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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에 도착할 그곳

마리아호세가 아주 오래된 거라고 찍으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이름을 모르겠다.
 마리아호세가 아주 오래된 거라고 찍으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이름을 모르겠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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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 3km를 남겨두었을 때 우연히 스페인 선생인 마리아호세(Maria Jose)를 만났다. 그녀는 그녀답게 예쁜 길고양이 두 녀석에게 정신을 빼앗기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이틀 전에, 사리아(Sarria)로 가는 길이 달라서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에서 헤어졌다. 

내내 길동무를 하다가 내가 묵어야할 알베르게에 왔을 때 그녀가 물었다. "노휘, 너는 언제 즈음이나 산티아고에 도착할 것 같니? 다음 주 화요일일 것 같아, 아니면 수요일이 될 것 같아?"

그녀의 질문에 깜짝 놀랐다. 벌써 그렇게 된 것이다. 걷기만 했지 도착하려면 까마득히 먼, 내게는 몇 주를 더 걸어야 도착할 곳이었다. 더군다나 물집과 발목 통증이 언젠가는 도착할 그곳을, 영원히 먼 '그곳'으로 만들어 놓았다(나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 끝에 새로운 시작이 있을지언정).

나는 더듬더듬 남은 km와 요일을 짚어나갔다. "오늘 토요일이니, 일요일도 걷고 월요일도 걷고 화요일도 걸어서 수요일이나 도착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내가 목적지에 이렇게 일찍 도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이따 차분히 거리 계산을 해볼 작정이야."

다음 주에 도착할 수 있다니…. 벌써 이렇게나 많이 걸어온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를 활기 차게 했다. 내 몸은 가뿐했고 어떤 통증도 느낄 수 없었다. 마리아호세와 나는 혹시 모를 이별을 위해서 메일 주소를 교환했다. 그녀는 오전 늦게 걷기 시작했다. 오늘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9km를 더 가야한다고 했다.

단거리 도보자와 장거리 도보자 구별법

말 탄 시민 경찰. 어제 가이타 연주하는 남자가 이들이 굉장히 거칠다고 했지만 나는 대놓고 사진을 찍었다. 와일드한 그들이 '부엔 까미노'라고 말했다.
 말 탄 시민 경찰. 어제 가이타 연주하는 남자가 이들이 굉장히 거칠다고 했지만 나는 대놓고 사진을 찍었다. 와일드한 그들이 '부엔 까미노'라고 말했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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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아(Sarria)에서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까지 거리는 정말 사람들이 많다. 앞뒤로 눈을 돌리면 쉽게 걷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특히, 단체 순례자들이 많다. 우리나라처럼 중년 여성들이 '계'를 들어 여행하는 것처럼 연령이 비슷한 여자들이 끼리끼리 수다를 떨면서 걷는 풍경도 흔하다. 삼삼오오 걷는 청소년들도 많다. 청소년들은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따라 부르면서 걷곤 한다. 어쩜 우리나라 학생들과 똑같을까 싶다.

하지만 짧은 거리를 걷는 사람과 먼 거리를 걸어온 사람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피부 색깔이다. 종아리가 새까맣게 탄 사람과 하얀 사람. 팔뚝이 탄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 장거리 순례자들은 무거운 배낭을 대부분 끝까지 짊어지고 간다. 길가에서 자주 쉬기도 해서 그리 깨끗한 편이 아니다. 신발도 먼지투성이 일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거리 순례자들은 대부분 배낭을 다음 목적지까지 보내는 서비스를 이용한다. 옷차림도 상큼하고 향수까지 뿌린 이들도 있다.

바에 갔을 때도 분간할 수 있다. 신발을 벗는 사람과 벗지 않는 사람. 발가락에 한두 군데 밴드를 붙이거나 발목 보호대를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길
 길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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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주고받는 인사도 차이가 있다. 인사는 약간의 변천사를 거쳤다. 생장(ST. Jean Pied de Port)에서 출발해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에 도착할 때까지는 대부분의 사람이 '봉주르(Bonjour)'라고 한다. 프랑스 영역인 것이다.

그러다가 이틀째 되는 날부터는 스페인어로 '올라(Hola)'라고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바뀌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따라하면 된다. Hola는 가볍게 '안녕'이라는 뜻이다. 더 정중한 표현도 있지만 쉽고 어감이 좋아선지 사람들이 '올라'를 더 많이 외친다.

