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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파피루스 그림, Source: Khan Academy
▲ Page from the Book of the Dead of Ani 이집트 파피루스 그림, Source: Khan Academy
ⓒ British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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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무덤의 벽화에 그려진 인물의 묘사는 독특하다. 일단 사람의 신체 부위가 모두 그려져 있다. 머리, 몸통, 팔, 다리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 한결같다. 얼핏 보면 얼굴은 옆면이므로 옆모습을 그린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몸통은 앞면이다.

덕분에 양쪽의 팔과 다리가 모두 보이지만 팔과 다리는 또 옆에서 본 모습이다. 심지어 양 발은 모두 엄지 발가락이 먼저 보여 같은 쪽 발만 2개 그린 모습이다. 무언가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이다. 벽화로 대표되는 이집트 예술의 이러한 특징은 실제 이집트 벽화보다는 보존상태가 좋고 섬세하고 정교하게 표현된 파피루스 그림을 통해 보다 더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그리스 화병 그림. Source: Smarthistory
▲ Noibid Krater 그리스 화병 그림. Source: Smarthistory
ⓒ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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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그림은 화병에서 발견된다. 얼굴이 모두 옆면인 것은 이집트 벽화와 비슷하지만 보다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모습이라는 것이 확연히 구분된다. 몸통이 정면을 향한다면 다리도 정면에서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 팔은 옆에서 본 모습을 고수하고 싶었으나 인위적으로는 보이지 않도록 허리에 손을 얹은 포즈로 영리하게 처리했다.

가장 큰 특징은 어쩌면 발이다. 앞에서 보이는 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비록 발의 전체적인 모습이 드러나진 않지만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 몸통까지 옆모습인 인물은 반대편의 팔은 보이지 않으므로 아예 그리지 않거나 양 팔이 모두 보이도록 포즈를 취한 모습으로 그렸다. 옆에서 보이는 발 또한 한 발은 엄지발가락, 한 발은 새끼발가락부터 그려 차이가 있다.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그의 책 'The Story of Art'에서 이집트 벽화와 그리스 화병에서 보여지는 그림의 차이를 '아는 대로' 그린 것과 '보이는 대로' 그린 것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이집트 벽화는 공식에 따라 그린 그림처럼 모든 인물이 한결 같은 모습이다. 어차피 인물의 특징적인 묘사에는 큰 관심이 없고 그저 사람이라는 것만 확실히 보여주고자 한다.

단, 사람의 모습은 반드시 완결성을 띠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한눈에 사람의 신체부위가 모두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만든 공식이 바로 얼굴은 옆면, 그러나 눈은 정면, 몸통은 정면, 팔과 다리, 발은 옆면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집트 벽화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그려진 것이고 이를 위해 모든 그림이 공식에 따라 그려져야 했던 것이다. 그 목적이라는 것은 이집트 벽화가 무덤에 그려진 것이라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이집트의 무덤은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과 사후 세계로의 연결을 위한 기능을 보여주는데, 특히 무덤에서 발견된 조각과 그림은 사후 세계로 가는 것을 돕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그림을 보는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 영혼이 되는 것이고 그 영혼이 사후 세계로 가기까지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기능을 하고자 사람의 모습이 최대한 온전히 잘 드러나도록 그림이 그려진 것이다.

반면 그리스 화병의 인간의 모습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그려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화병의 용도가 일상 생활 속에서의 장식적인 요소로 역할하므로 이집트 벽화와는 달리 아름답게 그리고자 하는 의도가 보여진다. 특히 나체와 근육, 역동적인 모습을 좋아하는 그리스인들의 특징답게 가운데 남자의 몸통은 근육이 드러나고 자신 만만한 포즈는 인물의 성격까지도 짐작케 할 정도이다. 한결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모습이며 아름답다고 느끼고 감탄을 하게끔 그려진 것이 확실해 보인다.

또한 특정한 맥락에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등장 인물이 제 각각 동떨어져있는 듯한 모습은 그저 인간 형태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던 듯 보인다. 말 그대로 그저 아름답게 보이고자 그려진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스인들에게 인간이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여겨졌고 따라서 그들에게 신이란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 그대로임에 틀림없을 것이란 생각까지 들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그림에서 이집트 그림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확실히 보이고 그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두 개의 그림이 상반된 것으로 보여지고, 심지어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더 자연스러운 모습처럼 보이고 따라서 자칫 더 발전된 모습처럼 보이는 그리스의 그림도 사실 그 시작은 이집트 벽화인 것이다.

따라서 이집트의 벽화와 그리스 그림의 우월을 따지는 것도 무의미한 것이 된다. 과거, 특히 더 오래된 과거로 갈수록 그림이라는 것은 감상이 아닌 특정 목적을 위해 그려졌고 그 목적에 맞는 그림의 형태라는 것은 그리는 사람의 테크닉이나 예술적 감각, 창의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용도에 맞는 가장 적합한 형태의 발견과 선택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림과 연관된 다양한 지식을 접하고 그림을 대하는 유연한 자세를 가질 때 그림은 더 이상 눈으로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두 개의 그림은 더 이상 단순한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태그:#그림, #이집트, #그리스, #벽화, #화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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