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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온라인 강의업체 '에스티유니타스'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장민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가족은 장씨가 숨지기 직전 잦은 야근과 과도한 업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으며, 이 때문에 우울증이 악화됐다고 주장합니다. 36살 젊은 장씨에게 '과로 자살'의 그림자가 있었다는 겁니다. 공인단기·스콜레 웹디자이너 과로자살 대책위는 '에스티유니타스 웹디자이너는 왜 힘들어 했는가' 기획 연재를 통해 한 노동자의 사망에 얽혀있는 이면의 문제를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나는 간호과를 졸업해 1년 8개월을 간호사로 일했다.
 나는 간호과를 졸업해 1년 8개월을 간호사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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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간호과를 졸업해 1년 8개월을 간호사로 일하다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충동이 생겨 퇴사하였고, 2007년부터 약 10년간 웹디자이너로 일해왔다. 그리고 작년 초부터는 안정적인 월급을 뒤로하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는데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도 우울증이었다.

내가 일했던 두 직종은 분명히 정상적인 업무 환경은 아니었다. 하지만 업계 특유의 나쁜 관행들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나도 마찬가지로 잦은 이직과 퇴사라는 방법으로 그 현실을 피해왔다.

2018년 1월 3일 교육 콘텐츠 제작업체인 에스티유니타스에서 근무하던 고 장민순 웹디자이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한 달 후인 2월 15일 서울아산병원의 신규로 근무하던 고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에스티유니타스 측은 고인의 사망원인이 우울증이라는 공식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서울아산병원 측은 유가족들의 말과 달리 고인이 '예민'하고 '우울한 성격'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두 명의 희생자들은 왜 생겨났을까?

간호사를 연료로 태우는 병원

고 박선욱 간호사는 교육 기간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지속적으로 주변에 호소했다고 한다. 사망 직전 남긴 메모엔 하루 3~4시간의 짧은 수면시간과 매번 끼니를 거르게 되는 어려움을 적기도 했다.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한 적도 있었다는데, 그 와중에도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도서관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던 사망 며칠 전에는 배액관을 찢는 실수가 발생한다. 그 사고 후, 박 간호사는 소송 위기를 느껴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만 보아도 태움, 인력 부족, 미흡한 신규 간호사 교육제도, 장시간 노동, 수면 부족문제 등 간호사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스템의 문제로 발생한 일을 병원이 고스란히 개인의 문제로 떠넘기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억울한 마음과 함께 과거에 내가 일했던 환경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신규 간호사로 일한 지 한 달이 지난 후 '원래 교육 기간에는 차비와 밥값만 제공한다'라는 말과 함께 15만 원이라는 첫 월급을 받았다. 학교 교육과 병원 업무의 갭이 너무 커서 모두에게 민폐만 끼친다는 생각이 들어서 15만 원도 감사히 받았다.

물품 카운팅, 인수인계 등의 업무 때문에 출근 시간보다 항상 1시간씩 일찍 병원에 왔다. 그리고 환자의 상태가 안 좋거나 일이 많을 경우 시간 외 근무도 하게 됐다. 점심시간은 눈치를 보며 식당으로 뛰어 내려가 5분 만에 밥을 '마시고' 올라왔으며, 양치를 하는 중에도 보호자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했다. 소화가 되지 않는 배를 움켜쥐고 바로 오후 업무에 뛰어들었다.

당시 내가 일하던 병원에서는 간호사 1명당 35명 이상의 환자를 맡았고 저녁 6시 이후가 되면 응급실까지 함께 담당해야 했다. 제발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지 않기를,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기를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2명의 간호사가 응급실의 위급한 환자를 보는 동안 입원 환자의 컨디션이 나빠졌고, 병원에 입원했음에도 아무런 처치를 받지 못한 것에 분노한 보호자가 과도로 본인의 배를 그었다. 간호사실은 피범벅이 됐다. 과도를 든 보호자 앞에서 30분 이상을 대치해야 했지만, 다음 날 출근해서 그 보호자의 상처를 치료해줘야 했다. 병원은 트라우마가 생긴 간호사를 앞세워 그 보호자에게 사죄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소위 응급 사직(연락 없이 그만두는 것을 의미한다. 인력이 부족해서 사직도 쉽게 할 수 없다)이라고 불리는 일들이 벌어졌다. 전체 간호사의 1/3 정도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직을 했다. 결국 3교대의 근무는 2교대로 바뀌게 됐다. 점점 힘들어지는 환경에서 내가 노력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처음으로 커다란 무기력을 느꼈다.

이런 환경을 바꿔 달라고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분위기였고 6년 차 이상의 선배들도 찍소리하지 않은 채 계속 일하곤 했다. 심지어 간호부장님도 경영진 앞에서 눈물을 보였지만 그 아무도 이런 현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출근하던 어느 날은 차에 치여서 몇 주 입원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했다(많은 간호사들이 실제로 많이 주고받는 얘기 중 하나이다). 병원의 통유리를 보면 깨부수고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도 들었다. 어느 날의 퇴근길에는 나도 모르게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로 빨려 들어갈 뻔했다.