그리고 하나 더 '그라시아스(Gracias)'를 알아두면 좋다. 감사합니다, 라는 의미이다. 까미노를 걷는 사람들이 또 공통적으로 나누는 인사는 '부엔 까미노(Buen Camino)'이다. 즐거운 여행되라는 말이다. 여행 중에서도 산티아고를 향하는 '까미노(길)'이니, 그 길을 가는 동안 무사하게 완주하라는 뜻이다.

걷다가 뒤따라오던 사람이 지나쳐 가면서, 바에 앉아 있던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Buen Camino!'라고 외치거나 'Hola!'하면 된다. 그러다가 느낌상 무슨 좋은 말을 길게 한다 싶으면 '그라시아스'라고 덧붙여준다(너무 단순한가?).

영어를 못하는 스페인 사람들이 많다. 몸 언어로 어느 정도 소통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언어는 '웃음'이 아닐까 싶다. 인사하면서도 웃고 못 알아들어도 웃고(내가 살아남은 이유이다).

그런데 그 웃음도 사리아에서부터는 사람이 워낙 많다보니 인색해진다. 몇 주 동안 걸으면서 땀 냄새 풍기며, 발목 아파가며, 물집 잡혀 고생하며 걸었다는 동지의식을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이들과 나누는 게 어색해진다. 그래서 초창기 때 봤던 사람을 만나면 얼싸안고 안부 묻기에 바쁘다.
십자가와 순례길 표지석
 십자가와 순례길 표지석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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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호세와는 내가 걷기 시작한지 열아홉째 날 무리아스 데 레치발로 황토 알베르게 저녁식사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그 뒤부터는 만날 때마다 얼싸안으면서 안부를 물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20일 휴가라 레온에서 시작했고 그 기간 안에 산티아고에 도착해야 했다.

알베르게 앞에는 스페인 청년 세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어제 머물고 싶었던 알베르게에 빈 침대가 없어서 1km를 더 갔던 트라우마가 있었다. 이곳에서도 혹시, 어떤 좋지 않은 상황과 부딪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이런 불안을 마리아호세가 시원하게 풀어줬다. 스페인어로 물어봐줬기 때문이다. 스페인 청년들은 1시에 알베르게가 문을 연다고 했다. 20분만 기다리면 되었다. 

나는 9km를 더 간다는 그녀를 배웅하고는 1시에 문을 연다는 알베르게 앞에서 30분 기다려서 들어갔다. 오늘 제일 잘 한 것 중 하나는 발목 통증이 오기 전에 걸음을 멈췄다는 것이다. 이른 아침인 5시 40분부터 12시 40분까지 길 위에서 보냈다. 25.67km를 걸었으니 결코 짧은 거리도 그렇다고 긴 거리도 아니다. 예전 같으면 욕심 부리느라 더 걸었을 것이다. 이제는 멈출 때는 과감하게 멈춘다. 내게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가 끝이 아니다. 그곳에서 또 새로운 길을 시작할 것이다.

마틴에게 선물 받은 발목 보호대

포르토마린(Portomarin)
 포르토마린(Portomarin)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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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잤던 페나(Pena)도 이곳 만큼이나 시골 마을이었다. 그곳 알베르게에 네델란드 출신 마틴이 뒤늦게 들어왔다. 채식주의자인 이스라엘 아가씨와 동행했다(거의 그녀를 안내하면서 왔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는 나를 기억하는지 어떠한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이름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1,800km를 걷는 사람(지금은 2,000km가 되겠지만)을 어떻게 잊을까. 나는 반갑게 그에게 인사를 했다. 예전에 올려놓은 SNS까지 보여줬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습관처럼 왼쪽 발목을 주무른다. 그걸 보던 마틴이 발목 보호대를 꺼내 내게 건넸다. 내 것을 보여주며 나도 있으니 필요 없다고 하자 그는 자기 것이 더 효과가 있다고 가지란다. 그는 이미 몸이 아플 만큼 아파서 더 이상 필요 없단다.

다시 돌려주지 못하고 받았다. 남이 신던 양말 같아서 솔직히 꺼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2,000km를 걸었던 사람의 발목 보호대라 그 효험이 뛰어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상징적인 의미로 말이다.

