곳에서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다녔다는 선생님은 예전 캠퍼스 풍경부터 1960년대 술 마시고 돌아다녔던 뒷골목 정취를 풀어놓으시며 한참을 이야기에 취해 계셨다.

그분들 역시 혜화동에 흘렀던 시간, 당신들과 함께 흐르던 그 시간, 그리고 지금, 오늘 삶의 무대로 여전히 존재하는 이곳에서의 시간을 쌓아가고 계신다. 평생 종로구민이셨던 이전 집주인 어르신께도 이곳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쌓였을 것이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이야기는 이것이다. 아주 오래된 한옥 한 채를 만났고, 이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내게 존경하는 어른 한 분은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혜화동이 서울 동쪽 작은 문인 혜화문(惠化門)에서 나온 이름일테지요. 동소문의 본래 이름은 넓을 홍(弘)자 쓰는 홍화문(弘化門)이었답니다. 창경궁이 지어지고 그 정문을 홍화로 쓰는 바람에 혜화로 고쳤다지요. 그곳에서 시작하는 일이, 작지만 널리 퍼지는 성과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조선 시대부터 있던 혜화문은 일제 시대 헐렸다. 지금 있는 건 1990년대 새로 지어졌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오가는 길, 일상의 풍경 속에 역사가 흐르고 있고, 이름 자 안에 새겨진 유래에 우리 역사의 간난신고가 배어 있다.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직장 가까운 곳을 좇아 살 곳을 찾아다녔던 내게도 물론 나의 역사는 존재했으며, 지금도 흐르고 있다. 하지만, 가늠하기 어려운 몇백 년 전부터 같은 자리에 오롯이 들어앉은 혜화동에 흐르는 이 역사에 발 한 쪽 들이밀고, 새로운 시간을 쌓아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저절로 각별해진다.

이사를 오려면 아직 멀었다. 그때까지 집은 늘 비어 있다. 간혹 빈 집의 문을 열고 가만히 들어가 앉아 있다 나와 동네를 하릴없이 돌아다니곤 했다. 이 집에 새로 쌓일 역사는 무엇이 될 것이며, 나의 역사는 또 어떻게 흐를 것인가.

1936년, 처음 이 집 쪽마루가 되었을 때만 해도 나무향 진하게 풍겼을 것이다.  이 나무들에게도 역사는 흐른다.
 1936년, 처음 이 집 쪽마루가 되었을 때만 해도 나무향 진하게 풍겼을 것이다. 이 나무들에게도 역사는 흐른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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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되었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BYOUNG CHO』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태그:#작은한옥수선기, #서울옛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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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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