간호사는 봉사, 헌신, 백의의 천사와 같은 사회적인 인식 때문에 일한 만큼의 대우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그 점은 간호사를 고용하는 입장에서 개개인을 압박하기에 더 편리한 점으로 작용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퇴사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그 좋은 전문직 직장을 왜 그만둬?'라는 말을 듣기 마련이다.

하지만 간호사는 환자에게 실수라도 하게 되면 순식간에 가해자로 변할 수도 있는 힘이 없는 존재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가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내부적으로만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육체적 정신적인 상처를 받게 되고 이직, 퇴사, 죽음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웹디자이너와 간호사의 죽음의 연결고리
 웹디자이너와 간호사의 죽음의 연결고리
ⓒ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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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디자이너를 부속품처럼 사용하는 IT업계

힘들게 전향한 웹디자이너로 일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아직도 나는 우스갯소리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힘들어서 그만두려니 부모님이 다시 간호사로 취직하라고 해서 10년을 버텼어."

첫 회사(웹 에이전시)에서는 14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좀 짜긴 하지만 비전공에 경력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입사하고 보니 연봉에 퇴직금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1/13이라는 말과 함께. 심지어 그 회사에서는 4대 보험을 내는 척 내 월급에서 그만큼의 돈도 떼어갔다. 그걸 알게 된 후 8개월간의 첫 회사 생활이 끝났다.

두 번째 회사(웹 에이전시)에는 침대방이 있었다. '휴식 공간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복지가 좋은 회사라고 생각했다. 이 회사는 야근 수당을 준다고 했지만, 출퇴근을 기록한 기계의 데이터가 삭제되었다며 야근 수당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대가 없는 잦은 야근과 철야로 침대방을 굉장히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저녁 10시에 퇴근을 하면 엄마가 "오늘은 빨리 마쳤네?"라고 말했다.

어떤 회사는 월 40시간 이상 야근을 해야 수당이 나오는 곳도 있었다. 그들은 그것이 엄청난 복지라고 뿌듯해했다. 일하다 보니 월 100시간 이상의 야근을 하게 되어 야근 수당이 쏠쏠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언젠가부터 일 중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큰 기업에서 웹디자이너를 채용할 때 <웹 에이전시 출신 우대>라는 문구를 자주 사용한다. 웹에이전시에서의 웹디자이너는 한 달 100시간이 넘는 야근과 철야를 무상으로 하면서 남들에 비해 실력이 2~3배씩 좋아진다. 큰 기업 입장에서는 낮은 연차의 사람을 부리면서 큰 효과를 보는 것이다. 모두가 그 관행을 알고 있다.

퇴사를 앞둔 동료가 6개월 이상의 무월경 현상이 있었다며 고백하는 일, 퇴사 후 한 달 이상 요양을 해야만 하는 컨디션의 친구들도 굉장히 자주 본다(본인도 많은 지병을 달고 산다).

IT 업계 전반적으로 갑을 관계가 뚜렷해서 클라이언트가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면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낮아진 단가는 직원들에게 열악한 환경으로 다가온다. IT업계의 대부분은 무상 야근·철야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것을 '열정'이라고 말한다.

낮은 연차의 웹디자이너들은 이런 곳에서 부속품처럼 사용돼다가 더 단위가 큰 일반회사·게임회사·교육업계 등으로 이동하게 된다. 의심이나 저항 없이 일을 받아서 하는 습관이 들어버린 웹디자이너들은 나쁜 관행을 잘 알지도 못한 채 혹사당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런 점을 이용하는 기업이 매우 많다.

 간호사와 웹디자이너의 공통점
 간호사와 웹디자이너의 공통점
ⓒ 디자인 : 이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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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죽음이 별개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

고 장민순 웹디자이너가 일했던 교육 콘텐츠 제작업체 에스티유니타스는 영단기, 공단기 등 사용자가 아주 많은 콘텐츠들을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웹 콘텐츠들을 만들어낼수록 그것이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그렇게 들어오는 수입을 직원들의 복지, 아니 열악한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데 더 많이 사용했더라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고 박선욱 간호사와 고 장민순 웹디자이너는 죽음을 선택했지만 나는 이직과 퇴사로 이런 현실을 피해왔다. 하지만 내가 피한 그 자리에 또 누군가가 일할 테고, 이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것이다. 두 업계의 업무 환경이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큰 공통점이 하나 있다. 한 명이 할 수 있는 일 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인권도 위협하는 이런 노동 문제는 비단 간호사와 웹디자이너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쩌면 이런 현실에서 떳떳할 수 있는 직업군이 과연 존재할까? 고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과 고 장민순 웹디자이너의 죽음이 별개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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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관한 충동, 지인이 자살에 관한 암시를 한다면 24시간 운영되는 상담전화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고,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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