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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시티' 청산도를 온통 노랗게 물들인 유채꽃. 봄날 청산도는 유채꽃 풍경으로 연결된다. 지난 4월 15일 풍경이다.
 '슬로시티' 청산도를 온통 노랗게 물들인 유채꽃. 봄날 청산도는 유채꽃 풍경으로 연결된다. 지난 4월 15일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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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유채가 꽃물결을 이루는 봄날이다. 유채꽃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데가 완도에 딸린 섬 청산도다. 청산도의 유채꽃도 절정을 맞았다. 얼마 전엔 '슬로시티'가 청산도를 넘어 완도 전역으로 확대 지정됐다는 소식도 들렸다.

완도 청산도가 슬로시티로 지정된 건 지난 2007년. 인증 이듬해인 2008년 청산도를 찾은 여행객이 8만8000명이었다. 지난해엔 34만4000명으로 늘었다. 10년 동안 4배 이상 늘었다. 뭍이 아닌, 섬임을 감안할 때 어마어마한 수치다. 그럼에도 슬로시티 취지에 어긋나지 않게 보존과 개발을 계속하면서 청산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슬로시티로 자리매김했다.

청산도를 찾은 여행객들이 유채꽃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하늘거리고 있다. '봄의왈츠' 세트장으로 오가는 유채꽃길은 봄날 청산도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지난 4월 15일이다.
 청산도를 찾은 여행객들이 유채꽃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하늘거리고 있다. '봄의왈츠' 세트장으로 오가는 유채꽃길은 봄날 청산도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지난 4월 1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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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청산도의 돌담. 그 길을 따라 마을주민이 걷고 있다. 지난 4월 15일 당리에서다.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청산도의 돌담. 그 길을 따라 마을주민이 걷고 있다. 지난 4월 15일 당리에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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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가 좋다는 건,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다 인정을 한다. 미처 가보지 않은 사람도, 언젠가는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섬이다. 여러 번 찾아가도 좋은, 갈 때마다 감동을 선사해주는 섬이 청산도다. 사철 언제라도 멋진 섬이다.

유채꽃과 어우러지는 봄에 가장 아름답다. 샛노란 유채꽃이 파란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져 황홀경을 연출한다. 유채밭을 감싸고 있는 돌담길도 다소곳하다. 봄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와 마늘밭도 정겹다. 산자락에서 계단을 이루는 다랑이 논도 애틋하다.

청산도에서 슬로걷기축제도 열리고 있다. 지난 4월 7일 시작됐다. 어린이날 대체휴일인 5월 7일까지 계속된다. 축제에는 달팽이수레와 소달구지 체험, 서편제 마당극, 슬로길 버스킹, 청산도 향토문화 전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축제는 중요하지 않다. 청산도를 뉘엿뉘엿 걸으면서 느림과 쉼을 체험하는 것으로 족하다. 슬로길은 모두 11개 코스 42.195㎞로 이뤄져 있다. 마라톤 풀코스와 같은 거리인 만큼, 빨리 걷기보다 각자의 여건과 체력을 감안해 천천히 걸으면서 청산도의 봄을 만끽하면 된다.

청산도의 마을 풍경. 마을마다 집집마다 형형색색의 지붕으로 색칠돼 있어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청산도의 마을 풍경. 마을마다 집집마다 형형색색의 지붕으로 색칠돼 있어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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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사는 섬' 청산도답게 도락리에서 경운기를 만났다. 지난 4월 15일이다. 청산도에선 마을주민은 물론 여행객까지도 덩달아 더디 걷게 된다.
 '느리게 사는 섬' 청산도답게 도락리에서 경운기를 만났다. 지난 4월 15일이다. 청산도에선 마을주민은 물론 여행객까지도 덩달아 더디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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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5일 일요일 청산도에 갔었다. 하루 종일 1코스와 2코스를 걸으면서 걸으면서 놀고, 쉬면서 걸었다. 도청항 앞의 옛 청산도 번화가도 하늘거렸다. 뭍에선 미세먼지 자욱하다고 아우성이었지만, 그런 줄도 몰랐다.

청산도 슬로길 1코스는 배가 닿는 도청항에서 시작된다. 골목이 갤러리로 변신한 도락리를 거쳐 유채꽃 만발한 서편제 촬영지, 봄의왈츠 세트장을 거닐었다. 화랑포 갯돌밭에서도 오래 머물렀다. 연애바위, 당리재, 읍리를 거쳐 청산진성을 돌아 나오는 걸로 마무리했다.

하루 종일 10㎞쯤 걸었다. 일상의 속도로 걸으면 2시간 남짓이면 충분했을 거리다. 오전 10시 청산도에 도착했고, 오후 6시에 나왔으니 꼬박 8시간 동안 걸으면서 하늘거린 셈이다.

'슬로시티'의 상징인 달팽이 조형물. 당리마을에 세워져 있다. 그 너머로 노란 유채꽃밭과 도락리 해안과 여객선이 드나드는 도청항이 보인다.
 '슬로시티'의 상징인 달팽이 조형물. 당리마을에 세워져 있다. 그 너머로 노란 유채꽃밭과 도락리 해안과 여객선이 드나드는 도청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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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드라마 '피노키오' 세트장. 드라마 속 주인공 이종석과 박신혜의 설레는 만남이 그려진다. 당리에서 화랑포로 가는 길에 자리하고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 '피노키오' 세트장. 드라마 속 주인공 이종석과 박신혜의 설레는 만남이 그려진다. 당리에서 화랑포로 가는 길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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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에 들어가기 전부터 결코 걸음을 재촉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다. 유채꽃밭 사이를 걸을 땐 감탄사를 연발하며 사진을 찍었다. 유채꽃도 몇 개 따서 먹어봤다. 청보리밭에선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어봤다.

