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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은 지난 6일 2400명 희망퇴직을 추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3만여 명의 조선 노동자가 직장을 잃은 상황이고, 조선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정부 발표가 있음에도 강행되는 구조조정이라 지역과 정치권에서도 비판 여론이 높습니다.

희망퇴직은 가족에게 어떤 의미일까? 17일 오전 어렵게 희망퇴직 대상자 가족인 40대 여성 한 분을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 기사 형식보다는 녹취록을 풀어 전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분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합니다...기자 말

제 남편 이야기를 하면 눈물부터 나요. 정말 일만 하고 살았거든요.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가 90년대 중반이었어요. 현대중공업 관리직 부서에 일하고 있었는데 1년 정도 연애를 하다가 결혼했습니다.

90년대는 다들 그랬지만 그때는 정말 퇴근 시간이 없었어요. 아침 7시에 나가면 보통 10시 넘어야 퇴근을 했죠. 저녁 12시가 다 되어서 퇴근을 할 때도 많았어요. 그럴 때는 버스가 없으니까 제가 태우러 가야 했죠.

저녁 12시에 밥도 못 먹고 들어오는 남편에게 밥상을 차릴 때면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하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회사일이 전부였던 남편은 젊었을 때는 활동적이고 책 보는 것도 좋아했는데, 자기 좋아하는 걸 거의 못했어요. 회사 내에서도 승진 시험도 있고, 그런 게 많나 봐요.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고, 전공서적 하나를 더 봤죠. 회사에서 시키는 일, 시키지 않는 일까지 찾아서 했어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저녁 12시에 들어와서 졸면서 공부하는 모습도 많이 본 것 같아요. 요즘 말로 저녁이 있는 삶은 물론이고 주말도 없었죠.

그렇게 회사 일을 하는 남편에게 집안일까지 하라고 하는 게 너무 미안해서, 아이들을 키우는 건 고스란히 저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힘들었죠.

이제 아이들이 다 커버려서 부모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아이가 어릴 때는 아빠와의 관계가 거의 없었어요. 우리 아이들은 엄마 '껌딱지'라고 불렸어요. 그런 게 많이 속상했죠.


오토바이를 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 현대중공업 오토바이를 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 이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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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회사의 희망퇴직 후 달라진 남편

그런 남편이 2년 전 현대중공업에서 대규모 희망퇴직이 있고 나서부터 조금씩 달라졌어요. 조선 산업이 어렵다고 하면서 현대중공업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어요. 그때 우리 남편은 나이도 젊었고, 맡은 일 때문인지 희망퇴직 대상자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때 본 거죠. 자기 동료들이 쫓겨나고, 심지어 자기보다 더 회사에 충성하고 더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까지 쫓겨나는 걸 봤어요. 그때부터 회사 일만 생각하면서 살지 않더라고요.

회사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변한 것 같기도 해요. 조선 경기가 어려우니까 일이 줄어든 것도 있겠지만, 동료들이 쫓겨나는 것을 보고 나서는 다들 목숨 걸고 회사 일을 하는 분위기는 아니래요. 그래서 눈치도 덜 보고 퇴근하고, 그런 날들이 많아졌어요.

남편도 그런 이야기를 해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열심히 해봐야 나도 언젠가는 쫓겨날 거라고…"

그때 물어 본 적이 있어요. "희망퇴직인데 희망퇴직 지원서만 안 쓰면 되는거 아니냐? 뭐 그런걸 고민하냐?"고 물었죠.

그때 남편에게 들은 이야기는 좀 충격적이었어요.

윗사람들이 차례로 불러서 개인 면담을 해 희망퇴직을 하라고 강요하기도 하고, 심지어 책상을 치워버리는 경우, 전혀 전공과 관련이 없는 부서로 발령을 내고, 월급을 깎는 경우도 있대요. 그러면 한 사람 두 사람 '내가 이러고 회사를 다녀야 하나'하면서 그만두게 된대요.

남편 동료는 책상이 없어져서 집에서 상을 하나 들고 와서 자기 자리를 만들어서 앉아 있었는데 그렇게 견디던 사람도 나중에는 결국 희망퇴직을 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관리직은) 노동조합도 없고 하니까 하소연할 데도 없대요. 당하는 사람도, 보고 있는 사람도 힘들었대요.

