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을 다룬 JTBC <진실추적자 탐사코드> 2012년 9월 23일 방송분 '성폭력으로 풍비박산난 한 가정 - 어느 자매의 자살'의 한 장면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을 다룬 JTBC <진실추적자 탐사코드> 2012년 9월 23일 방송분 '성폭력으로 풍비박산난 한 가정 - 어느 자매의 자살'의 한 장면 ⓒ JTBC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의 담당 수사관 중 한 명인 조아무개 형사가 경찰청 진상조사에서 "오래된 사건이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정신이 없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경찰청 진상조사 티에프(TF)는 서울 충정로에 위치한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사망한 자매의 어머니인 장연록씨를 참고인 조사했다. 이날 조사는 지난달 말 경찰청이 결정한 진상조사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으로, 진흥원 상담 인력이 함께 배석해 장씨의 심리적 안정을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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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 측은 이날 조사에 앞서 기자와 만나 "조아무개 형사를 비롯한 당시 사건 담당 수사관들을 이미 불러서 조사했다"고 밝혔다. 장씨는 이들 형사에 대해 "부적절하고 의지 없는 수사로 딸들을 죽게 만들었다"고 언론에 여러 차례 호소한 바 있다.

이날 조 형사의 조사 결과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함구로 일관했다. 이 관계자는 "노 코멘트하겠다"며 "나중에 발표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조 형사가 장씨에게 사과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봐달라"는 물음에도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조 형사는 최근 어머니 장씨가 자매의 영정사진을 들고 방송국 관계자와 함께 찾아간 자리에서 장씨와 숨진 자매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 장씨를 영상 카메라로 촬영한 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이날 대면조사도 장씨와 당시 담당 수사관들의 진술이 일부 엇갈리면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앞서 경찰청은 진상조사 계획을 발표하면서 당시 담당 수사관이 장씨의 진정으로 여러 차례 바뀌었고, 이 과정에서 사건을 담당한 수사관이 총 '3명'이라고 밝혔으나, 장씨는 "조사받은 당사자인 내가 가장 잘 안다"며 "4명이다"라고 주장해 혼선을 빚었다.

"피의자 신문조서가 없어서 어머니 진술이 가장 중요"

 지난 18일 경찰청이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의 사망 자매 어머니인 장연록씨를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다. 사진은 참고인 조사가 진행된 서울 충정로소재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입구.

지난 18일 경찰청이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의 사망 자매 어머니인 장연록씨를 상대로 참고인 조사를 진행했다. 사진은 참고인 조사가 진행된 서울 충정로소재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입구. ⓒ 신상미


이날 조사에서 공식 수사기록과 수사관 이아무개씨 본인의 확인을 거쳐 당시 관여한 수사관이 총 4명이라는 사실이 결국 확인됐다. 이들은 여성 수사관 2명과 남성 수사관 2명으로, 현재 2명이 현직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던 것은 가해자들의 협박과 대면조사에서 오는 고통으로 인해 피해자가 2006년께 고소를 취하했고,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가 완료되면서 피의자 12명의 신문조서를 포함한 수사기록이 폐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감찰과 관계자는 "보통 공소시효가 완료될 때까진 보관한다. 검찰에 문의하니 폐기했다고 했다. 그래도 최대한 구해서 조사 중"이라면서 "피의자 신문조서가 없어서 현재 어머니 진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성폭력대책과 관계자는 "일부 기자들이 갖고 있던 것을 건네받았고, 법원 기록 등이 남아 있다"고 답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성기 그림을 그려오라고 했다거나 큰딸이 증거물로 제출한 메모 뭉치를 내리쳤다거나) 언론에 보도된 여러 진술들에 대해 어느 수사관이 무슨 말을 했는지 확인하려 한다"고 밝혔다. 복수의 언론 보도를 통해 영등포경찰서 소속 수사관들이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성기 그림을 정확히 그려오라"고 했다거나 "사건이 안 되는 거 알지 않냐" "나는 기계적으로 고소인의 말을 받아 적어서 위에 올리겠다" 등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민의 공분을 산 바 있다. 특히 조사 중 술에 취한 경찰들이 몰려와 피해자인 큰딸을 에워싸고 "아줌마인지 아가씨인지 12명 상대한 사람 얼굴 좀 보게 모자 벗어봐"라고 말했다고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말 경찰청은 진상조사TF를 꾸리면서 수사과정에서 수사관의 위법 행위 유무를 조사한 뒤 위법 행위가 확인되면 정식수사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찰청 관계자는 "당시 '수사상 과오'가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라며 "더불어 사건 자체에 대한 재수사 가능성이 있는지 검토하는 것이다. 공소시효, 소추 조건(공소를 제기하기 위한 소송조건) 등 법률적인 면을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수사관의 잘못이 드러나면 수사로 이어질 것"이라면서도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형사들이 뭐라고 해도 참아내면 될 줄 알았다"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좌)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청와대 소셜라이브 '11:50 청와대입니다'에서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는 국민청원에 답변하고 있다.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좌)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청와대 소셜라이브 '11:50 청와대입니다'에서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는 국민청원에 답변하고 있다. ⓒ 유투브 캡처


