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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방송된 MBC <100분 토론> '논란의 학종... 수시냐 정시냐' 방송 장면
 지난 17일 방송된 MBC <100분 토론> '논란의 학종... 수시냐 정시냐' 방송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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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대학 입시에 관한 토론 프로그램이라면, 뭔가 달라도 달라야 했다. 패널 초청부터 진행 방식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찬반 토론 방식을 따라서는 죽도 밥도 아닌 결과가 나올 게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5천 만 국민의 공통 관심사'인 대학입시는 '모 아니면 도'식의 양자택일 방식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지난 17일, MBC <100분 토론>은 진행자를 사이에 두고, 수능 위주의 정시를 찬성하는 패널 세 명과 학교생활기록부 종합 전형(이하 학종) 중심의 수시를 찬성하는 패널 세 명이 나란히 앉았다. 토론이 시작되기도 전에 패널들 입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평균적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미 알고 있다. 핵심 쟁점이 될 학종의 문제점이 어디 어제오늘의 일인가.

패널마다 제시한 논거들은 지금껏 익히 봐온 '같은 듯 다른' 통계들이다. 주장에 따라 같은 내용도 달리 해석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사람들은 본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법이다. 여하튼 토론이 끝날 즈음 시청자들은 마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것 같은 느닷없는 의무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밤늦은 시간까지 눈 비벼가며 시청했다는 몇몇 동료 교사들조차 '수능파'와 '학종파'로 갈려 이튿날까지 토론을 벌였다. 물론, TV 토론에서 패널들이 이야기했던 것들의 재방송일 뿐 새로울 건 없었다. 교사들의 토론 역시 평행선을 달렸고, 늘 그래왔듯, 일개 교사가 무슨 힘이 있느냐며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라는 무기력한 푸념으로 마무리됐다.

20년차 현직 교사의 오지랖 때문일까. 대학입시와 관련된 토론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하도 답답해 TV 화면을 찢고 들어가 토론에 끼어들고 싶은 욕구가 용솟음칠 때가 많다. 삼척동자도 아는 이야기를 중언부언 하거나, 일부의 사례를 일반화시키는 경우도 그렇고, 나아가 학교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싶을 땐 순간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금수저-깜깜이 전형? 학종 운영 방식이 문제

말꼬리 잡는 것 같지만, 하나하나 따져보자. 학종이 변질됐다고 한다. 성적 등 정량적 지표로 파악할 수 없는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을 학생부에 기재해 대학입시에 반영한다는 취지에는 백 번 공감하지만, 근래 들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의 아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면서 부작용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금수저 전형'이라는 것이다.

지적에 100% 동의한다. 하지만, 그래서 내놓은 대안이 수능 위주의 정시 확대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100% 동의할 수 없다. 전국의 모든 학교 교실을 문제 풀이 수업의 지옥으로 만든 주범이 수능이란 건 이미 온 국민이 합의한 바다. 지난 25년 동안 수능은 참고서와 문제집이 교과서를 대체하게 만들었고, 최근 들어서는 'EBS 교재'가 곧 교과서 지위를 획득했다.

그러한 수능을 보완하려고 도입한 게 학종인데, 부작용이 크다고 해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다시 수능으로 돌아가자는 건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단언컨대, 수능 위주 정시가 확대되면 고등학교의 교실 수업은 다시 아이들이 문제집과 주야장천 씨름했던 옛 모습 그대로 되돌아갈 게 틀림없다. 그저 '구관이 명관'이라는 허드레 말로 눙칠 수 없다.

학종에 반대하는 논거는 하나 더 있다. '깜깜이 전형'이라는 것. 다시 말해서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본디 학종은 수능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것에서 출발했다. 주지하다시피, 학종은 한 사람의 일생이 좌우된다는 대학입시에 단 한 번의 수능 점수를 기준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문제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종이 불공정하다는 인식은 수능이 공정하다는 믿음에 가닿는다. 아이들의 다양한 재능도 점수로 환산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믿을 수 있다는 뜻이다. 도덕 시험 점수가 높다고 도덕적인 인간이 아닐뿐더러 역사 과목 성적이 우수하다고 역사의식이 투철한 건 아니라면서도, 점수와 등급으로 줄 세우는 걸 '공정하다'고 말하는 건 이율배반적이다.

애초 학종은 '불공정한' 전형이다. 본디 학종은 미국의 대학입시에서 적용하는 '소수자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을 본뜬 것이다. 이는 미국 내 주요 대학의 신입생들 중 유대인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 히스패닉과 아시아계 학생들의 진학률을 늘리기 위한 '차별적인' 입시제도다.

그런데도 이를 '깜깜이 전형'이라며 발끈하는 건, 자칫 점수로 환산할 수 없는 재능은 입시에 반영하지 말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으로 변질될 우려가 크다. 문제는 '불공정함'에 있는 게 아니라, 수혜의 대상이 누구인가에 있다. 학종이라는 제도 자체가 아니라, 뛰어난 내신 성적과, 이른바 '등급 컷'으로 불리는 수능 최저 점수를 동시에 요구하는 학종의 운영 방식이 문제라는 이야기다.