그때부터는 남편한테 다시 묻지를 못하겠더라고요.


현대중공업 희망퇴직 중단 촉구 시민대책위 발족 기자회견
▲ 시민대책위 발족 사진 현대중공업 희망퇴직 중단 촉구 시민대책위 발족 기자회견
ⓒ 이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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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남편이 희망퇴직을 권고 받았어요

그런 남편이 자기도 며칠 전 상사에게 희망퇴직을 권고받았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까짓거 굶어죽기야 하겠냐며 당당하게 얘기하라'며 말했던 나인데 막상 그 얘기 들으니까 많은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제 고등학교, 대학교 다니는 아이들 생각도 나고, 남편이 그래도 좀 더 견디어야 할 텐데….

사람이 이렇게 변하는구나 하면서 남편한테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생각해보면 우리 남편이 정말 염색을 열심히 해요. 조금만 흰머리가 올라와도 염색을 하는데, 염색을 열심히 하냐고 물으면 회사에 흰머리난 사람이 없대요. 다들 희망퇴직이니 조기퇴직이니 하면서 나가는 판이니 회사에 50대가 거의 없나봐요. 남편 나이가 아직 50도 안되었는데 희망퇴직 이야기를 듣는 판이니 남편이 왜 그리 염색에 집착하는지 알만하죠.

물론 남편은 희망퇴직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그 날부터 남편은 힘이 없습니다. 어디 나갈 생각을 안 해요. 회사가 어려워졌으니 모임에 나가면 '너는 괜찮나?'는 이야기 듣는 게 싫은가 봐요. 회사 내에서도 예전처럼 회식을 한다거나 동아리 모임 같은 게 사라진 지 오래예요. 직원들끼리도 서로 눈치만 보고 있어요.

예전에 비하면 시간은 많이 나는데 미래가 불안해지니까 걱정과 스트레스만 많죠.

장사 잘되는 지인의 식당에라도 가면 남편이 진지하게 식당 사정을 물어보는데 그럴 때면 제 심장이 덜컥하는 기분이에요. '나는 음식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하지?' 뭐 이런 생각까지 들어요.

현대중공업 다니면 다들 돈 많이 모아두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정규직 대기업 사원이니 다른 직장에 비하면 안정적일 겁니다. 하지만 양가 부모님들을 일찍 모셔야 해서 생활이라는 것이 뻔 했어요. 그마저도 조선 경기가 안 좋아진 지난 몇 년간은 수당도 성과급도 줄었습니다. 더 힘들게 사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지난 10년 좀 벌었으니 이제 일자리에서 쫓겨나도 되는 노동자는 없습니다.

조선소가 전부인 울산 동구는 지난 몇 년간 매년 구조조정이야기입니다. 그나마 이제 연말부터 조선경기가 살아난다고 해서 이제 끝인가 보다 했는데, 2400명 추가 희망퇴직을 받는다고 하니 동네도 어수선합니다.

남편과 같은 사람들은 정말 청춘을 바친 회사입니다. 조선경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니 회사도 조금만 일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 방법을 찾아주었으면 좋겠어요.

저희 남편뿐 아니라 현대중공업 남편분들 모두 포기하지 말고 회사 끝까지 다녔으면 좋겠어요. 직장인들 모두 퇴직해서 가족과 오순도순 사는거 말고 큰거 안바라잖아요. 마음이 아픕니다. 힘내세요. 노동자 여러분.

그리고 저의 남편에게도 한마디 남깁니다

당신은 20년 넘도록 회사를 다니면서 그래도 나름대로 안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고 싶었고, 최선을 다하려고 했어. 지켜보면서 참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보여서 늘 자랑스럽고 존경하는 마음이었어. 힘들어도 아이들과 가족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고마웠고.

요즘 힘없는 모습 보니까 너무 속상하고, 빨리 잘 정리가 되어서 우리 가족도 걱정 안 하면서, 좀 더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힘내라 남편.


태그:#현대중공업, #희망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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