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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용사세요?"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이 말이 귀에 쟁쟁하다. 유명한 영문학자이자 문학가이신 고 장영희 교수님과 어느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을 때였다. 교수님이 주차를 하고 차 키를 주차장 수위에게 맡길 때, 목발을 짚은 교수님께 건넨 말이었다. 교수님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마치 듣지 못한 듯 발걸음을 떼었다. 항의하지도 못한 채 교수님을 뒤따른 나만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렇다. 그렇게 유명하신 교수님조차 흔하게 받았던 조롱과 모멸. 교수님이 수필집에 쓰신 장애인으로서 겪었던 일화들도 기가 막히다. 이대 앞 옷 가게 앞에서 여동생이 옷을 사는 동안 서 있다가 거지 취급을 당했다던 일화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장애인이 얼마나 될까? 내가 어릴 적에는 동네마다 으레 장애인들이 있었다. 그런데 도시에서 살면서 장애인들을 마주치기가 흔치 않다. 통계청의 2016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수는 251만 명이 조금 넘는다. 5천만 인구라고 치면 대략 백 명에 다섯 명 꼴이다. 우리 주위에서는 자주 보기 힘든데 이 정도 숫자라니 놀랍다.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방송댄스반. 더러는 열심이고, 더러는 딴짓이다. 여느 학생들이 그러듯이 말이다.
▲ 발달장애인 교육문화프로그램인 방송댄스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방송댄스반. 더러는 열심이고, 더러는 딴짓이다. 여느 학생들이 그러듯이 말이다.
ⓒ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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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자원봉사 할 만한 일을 찾다가 내가 사는 과천시 장애인복지관에서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인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요일마다 다양한 교육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자원봉사자를 찾고 있었다.

장구와 우쿨렐레, 바리스타, 방송댄스, 생활요리, 창의보드게임 등 여러 프로그램이 있었다. 춤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방송댄스가 끌렸다. 마침 시간이 가능한 수요일 늦은 오후다. 누구에게 선수를 뺏길세라 공고를 보고 바로 댓글을 달았다. 저요 저요.

발달장애인 교육문화프로그램 전체를 담당하고 있는 권익옹호지원팀 이선영 선생님이 바로 연락을 주셨다. "봉사자는 무얼 하나요?" 물으니, "그냥 같이 추시면 돼요." 돌아오는 대답이 그렇다. 난감했다. 나는 튼튼한 체력을 자랑하는지라, 장애인들의 거동을 돕거나 하는 줄로 상상했기 때문이다(사실 발달장애인이 정확히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그들과 어울려 춤만 추라니.

드디어 수업시간에 들어갔다. 소정의 돈을 내고 수업을 듣는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나는 거울도 안 보이는 가장자리에 섰다(춤을 배울 때는 거울을 통한 나르시시즘이 만족감을 높이는데도 말이다). 댄스 선생님이 동작을 선보이고 음악에 맞춰 따라 하고, 또 새로운 동작 배우고,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방송댄스 수업. 경쾌한 점프!
▲ 방송댄스 수업 중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방송댄스 수업. 경쾌한 점프!
ⓒ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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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생들은 몇몇은 아주 열심, 몇몇은 수업시간 내내 가만히 서있기. 몇몇은 조금 따라 하다가 딴짓을 했다. 선생님은 거의 매주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열심히 따라 해보지만 늘 동작과 스텝이 꼬인다. 그런데도 몇몇 수강생들은 어느새 나에게 호감을 보이며, 춤 잘 춘다고 칭찬해준다. 으쓱.

그뿐이랴. "선생님, 사랑해요." 수업 중에도 난데없이 팔짱을 껴오며 사랑 고백을 해주는 친구도 있다. 그들과 지금까지 두 달째 함께 하며 느낀 점이 많은데, 그 중 하나가 그들이 참 순수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발달장애인들은 세상의 복잡다단한 면을 덜 봐서 그런 것일까?

그들의 순수함에 대해서는 이선영 선생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내 또래인 그녀는 나처럼 자원봉사자로 복지관을 드나들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사회복지사 자격증까지 따고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봉사기간까지 하면 벌써 3년 반이다. 미소가 참 고운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제 고교 시절 꿈이 이거더라고요."

과천시장애인복지관의 이 프로그램은 올해 처음 실시되었고 연말까지 계속할 계획이라고 한다. 과거에도 장애인들을 위한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대개 복지관 내에서 운영하고 낮 시간에 한다. 장애인들이 일과 마치고 귀가하는 늦은 오후 이후의 프로그램은 그동안 없었다. 그래서 귀가하고 나면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십상이라고 한다.

지역사회와 함께, 또 비장애인들과 함께 좀더 사회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모색하다가 시작되었다. 두 차례의 간담회를 시청과 가지고 시장에게도 피력하였다. 그렇게 과천시청의 후원을 받고 장애인들과 그들 부모의 요구조사를 거쳐 세심하게 프로그램을 짰다고 한다.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바리스타 수업
▲ 바리스타 수업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바리스타 수업
ⓒ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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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 수업, 생활요리 수업 등은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거나 취업을 했을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기술이다. 요리반의 경우, 많은 경우에 장애인들에게는 이미 재료 손질이 거의 다 이루어진 식재료를 가지고 마지막 단계에서 단순 작업만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식재료 포장을 벗기고 썰고 다듬는 것까지 해보게 한다. 나중에 자립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감동적인 순간이 있었는지 이선영 선생님께 물었다. 그녀는 바리스타 수업을 듣는 한 장애인이 두 달 가까이 수업 시간 내내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고 했다. 문제적 행동만 좀 줄어드는 정도였다. 그러다 최근에 "해볼래요?"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는 하겠다고 대답하더니 주전자를 들고 차분히 핸드 드립을 했다.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가장 활기가 넘치는 것은 방송댄스 수업이라고 한다. 다들 댄스 수업을 기다리는 눈치다. 장애인이라고 쉽고 단순한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잘 나가는 댄스를 똑같이 배운다.

옆에서 분위기 돋우는 정도의 자원봉사자인 나 역시 그들의 즐거움과 활기를 느낀다. 몸을 쓴다는 것,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엉덩이를 흔들고 깡총깡총 뛰어보는 것.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다.

장애인과 관련된 여러 뉴스를 종종 듣는다. 강서구에 서울시교육청이 짓고자 하는 장애인 학교 반대하는 주민들 이야기.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 장애 등급제 문제 등등. 뉴스를 보며 느끼는 것은 장애인들과 그 가족들은 필사적이고 절박한데, 배제와 무관심과 차별의 벽은 무척 높다는 것이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우리 주변의 장애인들을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배제와 차별이 힘을 얻으면 그 파급력은 사회를 종내 망가뜨린다고 믿는다. 장애인을 차별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이주 노동자를, 다문화 가족을, 못 생긴 사람을, 젊은 여자를, 어린 아이를, 노인을 차별하는 사회가 된다면, 결국 그 차별이 우리에게 향하지 말란 법이 있는가?

장애인들과의 댄스 수업이 나는 무척 즐겁다. 수요일 오후가 기다려진다. 샐 위 댄스?(Shall we dance?)


태그:#장애인의 날 , #과천시장애인복지관, #장애인차별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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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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