최소한 내신 3~4등급 이내에 들지 못하면, 학생부는 써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어차피 최상위권 대학이 아니라면, 학생 수가 줄어 정원도 다 못 채우는 마당에 수능이냐 학종이냐 따지는 것 자체가 사치다. 대학 존폐 위기에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거다. 곧, 이 또한 '그들만의 리그'에 한정된 토론인 셈이다.

학종이 교실 수업에 미친 효과도 감안해야

학종에 찬성하는 쪽의 주장도 미덥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현직 교사인 한 패널은 학생부는 수많은 교사들이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작성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고 했지만, 같은 교사로서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학교마다 명문대 진학 실적에 울고 웃는 현실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학생부 기록이 부풀려지는 건 막을 수 없다.

지난 수년 간 사회적 이슈가 됐던 몇몇 학교의 학생부 조작 사건을 한사코 극소수의 부정 사례라고 그는 손사래를 쳤지만, 그 또한 동의하긴 찜찜하다. 교사들 사이엔 학생부 기록에 있어서 '불법과 편법은 깻잎 한 장 차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어차피 대학에서도 이를 나름 감안해서 신입생을 선발할 것이라는 생각에 별반 죄의식도 없다.

어쩌면 '객관적'이라는 말 자체가 이현령비현령이다. '객관적'이라는 말은 기록의 근거가 있다는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희망 대학과 학과의 입시요강 대로 '맞춤형 지도'를 하는 현실을 과연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나. 예컨대, 과목별 성적에 따라 진로희망이 수시로 바뀌고, 아이들이 읽는 책도 희망 대학과 학과의 권장도서 위주다.

동아리도 삼삼오오 조직해 활동했다가 대학입시가 끝남과 동시에 해체되는 '1회용'이 부지기수다. 나아가 순수해야 할 봉사활동마저 희망 대학과 학과와의 관련성을 고민하는 지경이니 더 말해서 무엇 할까. 그래선지 그의 '객관적'이라는 항변은 학생부 기록이 '완전한 허구는 아니다' 정도로 번역되어 들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생부는 교육 과정에 따라 '관찰자 시점'으로 기록해야 옳다. 그러나 학종 비중이 커지자 교사들은 일부 아이들의 학생부를 '1인칭 주인공 시점'을 넘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적는 경우가 속출했다. 고3 1년은 '가르치고 배우는' 시기가 아니라, 오로지 학생부 기록을 위해 '묻고 답하는' 기간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는 지경인데, 학생부의 객관성 운운하는 건 솔직히 너무 나간 이야기다.

그보다는 학종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 강조했어야 했다. 어쨌든 학종으로 인해 천편일률적인 교실 수업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은 두루 인정하는 바다. 비록 대학입시라는 외부 자극을 통한 강제적 변화라는 한계에도, 기존의 강의식 수업 방식에 균열을 낸 건 분명하다. 학생부에 뭔가를 기록하려면 수업 중 아이들의 다양한 활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 한 방에 한 사람 인생 결정된다는 인식 달라져야"

학교 수업의 변화가 곧 공교육의 정상화이고, 대학입시가 공교육 정상화에 기여해야 한다면, 학종이 수능보다 우위인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수능이 오로지 대학 진학에 관심을 두고 있는 반면, 학종은 당장 학교 수업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정시 확대를 주장하며 '학종의 변질'을 꼬집자면, 바로 이 지점에서 토론을 시작해야 했다.

예상했던 대로, 논의가 단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채 100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다. 시나브로 토론은 뜨거워졌지만, 쟁점은 점점 단순해져갔다. 아이들의 명문대 진학에 둘 중 어떤 전형이 더 나은가의 문제로 변질되면서, 결국 양쪽 패널 모두가 처음 내세운 주장을 다시 한 번 반복하는 수준에서 허무한 토론을 마쳤다.

더욱 안타까웠던 건,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쪽이든, 학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쪽이든, 그들이 논거로 제시한 자료가 죄다 서울대, 연고대를 비롯한 서울 주요 10개 대학의 진학 현황 통계뿐이었다는 점이다. 둘 모두 관심이 명문대 진학에 쏠려있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 교육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됐다.

이튿날,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귀가한 뒤 우연히 프로그램을 시청했다는 한 아이의 소감을 듣게 됐다. 교육제도 전반에 관심이 컸던 터라 밤늦은 시간인데도 끝까지 주의 깊게 봤단다. 정작 중요한 건 건드리지 않고 변죽만 울리는 토론이었다고 아쉬워하면서 이렇게 일갈했다. 듣자니까, 아이들도 다 아는 해법을 어른들만 모르는 것 같다.

"대학입시의 공정성 논쟁은 교육을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신뢰가 허물어졌다는 방증 아닐까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수능이냐 학종이냐를 두고 다툴 게 아니라, 대학입시 한 방에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는 인식과 왜곡된 사회 구조를 힘 합쳐 뜯어고쳤으면 좋겠어요. 왜 대학엘 꼭 가야만 하는지를 묻는 친구들이 점점 많아져 그나마 다행이에요."



태그:#100분 토론, #학생부종합전형, #정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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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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