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 폭로(미투)나 형사고소에 대해 가해자가 '명예훼손' 등으로 역고소를 하는 상황을 넘어, 변호사가 개입해 제3자에게까지 기획적으로 고소해 합의금을 받아내거나 입막음을 하는 '보복성 기획고소'까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은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열린 '의심에서 지지로, 성폭력 역고소를 해체하다' 토론회에서 '시장으로 간 성폭력, '보복성 기획고소'의 실체' 주제로 발표하며 성폭력 역고소의 실태를 진단했다.

김 연구원은 "미투 운동을 통해 사건을 폭로한 피해자들이 이후 여러 종류의 역고소에 시달리고 있다"며 "강용석 변호사로부터 촉발된 '고소열풍'이 희화화되고 만연화되는데 기여했고, 최근 유명 연예인들의 역고소가 가해자로 지목되어 '당당하게 고소할 수 있음'을 학습시켰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무)법인들이 '무혐의, 무죄 받아드립니다', '무고 전문' 등의 홍보를 통해 피해자에 대한 협박, 역고소 건수를 늘려 수임료를 올리는 방식으로 상업화되고 있다"며 "성폭력은 시장화되었고 어느 범죄 분야보다 '돈이 되는' 분야로 선호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성폭력 역고소'는 미투 운동 이전부터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협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지난 12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적용과 같은 형사소송절차 상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무료 법률 지원을 포함한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한국정부에 권고하기도 했다.

김 연구원은 "성폭력 역고소 협박으로 합의하게 될 경우 피해자는 성폭력 피해도 입고, 심지어 금전적으로 '역보상'까지 해야 한다. 합의하지 않으면 때때로 '전과자'가 될 수도 있다"며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공모해 "피해자를 피의자/피고인의 위치로 전환시킨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 연구원이 언급한 한 법무법인은 성폭력 가해자가 어떤 방식으로 무혐의나 기소유예가 될 수 있었는지 1630건의 성공사례의 판결문을 올려놨다고 한다.

특히 김 연구원은 역고소 피해자와 변호사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보복성 기획고소'의 심각성을 절감했다고 강조했다. 한 성폭력 피해자 국선변호사는 "변호사들이 방어수준이 아니라 적극적 공격으로 나아간다. 사건별로 수임료 책정을 하니까 사건 불리기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고 김 연구원은 밝혔다.

이날 발표에서는 데이트폭력 피해 경험을 SNS로 공론화시킨 한 피해자의 사례가 '보복성 기획고소'의 주요한 사례로 제시됐다. 가해자가 2년에 걸쳐 총 5가지의 '보복성 역고소'를 진행하면서, 공론화 글을 리트윗하고 공유하거나 본인을 비난하는 글을 쓰는 이들까지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고, 실제로 고소했다는 것. 이 사례에서 피고소인은 300인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김 연구원은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와 같은 '기획고소'가 저작권 침해에 대한 '합의금 장사'에서 응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사례에서 법인이 수백명에게 전화를 해서 합의하면 소를 취하해주겠다고 하는 것도 저작권 위반 영상물 유포에 대한 대응방식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이 제시한 다른 사례에서는 "법인이나 변호사를 공유하고 (역)고소대상을 비슷하게 공유하는 '가해자 연대'가 이뤄지고 있다"는 피해자의 주장도 나왔다. "피해자나 연대자나 제3자들을 특정해서 고소한 리스트를 공유"하면서 "특정 조직이 배후에 있다거나 자신을 음해하려고 한다"는 식으로 여론을 만들어간다는 것. 이러한 방식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연대의 틀을 막아버리는" 과거와는 다른 기획고소의 방식으로 제시됐다.

한편 김 연구원은 이런 식으로 역고소를 부추기고 남용하는 현상들에 대해 "변호사협회의 자율적 규제"가 필요하다며 변호사법 23조의 2항에서 '변호사의 공공성이나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내용'을 제지하는 조항을 적용해 성폭력 가해자의 형량을 낮춘 판결문을 올린 법무법인 등에 대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성범죄 전문'을 과장하여 홍보하는 법인들을 변호사법으로 규제, '사법절차의 남용'에 대한 변호사협회 차원에서의 자정 노력 대한변호사협회 회칙 등에 구체적인 윤리적 지침 적시, 변호사 교육 연수에 젠더감수성 교육 실시 등을 '보복적 기획고소'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제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한국여성의전화의 '재재' 활동가,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가 각각 성폭력 역고소를 주제로 발표하며 논의를 이어갔다. 


태그:#성폭력역고소, #미투, #역고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