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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15일 새벽 베트남 다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KE464편을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고개 숙이고 있다.
▲ 귀국해 고개숙인 조현민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15일 새벽 베트남 다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KE464편을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고개 숙이고 있다.
ⓒ MBC 화면 캡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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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세례 사건으로 재벌총수 일가의 '갑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조 전무는 지난 3월 광고 관련 회의 도중 광고대행사 팀장에게 고성을 지르고 물컵을 던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조 전무와 관련된 제보가 잇따르면서 급기야 수사기관이 나서게 됐다. 도덕적 비난을 넘어 형사사건으로 비화될 전망이다.

어디 이번뿐일까. 알려진 것만 언급하더라도 재벌총수 일가의 '권력형 추태'는 한두 번이 아니다.

야구방망이를 휘두른 뒤 맷값을 던져주는가 하면, 아들이 당한 수모를 갚기 위해 조폭을 동원하여 쇠파이프를 휘두르기도 했다. 기내 땅콩서비스 방식이 매뉴얼과 다르다며 비행기를 돌려세우는 항공사 임원도 있었고, 운전기사가 백미러를 사용하거나 끼어들기를 허용한다며 욕설과 폭언을 일삼는 사장도 있었다. 술자리에서 종업원을 때리거나 업무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변호사에게 막말과 폭력을 일삼는 재벌 3세도 있었다.

재벌의 갑질은 법으로 단죄할 수 있을까. 즉답 대신 최근 발생한 재벌 갑질 사건의 재판 결과를 살펴보는 편이 낫겠다.   

[사건 ①] 야구방망이 맷값 폭행 사건

'야구방망이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최철원 전 M&M 대표가 지난 2010년 12월 2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야구방망이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최철원 전 M&M 대표가 지난 2010년 12월 2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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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방망이 1대에 맷값 1백만 원씩, 총 2천만 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2009년 '야구방망이 맷값 폭행' 사건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최철원(당시 M&M 대표)씨는 회사 인수합병과정에서 계약을 해지 당한 화물노동자 A씨가 고용승계와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자 그를 불렀다. 최씨는 직원들을 도열시킨 채 2천만 원을 주는 대가로 A씨를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리는 등 무차별 폭행을 하였다. A씨가 고통을 호소하며 용서를 빌기까지 하였으나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군대 '빳다' 정도로 생각하고 훈육" 황당 주장 

A씨의 폭로로 뒤늦게 알려진 이 사건으로 최씨는 법정에 섰다. 그는 '군대의 '빳다' 정도로 생각하고 훈육한 것'이라며 황당한 주장을 폈다. 하지만 1심 서울중앙지법은 "피해자가 나이가 11살이나 많고 피고인으로부터 훈육을 받을 지위에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적절하지 아니하다"면서 이 사건을 "우월적인 지위와 다수인을 내세운 사적보복"으로 규정, 갑질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1심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집단 흉기 등 폭행)을 적용, 징역 1년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최씨의 다른 폭행사건이 더해져서 나온 재판결과였다.

최씨의 수감생활은 길지 않았다. 두 달 뒤 항소심은 집행유예로 풀어줬다.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하면서 깊이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어쨌거나 이 판결은 "세상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것도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우쳐 준 사건이었다.

[사건 ②] 김승연 회장, 아들 보복 폭행 사건

보복폭행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2007년 8월 14일 법원으로부터 병치료를 위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뒤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앰뷸런스에서 내린 뒤 주변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로 이동하고 있다.
 보복폭행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2007년 8월 14일 법원으로부터 병치료를 위한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뒤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에 입원하기 위해 앰뷸런스에서 내린 뒤 주변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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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직접 쇠파이프를 들었다가 콩밥을 먹은 적이 있다. 그는 2007년 자신의 차남 김동원씨가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종업원들에게 폭행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분노한 김 회장은 즉시 경호원과 조폭들을 대동하고서 보복에 나선다.

그는 한밤중, 폭행에 관여한 사람들을 청계산으로 불러 쇠파이프로 직접 응징하기까지 했다. 당한 아들에게 복수할 기회도 제공했다. 재벌 아들을 몰라보고 주먹을 휘둘렀다가 호되게 당한 피해자들은 무려 9명. 