복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경찰청은 당초 현직에 있는 수사관 2명과 자매의 어머니 장씨만을 소환조사한다고 밝혔다. 이에 기자가 "실제로 정식수사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면 형사사건이 되므로 경찰을 떠난 사람도 소환대상이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질의하자 "(퇴직자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서 "정식수사로 전환되면 퇴직자도 부를 예정이다. 조사를 해봐야 징계 사안인지, 형사 사안인지 파악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이렇듯 당초 퇴직자를 배제하고 현직 경찰관만 소환조사하기로 발표한 것을 두고 처음부터 TF 측이 경찰 내부 징계 수순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경찰청이 아닌 타 장소에서 조사가 진행된 것은 경찰청 측에서 먼저 장씨에게 원하는 장소에서 조사받을 수 있다고 제안하고, 그동안 장씨를 지원해온 진흥원 측이 선뜻 장소를 제공하면서 이뤄졌다. 어머니 장씨를 배려하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으나 장씨가 조사에 앞서 진흥원 관계자와 상담을 진행하면서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진상조사단과의 조사에서 종종 답변 내용이 조사실 밖으로 흘러나오기도 했다. 조사는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포함해 당시 어떤 형사가 무슨 발언과 행위를 했는지, 이들의 언행에 부적절함은 없었는지 등을 주로 묻고 답변했다. 공식 수사기록과 장씨의 진술, 담당 형사의 진술이 서로 엇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장씨의 기억과 공식 수사기록을 대조해가면서 오류를 수정해 나갔다.

경찰은 인권침해성 발언에 대해 왜 항의하지 않았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장씨는 "형사들이 뭐라고 해도 참아내면 될 줄 알았다"면서 "조 형사와 이 형사가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보니 다른 것은 잘 생각이 안 난다"는 말을 반복해 주변을 안타깝게했다.

장씨는 휴식시간에 기자들과 만나 "나는 오늘만을 기다렸다"면서 "조 형사를 파면시켜 주길 바란다. 파면시키지 않으면 우리 애들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경찰에게 나중에 연금까지 주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공소시효 문제와 관련해선 "문재인 대통령께서 가해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주시길 바란다"면서 "대통령께서 만들어 주실 걸로 믿으면서 하루하루 살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조사는 오후 2시 30분께 시작돼 새벽 2시까지 약 11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청와대 측은 총 22만2770명으로 국민청원이 마무리된 본 사건에 대해 지난 13일 "2004년에 일어난 일이라 공소시효 문제가 있고, 공소시효가 지난 수사기록은 폐기하도록 돼 있다. 수사기록도 폐기된 상태라 여러가지로 어려움은 있다"면서도 "당시 피해자를 도왔던 변호인, 민사소송 기록, 조사에 참여했던 수사관들 등 최대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당시 수사과정에 부적절한 일이 있었는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최대한 열심히 들여다 보겠다"고 답변했다.

한편 단역배우 자매 자살 사건은 지난 2004년 드라마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하던 언니가 업계 관계자 12명에게 성폭력을 당한 후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망한 뒤 동생도 뒤따라서 자살 사망한 사건으로, 최근 우리 사회에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단역배우 자살 미투 위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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