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의 가사들이 간직한 심리학적 의미를 찾아갑니다. 감정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까지 생각하는 '공감'을 통해 음악을 보다 풍요롭게 느껴보세요. - 기자 말

2주 전 '썸 타지 말고 사랑하라'라는 요지의 10번째 가사 공감(관련기사 : 벚꽃 흩날리는 봄, '썸'만 타다가 끝나는 연애가 싫다면 http://omn.kr/qtas)을 송고한 직후 우연히 아이유와 하이포가 함께 부른 '봄 사랑 벚꽃 말고(작사 아이유 작곡 이종훈, 이재규)'를 듣게 됐다.

봄바람 부는 계절에 연인이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한 이 노래를 들으면서 마음 한 쪽이 뜨끔했다. 그동안 이 코너를 통해 썼던 글들이 혹시라도 연애를 강요하는 듯 읽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동시에 내심 반가웠다. 쏟아지는 비슷비슷한 사랑 노래들 틈에서 '연애하지 않을 자유(이진송 저, '연애하지 않을 자유'에서 표현을 빌렸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노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가사 공감 열  한 번째에서는 연애를 권하는 사회가 연애하지 않는 사람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본다.

연애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

 3월 26일 창원 거리에 벚꽃나무가 활짝 피어 있다.

3월 26일 창원 거리에 벚꽃나무가 활짝 피어 있다. ⓒ 윤성효


벚꽃이 흩날리는 봄, 연애하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우선, 스스로 위축된다. 그래서 아이유는 첫 소절에서 '길었던 겨우내 줄곧 품이 남는 밤색 코트 그 속에 나를 쏙 감추고 걸음을 재촉해 걸었어'라고 노래한다. 왠지 주눅드는 마음에 계절의 변화조차 느끼지 못하고 무언가 잘못한 사람인 것처럼 자신을 숨기고 종종걸음을 하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이런 나에게 '너만 아직도 왜 그러니'라고 채근하기 까지 한다. 사람들의 채근에 조금 용기를 '그제서야 둘러보니 어느새 봄이' 와 있는 걸 깨닫는다.

봄이 왔음을 알았지만, 싱글들에게 봄은 그다지 반갑지 않다. 봄을 만끽하고 싶어 밖에 나가보면, 손잡은 연인들의 모습에 내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진다. 때문에 '손에 닿지도 않을 말로 날 꿈틀거리게 하는' 친구들의 말에 '맘먹고 밖에 나가도 막상 뭐 별거 있나' 싶다. 오히려 '손잡고 걸을 사람 하나 없는 내게 달콤한 봄바람은 너무해'라고 노래하고 싶을 만큼, 봄은 나를 힘들게 하고 자꾸만 자존감을 깎아 내린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온통 사랑이야기만하고, 벚꽃 길은 연인과 걸어야만 할 것처럼 포장하는 세상에 짜증이 나기도 한다. 왜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사랑이야기만 하는 건지. 연인이 없다고 작아지는 내 자신을 대변해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난 다른 얘기가 듣고 싶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버릴 오오 봄 사랑 벚꽃 말고' 라고 항변하고 싶다.

좀 정리해서 이야기하자면 이런 거다. '누군가와 봄 길을 거닐고 할 필욘 없지만, 누구나 한번쯤 머물고 싶은 그런 기억을 만들어 보고 싶어.' 즉, 자꾸만 연인이 없다고 주눅 들게 하는, 꼭 누군가와 봄 길을 손잡고 걸어야만 할 것 같은 이런 분위기는 어딘가 잘못 된 것 같지만, 그래도 이 봄 멋진 추억을 만들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을 강요하는 분위기에는 왠지 반감이 생기는 그런 마음. 오래 전이긴 하지만 필자 역시 20대의 모든 봄을 이런 복잡한 마음으로 지냈다.

심리학적인 연애

솔로들이 가지는 이런 복잡한 마음은 과연 자연스러운 걸까? 심리학에서 연애란 갓 태어난 아기시절 엄마와 하나였을 때의 합일감에 대한 그리움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갓난아기의 부모들은 아기의 작은 몸짓에 관심을 가져주고 울기만 해도 욕구를 알아채주고, 이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노력한다. 이 때 아기들은 부모와 내가 완전히 하나라는 일체감과 내가 원하는 것은 모두 이뤄지는 전능감을 느낀다.

점차 성인이 되어가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가 모두 충족되어지는 일은 불가능하며, 스스로 해결해야가야 함을 깨닫게 되고 공허감을 느낀다. 동시에 끊임없이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 사랑의 대상을 찾는 마음은 나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줄 대상을 찾는 것이다. 사랑에 막 빠졌을 때 모든 걸 다 가진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린 시절의 맛보았던 합일감과 전능감이 재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합일감과 전능감은 아주 잠시 뿐이다. 연애를 하더라도 사랑에 빠지는 단계에서만 이런 감정을 느낀다. 길어야 18개월 정도라는 이 기간을 넘어서면 상대의 눈을 통해 나의 상처와 그림자를 발견하고 서로의 차이를 조율해가야 하는 사랑을 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 단계에서 상당수 연인들은 이별을 하고 다시 홀로된다. 사랑을 하는 단계를 무사히 넘기면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곳이 사랑에 머무는 단계다. 이 단계에 이른 연인들은 그 동안 사랑의 과정을 통해 확장된 자아를 바탕으로 보다 통합적이며 독립적인 자기 자신을 느낀다. 또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친밀감을 나누면서 서로의 개별성을 더 존중하게 된다. 결국 연애가 도달하는 궁극적인 지점은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보다 독립적인 개인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연애를 하고 싶고,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부러운 마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즉. '누구나 한번쯤은 머물고 싶은 그런 기억'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심리학적으로 타당하다. 연애를 하면 어린 시절의 합일감과 전능감을 재현할 수 있고 동시에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연애를 하지 않거나,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것 역시 타당하다. 연애를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개인적인 성장은 꼭 연인관계가 아니더라도, 친구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혹은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기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으로도 이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연애는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다. 더더구나 연애를 못한다고 주눅이 들거나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길 이유는 전혀 없다.

