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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ebol(재벌)'에 이어 세계 경영학 교과서에 또 하나의 한국어가 수록됐다.'Gapjil(갑질)'이 바로 그것.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집어 던지고 자신과 함께 근무하는 부하 직원에게 악을 쓴 대한항공 차녀 조현민 전무 문제를 보도한 <뉴욕타임스> 기사에서다. CNN의 조롱은 더 적나라했다.

"맞습니다. 그 가족입니다. 성질을 부린 덕에 다시 뉴스에 등장했네요."

이로서 잊었던 'Nut Rage'(우리 식 '땅콩 회항')까지 다시 언급됐다. 외국 친구들의 대한항공(KOREAN air)에 대한 조롱이 다시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최태원 회장, 이재용 부회장에 이어 한국 기업에 오너리스크가 또 등장한 셈이다.

규모로 보면 한진이나 삼성, 현대, SK의 몇 백배가 될 미국의 부호들에겐 왜 이런 뉴스가 없을까? <뉴욕타임스>의 친절한 설명처럼 "봉건 귀족처럼 행동하는 임원들이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갑질'"이 왜 한국 사회에서만 유독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관리의 삼성' 보다 더 철저한 관리가 MS, 애플, 아마존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일까?

지난 주말 다녀온 미국 최고 부호의 저택 투어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부호' 그리고 '진정한 유산'에 대한 반면교사 같은 곳이었다. 

삼성증권 공매도 사태로 소환된 이름, 벤더빌트

 미국 The Gilded Age 가장 대표적 건물인 The Breakers의 황금방 내부. 모두 유럽에서 만든 후 배에 싣고 와 이 곳에서 조립했다.
 미국 The Gilded Age 가장 대표적 건물인 The Breakers의 황금방 내부. 모두 유럽에서 만든 후 배에 싣고 와 이 곳에서 조립했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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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의 부호 하면 떠오르는 몇몇 가문이 있다. 철강왕 카네기, 석유 재벌 락펠러, 자동차 산업의 헨리 포드. 그리고 이들보다 더 부자였지만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 있다. 바로 밴더빌트. 네덜란드 이민자의 후손으로 미국 최대의 선박회사 선주로 또 황금알 낳는 거위였던 미국 북동부 중서부 철도 노선 대부분을 소유해 '철도왕'으로 불렸던 이다.

최근 그의 이름이 한국 언론에 잠시 등장했다. 삼성증권 공매도 사태 덕이다. 1868년 밴더빌트는 동부 지역 마지막 알짜노선이 될 이리(Erie) 철도 매입을 위해 주식을 사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경쟁자는 밤새 인쇄기를 돌려 700만불 어치의 종이 주식을 찍어 시장에 내 놓는다. 유령 주식의 등장으로 주식 지분율은 절반 가까이 떨어졌고 밴더빌트 뿐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도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매수된 사법부와 부패한 관리들이 결합해 두 사람의 인수전은 진흙탕 싸움이 되고 만다. 유명한 '이리 전쟁(Erie War)'이다.

무법과 탈법 속에 밴더빌트는 부패한 사법부와 공직자의 힘을 빌어 황금노선을 확보해 그의 재력을 더욱 공고히 한다. 사망 당시 그의 재산은 미국 국립은행 총 예금액의1/8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은 큰 아들은 그 재산을 두 배로 불려 미국 GDP의 25%에 해당하는 수익을 벌어들였다. 무소불위의 시대, 밴더빌트 가문은 명실공히 미국 최대의 부자였다.

밴더빌트 가문의 재력과 영향력을 상징하는 곳으로 더 브레이커스(The Breakers)가 있다.  1897년, 할아버지의 철도회사 사장직을 물려받은 손자 밴더빌트는 같은 해 부자들의 저택이 즐비한 뉴포트에서 가장 큰 여름 별장을 짓기로 결심한다.16세기 유럽 궁궐들을 본 따기 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와 기술자들을 모았고 유럽 호주, 중국을 비롯 세계 각 국에서 재료를 공수했다. 그렇게 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스타일의 70여개 방으로 구성된 대저택이 완성됐다.

지난 주말 아침 시간이었지만 저택 앞 튼튼한 쇠문 아래엔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있었다. 이 저택은 1년 30만명이 방문하는 관광 명소다. 입장 등 모든 관리는 <뉴포트 카운티 보존회>에서 맡고 있다.