서편제길의 당집에 올라서니, 바람이 거셌다. 그 바람에 맞서 환호를 하며 도락리 포구와 도청항을 내려다봤다. 봄의왈츠 세트장 옆 쉼터에서 커피도 사서 마셨다. 섬 풍광을 배경으로 마시는 커피는 향긋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 드라마 '피노키오' 세트장에선 드라마의 주인공 이종석과 박신혜가 돼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둘 사이의 설레는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화랑포 갯돌밭에선 바닷가로 떠밀려 온 다시마와 가사리, 톳을 건졌다. 바다고둥과 보말, 군부도 잡았다. 갯돌로 돌탑을 쌓고, 작은 돌을 골라 물수제비를 뜨기도 했다. 준비해 간 간식도 먹었다.

숲길에서 만난 산딸기꽃, 가시나무꽃과도 눈을 맞췄다. 보리수나무의 열매도 따서 먹었다.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와 이야기도 나눴다. 하루해가 짧았다. 시간가는 줄 몰랐다. 느리게 걸을수록 더 보였고, 더 느껴졌다. 그만큼 섬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섰다.

청산도의 갯돌 해변. 바닷가로 떠밀려 온 다시마와 가사리, 톳을 만날 수 있다. 바다고둥과 보말, 군부도 보인다.
 청산도의 갯돌 해변. 바닷가로 떠밀려 온 다시마와 가사리, 톳을 만날 수 있다. 바다고둥과 보말, 군부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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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에서 면면이 이어져 온 초분. 지금은 보기 드물지만, 그래도 간간이 행해지고 있다. 지난 2009년 5월 치러진 초분장례 모습이다.
 청산도에서 면면이 이어져 온 초분. 지금은 보기 드물지만, 그래도 간간이 행해지고 있다. 지난 2009년 5월 치러진 초분장례 모습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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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엿뉘엿 걸으면서 눈여겨볼만한 것도 청산도에 지천이다. 먼저 초가로 만든 임시무덤, 초분이다. 청산도에서는 지금도 간혹 초분이 행해지고 있다. 운이 좋으면 실제 초분을 만날 수 있다. 슬로길에 부러 전시용 초분을 몇 기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초분은 오래 전 섬마을에서 행해졌지만, 지금은 거의 사라진 장례풍습이다. 시신을 땅에 묻지 않고 볏짚으로 가묘를 만든 다음, 3〜4년 뒤에 뼈만 골라 매장하는 풍습이다. 청산도 사람들은 예부터 초분 풍습을 면면이 이어왔다.

초분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한없이 번거로운 풍습이다. 초분과 본장, 두 번의 장례를 치러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산도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세속에 찌든 육신을 땅에 바로 묻는 건 땅의 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다.

뭍의 시선으로 보면 비위생적일 수 있지만, 청산도 사람들은 초분이 더 위생적이라고 생각했다. 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탓에 부고를 접하지 못한 가족에 대한 배려도 담겨있다. 초분은 섬사람들의 지극한 효심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청산도의 옛 문화와 역사가 서린 도청항 안쪽 골목. 고등어와 삼치 파시가 섰을 때 호황을 누렸던 요정과 여관, 다방이 모여있었다.
 청산도의 옛 문화와 역사가 서린 도청항 안쪽 골목. 고등어와 삼치 파시가 섰을 때 호황을 누렸던 요정과 여관, 다방이 모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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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의 속살은 마을주민들이 보여준다. 청산진성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할머니는 여행객이 건넨 말에 모두 대꾸를 해주었다.
 청산도의 속살은 마을주민들이 보여준다. 청산진성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할머니는 여행객이 건넨 말에 모두 대꾸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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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마을의 구들장논은 농업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구들장논은 식량이 귀한 청산도에서 농사를 지으려고 땅에 구들을 깔아 만든 논을 일컫는다. 상서마을의 돌담길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진산 갯돌해변은 해돋이, 지리 청송해변은 노을로 황홀경을 연출한다.

청산도 도청항의 안쪽 골목에선 193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청산도의 옛 문화와 역사를 엿볼 수 있다. 당시 청산도에서 열렸던 고등어와 삼치 파시의 흔적도 만난다. 선원들이 드나들어 호황을 누렸던 요정과 여관, 다방도 여기에 모여 있었다.

당리마을에 복원된 청산진성에선 유채꽃과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도락리와 당리, 읍리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언제라도 좋은 섬, 마음의 여유를 갖고 봄날에 찾으면 더욱 아름다운 섬 청산도다.

청산진성의 성곽에서 내려다 본 도락리 해안 풍경.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유채꽃이 해안가를 따라 피어 있다.
 청산진성의 성곽에서 내려다 본 도락리 해안 풍경.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유채꽃이 해안가를 따라 피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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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청산도, #슬로시티, #봄의왈츠, #피노키오, #유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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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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