1심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 법원은 "사회적 지위와 재력 및 회사조직을 사적 보복에 악용한 범죄로서 사인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1심 "사적 보복에 지위 악용" 실형... 항소심 "부정" 들어 석방 

하지만 김 회장에겐 항소심이 있었다. 피해자가 9명이나 되는데도 항소심은 '중상을 입은 사람이 없고 모두가 합의한 점'을 들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폭력전과가 없고 반성한 점도 높이 샀다. 법원은 "재벌그룹의 회장인 피고에게 요구되는 준법정신 등을 함께 고려하여 보면 그에 상응한 형사처벌이 이루어져야 하는 범죄행위임이 분명하다"면서도 "아버지로서의 부정이 앞선 나머지 사리분별력을 잃고 범행에 이르게 되었"다고 석방한다. 

이 사건은 재벌의 갑질로 분류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재벌 회장 정도의 스케일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사건임은 틀림없다. 경찰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폭력범'을 응징한 재벌 회장, 감탄사만 나온다. 보통사람들은 자식이 맞으면 달래거나, 고작해야 형사고소나 민사소송으로 국가의 힘을 빌릴 뿐인데.

[사건 ③]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

일명 '땅콩리턴' 논란을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지난 2014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도착, 취재진이 준비한 포토라인으로 걸어오고 있다.
▲ '땅콩 리턴' 조현아, 피의자 신분 검찰 출석 일명 '땅콩리턴' 논란을 빚은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이 지난 2014년 12월 1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도착, 취재진이 준비한 포토라인으로 걸어오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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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뉴욕발 한국행 대한항공 여객기가 활주로로 진입하다가 갑자기 되돌아왔다. 고장이 발견되었던 걸까. 기상악화 탓? 그것도 아니면 테러범 때문? 전부 아니었다. 고작 '땅콩' 서비스 때문이었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이 비행기에는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인 조현아씨가 타고 있었다. 1등석에 탑승한 조씨는 견과류를 제공하는 방식을 문제 삼고 객실서비스 매뉴얼을 준수했는지를 추궁하다가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욕설, 폭언 등을 행사하고 무릎을 꿇게 했다. 그걸로도 분이 풀리지 않자 급기야 활주로에 진입한 항공기를 되돌아가도록 지시한 뒤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했다.

항공기 운항 책임자 기장도, 기내 안전 책임자 사무장도, 항공 관련 법령과 규정도 회사 '오너'의 한마디를 이길 수 없었다. 1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은 이 사건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했다.

"돈과 지위로 인간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인간의 자존감을 무릎 꿇린 사건이다. 한 사람을 위하여 조직이 한 사람을 희생시키려 한 사건이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심이 있었다면, 직원을 노예쯤으로만 여기지 않았다면, 감정을 조절할 수 있었다면, 승객을 비롯한 타인에 대한 공공의식만 있었다면,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이다." 

서울서부지법은 항보안법위반, 강요, 업무방해 등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돈과 지위로 인간의 존엄을 무릎 꿇린 사건"

하지만 2심인 서울고법은 조금 다르게 보았다. 항공기 항로 변경으로 인한 항공보안법위반의 점은 무죄로 판단했다. 법 조항을 엄격하게 해석해보면 계류장(항공로 진입 첫단계 지역)내의 회항은 항로 변경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재판부는 조씨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며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형량이 깎였는데 근거는 이렇다.

 "이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과거의 일상, 사랑하는 가족들과 격리된 채 5개월 가까운 기간 구금되어 생활하는 동안 피고인 자신의 행위가 왜 범죄로 평가되는지, 그 범죄로 피해자들이 얼마나 깊은 정신적 상처를 입었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는데 전원합의체도 격론 끝에 다수 의견으로 2017년 12월 상고기각으로 2심과 결론을 같이했다. 

[사건④] 수행기사에 갑질 폭행 사건들  

운전기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폭언을 퍼부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물의를 빚은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사과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송동 대림산업 본사에서 열린 정기 제69기 정기 주주총회에 들러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이 모든 결과는 저의 불찰"이라고 말했다.
 운전기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폭언을 퍼부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물의를 빚은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사과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6년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수송동 대림산업 본사에서 열린 정기 제69기 정기 주주총회에 들러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이 모든 결과는 저의 불찰"이라고 말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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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미러를 접고 운전. 차량이 끼어들지 못하게 앞 차량과 간격 최소화. 물이 가득 담긴 컵에서 단 한 방울도 흘러내리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출발과 정지.