연애를 강요하는 사회

"아이유" 위주로 갑시다! 가수 아이유가 21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정규 4집  <팔레트> 음악감상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아이유의 정규 4집 <팔레트>는 특정 장르나 스타일에 제한되지 않은 10개 트랙을 담은 앨범으로 직접 프로듀싱을 맡았으며 빅뱅 지드래곤, 이병우, 손성재, 이종훈, 선우정아, 오혁, 샘 김, 김제휘 등의 뮤지션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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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유" 위주로 갑시다! 가수 아이유가 지난해 7월 21일 오후 서울 합정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정규 4집 <팔레트> 음악감상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이정민


그런데도 왜 현대사회에서 연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열등감은 느끼고  스스로 작아지는 것일까? 이 노래에서도 드러나듯, 봄날 솔로인 사람들은 자꾸만 주눅이 들고, 나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며,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너만 왜 아직도 그러니'라고 타박을 받는다. 이런 열등감은 심리학적으로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이는 자연스런 심리적 현상이라기보다는 알게 모르게 '연애를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 만들어진 반응이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내 마음이 자연스레 끌리는 사람이 없는데도 유난히 연애를 하라고 강요한다. 연애를 못하는 사람은 남성이나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것으로 비쳐지고 사회에서 낙오된 비주류 취급을 받는다. 미혼이 아닌 의지에 의해서 비혼을 선택하는 인구가 많아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각종 매체에서는 연애를 못하고, 연애를 하더라도 결혼에 골인하지 못하는 것은 부모에게 못할 짓을 하는 불효로 간주되기까지 한다.

추측 건데, 연애를 강요하는 이런 분위기는 연애를 통해 가부장적인 결혼제도를 유지하려는 집단 무의식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가부장적인 결혼제도에 반하는, 즉,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열등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나 억압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개인이 가진 다양한 특성과 선택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심리학적으로 연애나 사랑의 목적은 결국엔 개인의 성장이다. 그런데 이 개인의 성장은 연애하지 않고도 가능하다. 세계적인 종교철학자 폴 탈리히가 이야기 했듯 사람은 '솔리튜드(solitude)' 그러니까 혼자 있는 즐거움을 통해서도 보다 창조적인 나를 발견하고 도약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연애를 못한다고 온전한 내가 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성장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연애가 하고 싶고, 하게 되는 사람은 하면 좋지만, 원하지 않거나, 마땅한 사람이 없다면 일부러 연애를 하는 것보다는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문제는 연애를 강요하는 사회인 것이다. 부당하게 만들어진 열등감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하는 연애는 나의 욕구에 사회적 관점까지 더해져 상대방에게 투사되기 때문에 심리적 성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상의 솔로들이여, 당당하자. 주눅 들지 말고 연애를 강요하는 사회에 맞서자. 밤색 코트에 파묻히지 말고, 봄을 즐기면서 '봄 사랑 벚꽃 말고' 다른 이야기도 좀 하자고 외쳐보자.

* 덧) 그동안 가사공감을 통해 적은 사랑과 연애에 관한 글들의 취지는 '사랑을 통해 성장할 수 있으니 관계 맺기를 두려워하지 말자'지, '연애를 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가 아님을 밝혀둔다.

봄 사랑 벚꽃말고 가사 중 일부

길었던 겨우내 줄곧 품이 좀 남는 밤색 코트
그 속에 나를 쏙 감추고 걸음을 재촉해 걸었어
그런데 사람들 말이 너만 아직도 왜 그러니
그제서야 둘러보니 어느새 봄이

손 잡고 걸을 사람 하나 없는 내게
달콤한 봄바람이 너무해

나만 빼고 다 사랑에 빠져 봄노래를 부르고
꽃잎이 피어나 눈 앞에 살랑거려도

난 다른 얘기가 듣고 싶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버릴
오오 봄 사랑 벚꽃 말고

봄 사랑 벚꽃 말고
봄 사랑 벚꽃 말고
봄 사랑 벚꽃 말고

손에 닿지도 않을 말로
날 꿈틀거리게 하지 말어
맘 먹고 밖에 나가도
막상 뭐 별 거 있나

- 중략 -

누군가와 봄길을 거닐고 할 필욘 없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머물고 싶은 그런 기억을
만들고 싶어 떨어지는 벚꽃잎도
엔딩이 아닌 봄의 시작이듯

사실은 요즘 옛날 생각이 나
걷기만 해도 그리워지니까
다시 느낄 수 있나 궁금해지지만
Then you know what

- 후략 -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이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아이유 하이포 봄사랑벚꽃말고 연애하지않을자유 가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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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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