새벽에 일어났을 때 그는 사라졌다. 누군가가 코를 골았을까. 아니면 배드버그 때문일까.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배드버그에 물렸다. 손목에 땀띠처럼 볼록 튀어나온 자국이 있더니 간지러웠다. 팔뚝에도 몇 개 있었다. 쪽진 머리에 둥근 얼굴에 찢어진 눈을 한, 흑백 사진에서나 마주할 것 같은, 한국여자보다 더 전형적인 한국형 얼굴을 한 필리핀 출신 안주인이 떠올랐다. 영어를 아주 유창하게 해서 출신을 물어봤더니 필리핀이라고 했다. 그녀의 남편은 스페인 사람이었다. 농가 서너 채 있는 곳에서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이들 부부를 볼 때 나는 굉장히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주인 여자 얼굴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자꾸 그녀의 삶이 궁금해졌다. 쓸데없이 굴곡진 인생이 그려졌다.

나는 잡생각을 떨치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깨끗하게 청소를 해도 배드버그가 나오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겠다. 다행히 벌레가 문 자국은 간지럽지 않고 곧 흔적만 남기고 들어갔다. 고마운 배드버그였다.

이른 아침 바 풍경
 이른 아침 바 풍경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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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곤데 알베르게

오늘도 나는 침대를 배정받았다. 리셉션에서 준 일회용 침대 시트를 깔고 일회용 베개피를 베개솜에 끼워넣었다. 남자 다섯 명에 여자 한 명. 여자 한 명이 나였다. 시골 알베르게에 묵으면 이런 경우가 많다. 어제 같은 방에서 잤던, 마틴 외에 퍽이나 지적이면서도 잘 생기고 도도한 아일랜드 남자가 내 옆 침대를 차지했다.

어제 내가 알베르게에 들어갔을 때 그는 나이 든 순례자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노숙한 목소리와 잔뜩 격식 차린 말투 때문에 대체 어떤 남자인가 호기심이 생겼던 인물이었다. 처음에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어 40대 후반이나 되는 줄 알았다. 2층 침대에서 내려온 그는 20대 초반 청년이었다. 격식 차린 말투가 아닐 때는 그 나이 또래의 음성으로 변했다. 그래서 그를 다시 한번 더 쳐다봤던 기억이 있다.

그는 내가 독서하고 있는 야외 의자로 왔다. 그의 손에도 책이 들려 있었다. 나는 일이 있는 사람처럼 일어났다. 내가 일어서자 살짝 얼굴을 찡그린 그가 보였지만 그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5분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순례자 정식을 시키고는 와인 한 병을 비우고 있었다. 그가 들어오더니 그도 와인 한 병을 시켜서 친구와 함께 마셨다. 내가 일어났을 때 그의 얼굴도 목소리도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어슬렁어슬렁 발을 절면서 축사가 많은 동네 한바퀴를 돌았다.

알베르게로 들어오는 길, 말끔한 차를 타고 온 아버지와 아들이 알베르게에서 도장만 받고 다시 사라져버렸다(이런 시골 알베르게가 아닌 호텔에서 잘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곳은 순례자에게 도장을 찍어주지 않는다). 꼭 저렇게라도 해서 완주증을 받고 싶을까. 이것도 누군가에게는 경력이 될 수도 있겠다. 얌체족은 어느 나라에나 있으니깐 말이다.

오늘이라는 오늘, 별의별 일들을  잔뜩 품은 해가 말끔한 차가 사라진 길 위로 침묵한 채 하산하고 있었다. 아일랜드 청년은 엷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나는 양치를 하고는 술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발바닥 소독하고 밴딩하는 작업은 시간을 많이 잡아 먹었다. 누구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침낭을 얼굴까지 덮은 나는 이상하게 새로운 사람에게 흥미를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반기는 사람은 사리아 이전에 만났던 사람뿐이었다. 스쳐지나가는 관계, 일회용처럼 짧은 만남, 형식적이고 잔뜩 격식 차림 만남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몸을 뒤척이며 오늘의 스위치를 끄자고 중얼거렸다. 답을 내리지 못할 많은 질문들. 현재진행 중인 많은 생각들. 드디어 다음 주에 산티아고에 도착한다. 도착한 뒤에는 생각을 정리하고 답을 내릴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끝나지 않을 길처럼 생각도 질문도 결코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기에…. 

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 , #프레그리노,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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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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