카 레이서의 자격요건이 아니다.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대표이사)의 수행기사가 되려면 이 정도 운전능력은 필수다. 그는 이 같은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운전기사에게 수시로 폭언, 욕설, 폭행하였다. 이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고 운전기사 중 1명이 노동청에 진정을 내면서 알려지게 됐다. 

그 후에도 이씨는 "기업에 쫙 뿌려가지고 이 사람들 조심해. 명단 쫙 뿌린다면 된단 말이야"라는 말로 운전기사를 협박하여 노동청 진술 번복을 요구했다.

검찰은 이씨를 벌금형으로 약식기소했으나 법원이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그런데도 재판 결과는 벌금형(1천5백만 원). 평소 다른 운전기사들에게 이 같은 행위를 강요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재판까지 간 피해자는 1명뿐이었다.

운전기사 갑질 논란으로 전과자가 된 이는 또 있었다. 정일선 현대 BNG스틸 사장. 그는 2014년 10월 수행기사에게 골프바지에 허리띠를 매어두라고 지시했으나 허리띠를 찾지 못한다는 이유로 파우치(화장품 가방)로 머리를 내리친 혐의로 약식기소되었다. 서류재판이라 법정에 서지는 않았는데 벌금 3백만 원으로 유죄가 확정됐다. 

정씨는 운전기사들에게 주당 최대 80시간 이상 근무, 과도한 매뉴얼 강요 등의 피해를 주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실제로 재판까지 가지는 않았다.

그 밖의 사건, 그리고 조현민 물벼락 사건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삼남인 김동선씨도 술에 얽힌 사건으로 몇 차례 도마 위에 올랐다. 김씨는 2017년 1월 술집 종업원에게 욕설, 폭언하면서 영업을 방해하고 출동한 경찰 순찰차를 파손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실형선고는 피했다.

그런데 그는 집행유예 기간인 작년 9월에도 변호사 모임 술자리에서 변호사들에게 막말과 폭행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사건은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으로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시 물벼락 세례 사건이 발생했다. 드러난 사실관계만 보면 그동안 발생한 사건보다 무겁다고 보기 어렵다. 경찰이 압수수색 등을 했다는 보도가 있지만 기소될 수 있을지, 기소된다 하더라도 중형이 선고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예를 들어 이 사건에 반의사불벌죄인 단순폭행죄를 적용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기소조차 할 수 없다). 수사기관의 태도와 의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재벌 갑질 사건 재판 결과
 재벌 갑질 사건 재판 결과
ⓒ 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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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으로 갑질 단죄 어려운 까닭 

법원의 재판으로 재벌의 갑질을 단죄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법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좁고, 실제 사건까지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재판은 기소된 사실만 갖고 판단하게 되는 한계가 있다. 대개 빙산의 일각만 드러나고, 그것만 처벌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또한, 갑질 중 형법상 범죄가 되지 않는 행위가 더 많다. 이를테면 명백한 폭행과 추행, 강요와 같은 범죄가 아닌 일상의 부당한 지시, 인격모독, 정신적 피해 등은 입증하기도 어렵고 처벌은 더더욱 쉽지 않다. 사법절차가 진행되더라도 피해자는 생계와 인사상 불이익 등을 감수해야 하는데 법은 의외로 무기력하다. 기소되지 않은 불법과 드러나지 않는 갑질은 단죄할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갑질이 단죄되기 어려운 이유는 더 있다. 재벌의 갑질에 법원이 상당히 관대한 편이기 때문이다.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벌금형이 선고되거나, 1심에서 징역형이 선고되더라도 2심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풀어주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 법원이 가진 자의 편이라는 오해를 사기 딱 좋다. 배려가 필요한 사람은 갑질 재벌이 아니라 피해자들이다. 법원이 명심했으면 한다.


태그:#갑질, #조현민, #땅콩회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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