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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어른을 처음 보더라도 조잘조잘 할 말을 아주 잘하는 어린이가 있습니다. 이런 아이를 만나기란 매우 드물지만,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낯익은 어른한테도 좀처럼 말을 잘 못하는 어린이가 있습니다. 때로는 제 어버이한테조차 사근사근 말을 못 붙이는 어린이가 있을 테지요.

눈치를 보느라 말을 못 붙일 수 있고, 어떻게 말해야 하는 줄 몰라서 말을 못 꺼낼 수 있습니다. 언제 말해야 하는가를 모를 수 있고, 따로 말을 하지 않고 혼자 풀고 싶을 수 있습니다.

아줌마가 청소를 하고 있다. "저……." "응? 왜 그러니?" "아니에요." 아직 참을 수 있을 거 같다. (2쪽)
겉그림
 겉그림
ⓒ 그림책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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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어떡하지?>(팽샛별, 그림책공작소, 2017)는 그린이가 여덟 살 적에 겪은 일을 바탕으로 어린이 마음이란 무엇일까를 가만히 드러냅니다.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어린이를 앞둔 어른은 어떤 매무새가 되어 이 마음을 읽어 주면 좋을까 하는 뜻도 넌지시 드러냅니다.

아이들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 대서 말을 잘 하도록 다그쳐야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기만 해야 하지도 않아요. 때로는 어른으로서 말없이 가만히 자리를 비켜 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 아주 찬찬히 '내 마음을 똑똑히 밝혀서 내가 하고픈 일을 하는 길'을 가도록 이끌어 주어야지 싶어요.

휴, 살았다. 겨우 빠져 나왔네. 하마터면…… 아, 놀이터 화장실! (16쪽)
아…… 어떡해! 나 정말 급하단 말이야. (18쪽)
속그림. 집까지 가는 길이 멀다.
 속그림. 집까지 가는 길이 멀다.
ⓒ 그림책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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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떡하지?>에 나오는 아이는 학교에서 뒷간에 들르지 못합니다. 집에 가려다가 쉬가 마렵네 하고 느끼는데, 마침 뒷간을 청소하는 어른을 마주하면서 말을 못 합니다. 그래도 "저 쉬 좀 눌게요." 하고 말하면 좋으련만, 아이는 '뭐, 집까지 곧 갈 테니까 괜찮겠지.' 하고 여겨요.

그런데 정작 학교를 나서고 보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건널목은 너무 길고 더딘 듯합니다. 아까 아주머니한테 말을 걸어 볼걸, 또는 아까 아주머니가 청소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릴걸, 하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집으로 가는 길에서 수다쟁이 동무를 만나 붙들립니다. 공원 뒷간을 떠올리지만 잠겼습니다.

참말로 공원 뒷간이 잠기는 일이 잦더군요. 저도 아이들을 이끌고 시골 읍내 공원이든 도시에 있는 공원이든, 공원 뒷간에 가려다가 잠긴 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돌아서야 한 적이 잦습니다. 숫자를 세며 쉬를 참던 아이는 집 앞까지 이르지만 아슬아슬합니다.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합니다. 비는 왜 와서 오늘 하루가 이다지도 기냐고 하늘에 대고 따집니다.

아이는 얼마나 괴로울까요. 낯가림을 하느라 다른 어른한테 말을 섣불리 못 건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요. 그야말로 '어떡하지?' 하는 생각을 거듭거듭 할밖에 없습니다.

아, 맞다…… 비가 오지. 하느님, 부처님 밉다고 한 거 취소! (30쪽)
속그림. 말 못 하고 쉬를 참는 아이는 자꾸 작아진다.
 속그림. 말 못 하고 쉬를 참는 아이는 자꾸 작아진다.
ⓒ 그림책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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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말하기 어려운 아이들이라면 "아직 다 말하지 않아도 돼." 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으리라 생각해요. "앞으로 즐겁게 말하는 길을 찾아보자." 하고 이야기를 붙일 수 있어요. 아이들이 힘들게 여기는 대목을 어른으로서 먼저 더 깊고 넓게 살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왜 말을 못할까 하고 가만히 생각을 기울여 보면서, 어른이기 앞서 어린이로 살던 지난날을 되새기면서 눈앞에 있는 이 아이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데 마음에서 입밖으로 못 터뜨리나를 헤아려 보면 좋겠어요.

이러면서 아이들한테 어느 때에 어떻게 말하면 되는 줄 찬찬히 일러 주어야겠지요. 아직 아이들은 때랑 곳에 맞게 말을 하는 길을 모를 만하거든요. 아이가 좀 틀리게 말해도 대수롭지 않고, 때때로 뚱딴지 같은 말을 해도 대수롭지 않아요. 말문을 여는 아이는 이 아이대로 말길을 어떻게 트면 좋을까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요. 말문을 못 여는 아이는 이 아이 나름대로 앞으로 어떻게 마음을 열어 말로 지으면 좋을까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있든 저런 일이 있든, 모두 걱정할 일이 없다고 다독여 주면 좋겠어요. 아이가 비에 젖은 옷차림으로 집에 돌아와서 이 옷을 빨래해야 하든, 그만 옷에 쉬를 해서 젖은 옷을 빨래하든 똑같아요.

넘어진 아이도, 넘어지지 않은 아이도 사랑스럽습니다. 쭈뼛거리는 아이도, 야무진 아이도 사랑스럽습니다. "어떡하지?" 하는 낯빛인 아이들 마음을 읽는 어른이 늘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어떡하지?>(팽샛별 / 그림책공작소 / 2017.12.26.)



어떡하지?

팽샛별 지음, 그림책공작소(2017)


태그:#어떡하지, #팽샛별, #그림책, #어린이책,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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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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