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처음'이 있다. 처음에는 부족하고 서툴지만 실수를 반복하면서 성장하게 마련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고 그냥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성공조차도 단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인 영화계에서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어쩌면 기적과 같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했다. 계속해서 비범한 영화들을 만들어내는 거장들의 첫 영화는 그들의 미래를 예견하고 있을까? 그래서 현재 생존해 있는 70세가 넘은 거장들의 첫 영화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들은 과연 떡잎부터 달랐을까? -기자의 말

리들리 스콧, 1937년 영국 출생... <결투자들>(1977)

 영화 <결투자들> 포스터.

영화 <결투자들> 포스터. ⓒ Paramount Pictures


리들리 스콧 감독만큼 장르 불문하고 꾸준히 완성도 높은 상업 영화를 만들어 내는 감독이 있을까? 그는 어느새 여든을 넘겼지만 그의 영화들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리들리 스콧은 광고계에서 10년 넘게 일을 하며 분야 최고의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테크니션이 되었고, 1977년 <결투자들>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계속해서 명작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의 데뷔작 <결투자들>은 폴란드 출신의 영국 소설가 조셉 콘래드가 쓴 단편 소설 <결투>를 각색, 아름다운 영상이 특히 인상적인 영화다(제국주의의 욕망과 야만성을 비판하는 소설을 여러 번 쓴 작가 조셉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프랑스 대혁명이 시민들의 승리로 끝나고 자코뱅파(로베스 피에르가 대표적 인물)의 공포정치가 프랑스를 지배하지만 그 기간은 짧고 강렬하게 막을 내린다. 1799년 혁명 발발 10년 후 코르시카 섬 하급 귀족 출신의 군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쟁취하고 프랑스의 첫 대통령이 된다. 영화는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은 1800년 프랑스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프랑스군 장교 알만드 듀베르(키이스 캐러딘)는 시장의 조카를 상태로 결투를 벌여 그에게 큰 상처를 입힌 또 다른 장교 가브리엘 페로(하비 케이틀)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페로는 듀베르가 자신을 모욕했다며 결투를 신청하지만 검술이 뛰어난 듀베르에 의해 손목 상처만 입고 결투는 흐지부지 끝이 난다. 마침표를 찍지 못한 그들의 결투는 이후로 15년간 지속된다. 15년 동안 다섯 번의 결투를 반복하면서 '결투'의 명분은 사라지고 서로를 향한 증오와 집착만 남게 된다.

"결투자는 만족을 원한다. 그는 명예에 굶주려 있다. 이것은 괴상한 욕망을 다룬 실화이다. 이야기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의 지배자가 된 해에 시작된다."

위의 문장은 자막이 아니라 내레이터의 목소리로 전달되는데, 내레이터는 전지적 시점의 화자로서 영화에 참여하지만 영화는 철저히 듀베르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듀베르의 눈에 비친 페로는 비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다혈질의 싸움꾼에 지나지 않는 데다 그가 말하는 명예 실추는 황당할 만큼 억지에 불과하다.

보나파르트주의자의 결투

 영화 <결투자들>의 한 장면.

영화 <결투자들>의 한 장면. ⓒ Paramount Pictures


듀베르와 페로는 같은 군인이지만 이들은 출신 배경도 외모와 성격도 동전의 양면처럼 다르다. 보나파르트의 극성 지지자인 페로에게 나폴레옹의 계속되는 승리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자부심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평민에 가까운 일개 군인이 제1공화국의 대통령이 되고 더 나아가 전 유럽을 정복하는 것은 개인의 신화를 넘어 정복의 상징이 되었다. 페로와 듀베르의 결투가 이어지는 15년이라는 시간동안 두 사람은 여러 전투에 참여하고 그 사이 나폴레옹은 몰락한다.

영화 속에서 페로와 듀베르의 결투는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스갯소리로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구경이 싸움구경이라고 흔히들 얘기한다. 명분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싸움 그 자체이고 사람들은 거기에 돈을 걸기도 한다. 한 번 시작된 결투는 한 사람의 죽음 전에는 끝을 맺지 못한다. 이에 대해 화자는 애초에 괴상한 욕망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19세기 프랑스 군인이 중요시하는 명예와 21세기 우리가 생각하는 명예를 똑같이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투와 명예가 과연 목숨을 걸 만큼 가치 있는가 하는 질문은 던질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는 <길 위의 생>에서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다. 일단 한 번 일어난 것은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그저 여러 가지 형태로 모양만 바뀌는 것으로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검과 총으로 겨루던 결투는 사라졌지만, 결투자들은 남았고 그들은 여전히 명예에 굶주려 있다.

오늘날 결투의 형태는 다양해졌다. 온라인에 한 번 뱉어진 말은 수많은 결투를 생산하고 이는 당사자들 간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말에 더 많은 동조를 얻었을 때 우리는 자신의 명분에 정당성이 있다고 믿는다. 증인들은 목격자인 동시에 참여자이기도 하다. 이들의 참여는 다시 또 다른 결투를 생산한다. 과거 죽음으로 끝나던 결투 못지 않게 현대의 결투 역시 허탈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차분하고 안정적인 미장센, 리들리 스콧의 진가

 영화 <결투자들>의 한 장면.

영화 <결투자들>의 한 장면. ⓒ Paramount Pictures


듀베르의 부드럽고 우아한 태도는 15년간의 지긋지긋한 싸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서야 진가를 발휘한다.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기 위해 결투에 임했던 듀베르는 페로의 목숨을 살려줌으로서 자신의 명예를 지킨다. 결투에서 져 본 적이 없는 페로가 뒤베르에게 패하고 언덕에 올라 떠오르는 해를 보는 마지막 장면은 압도적이다. 구름에 반쯤 가린 하늘에 그늘진 페로의 모습과 눈부신 태양이 대조를 이룬다. 급변하는 19세기 유럽, 몰락한 보나파르트주의자의 뒷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자연광과 은은한 조명, 18~19세기 회화를 그대로 가져온 듯한 완벽한 미장센과 의상은 이 영화를 보는 큰 재미 중 하나이다(영화를 보면서 큐브릭의 <배리 린든>을 떠올린 사람이 적잖을 것이다). 빠른 시간 내에 사람의 눈을 홀려야 하는 광고 일을 십년 넘게 했던 리들리 스콧의 첫 작품이 차분하고 안정적인 영상과 서사의 시대물이라는 점은 의외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첫 영화를 완성한 감독이 자신의 가능성을 제대로 증명한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리들리 스콧은 이 영화를 찍고 곧바로 미국 할리우드로 건너가 <에일리언>을 찍고 이어서 <블레이드 러너>를 연출했다. 매번 다른 주제의식과 장르를 오가면서도 영상과 서사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그의 영화들은 모두 한 사람의 작품이 맞나 싶을 만큼 놀랍다. 게다가 그의 영화들은 시대가 바뀌면서 계속해서 재해석되고 있다. 그는 이야기의 원작자가 아니지만(그는 직접 각본을 쓰는 감독은 아니다) 완성된 작품에서 그의 지분이 가장 높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든이 넘은 노장은 수십 편이 넘는 영화를 연출하고 100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했고 지금도 다음 영화를 준비 중이다.

2019년 개봉 예정인, 그가 연출로 참여하는 에일리언 후속편 중 하나는 이미 제작에 들어갔고 다른 두 영화들도 준비 중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계속해서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그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매번 결과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해내는 그가 새삼 대단하고 다음 영화는 어떨지 기대가 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거장 리들리 스콧 결투자들 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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