예전엔 마차가 다녔을 자갈밭을 지나 1층에 들어서니 넓은 중앙 복도를 둘러싸고 수 많은 방들이 있다. 아침과 저녁 식사가 다른 장소에 준비되고 손님을 맞는 방이 있다. 거대한 샹들리에와 긴 탁자가 놓인 회의실,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사교할 수 있는 황금방, 남성 전용인 당구대가 있는 공간과 높은 책장으로 둘러 쌓인 도서관, 곳곳엔 아름다운 분수대와 정교한 조각으로 가득해 마치 화려한 박물관에 온 느낌이 든다.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올라가면 부부와 아이들의 방이 각각 있는데, 모두 널찍한 욕실과 옷 방이 딸려 있다. 특히 모든 욕실에 달린 4개의 수도꼭지엔 바닷물을 덥혀 실내 목욕이 가능하게 설계돼 있다. 만질 수 없는 고가구와 그림으로 둘러싸인 2층 투어를 마치면 가정부가 음식을 나르고 하인이 오르내리던 좁은 계단을 지나 거대한 부엌을 마지막으로 저택 투어가 끝난다. 24달러의 입장료가 아쉬워 3층은 올라갈 수 없느냐고 물었더니 관리인이 고개를 젖는다.

"그 곳은 밴더빌트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곳이야."

저택에서 쫓겨날 위기의 후손들

  2층에서 바라본 The Breakers 메인 홀.
 2층에서 바라본 The Breakers 메인 홀.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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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당시 3층은 이 거대한 저택을 운용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메이드와 버틀러의 숙박을 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곳은 밴더벨트 성을 쓰는 그 직계 후손들의 살림 집이다. 그러니까 엄청난 상속세며 재산세, 관리비에 부담을 느낀 벤더빌트의 후손들이 <뉴포트 카운티 보존회>에 이 대저택을 우리 돈 약 4억원의 가격에 넘긴 것이다. 세금 부담 없이 자신들이 나고 자란 그 곳에서 계속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1972년에 성사됐던 그 약속은 지금 <뉴포트 카운티 보존회>와 후손들간의 분쟁이 벌어지면서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단체는 안전문제를 이유로 후손들의 퇴거를 통보한 상태고 후손들은 동의하지 못하고 있다.

"박물관용으로는 안전하지만, 주택용으로는 위험할 정도로 오래 된 시스템이라구요? 이건 우리를 나가게 하려는 압박 아닌가요?"

100년 전 미국 최고 부자 가문의 현재 모습치고는 좀 놀라왔다.이 얘긴 현재 밴더빌트 가문의 위상을 말해주는 대표 사례다. 카네기나 록펠러가 대학이나 도서관, 병원, 공연장 등에 엄청난 금액을 기부하고  그 이름과 영향력이 현재도 미국 땅 곳곳에 남아 있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 '철도왕'이었던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의 후손들은 아버지와 할아버지,증조할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미국 곳곳에 화려한 저택들을 경쟁적으로 지었다. 형제들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해야 했다. 뉴욕 등 미국 동부에 그의 이름을 딴 건물들이 많은 이유다. 유일하게 가문의 이름이 들어간 학교인 밴더빌트 대학의 경우, 코넬리우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건너간 100만불이 종자돈이 되었다는 아이러니도 있다. 

2대인 윌리엄 밴더빌트 때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가문은 3대부터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다. 3대인 윌리엄 키삼은 요트 승마 등의 화려한 취미 생활로 유명했다. 4대인 레져널드도 자신의 유산을 사교모임으로 탕진했다. 급기야 1970년대 철도 수요 감소로 가문에게 부의 원천이 되어 주었던 고조 할아버지의 철도 회사는 파산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회사 운영보단 화려한 취미 생활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던 3대 윌리엄 키삼은 이렇게 말했다.

"돈이 많으니 내가 애써 찾거나 구해야 할 것이 없었다.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것은 행복의 장애물이었다"

미국 최고의 부자 가문이 몰락한 건 채 100년도 걸리지 않았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가장 나쁜 일"

현재 미국 최고의 부자는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다. 우리 돈으로 96조를 소유하고 있다. 그 뒤로 워렌 버핏, 새롭게 떠오른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3위다. 미국 뉴스에서 만나는 이들 최고 부자들에 관한 토픽은 대부분 '기부'와 '부자 감세 반대' 같은 얘기다. 자식이 무슨 사고를 치고 본인이 어떤 물의를 일으켰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아내와 전 세계 기아 해소를 위해 재단을 운용하고 있는 빌 게이츠는 세 명의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각자 1000만 불,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하겠다 했다. 아직 젊은 마크 주커버그도 첫 딸이 태어난 날, 페이스북에 재산 기부 계획을 올렸다. 다른 부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에게 절대 흥청망청할 돈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21세기 미국 부자들의 다짐 이면에는 바로 밴더빌트가 있다. 재산을 물려주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라는 밴더빌트 가문의 교훈을 보아온 미국 부자들의 선택인 셈이다.

 더빌트 가문의 5대손인 글로리아 밴더빌트와 그녀의 아들 앤더슨 쿠퍼.  유산은 인간의 진취성을 망칠 수 있는 저주 같은 존재라며 어머니의 유산을 거부했다.
 더빌트 가문의 5대손인 글로리아 밴더빌트와 그녀의 아들 앤더슨 쿠퍼. 유산은 인간의 진취성을 망칠 수 있는 저주 같은 존재라며 어머니의 유산을 거부했다.
ⓒ 최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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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밴더빌트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이는 CNN 앵커인 앤더슨 쿠퍼다. 그의 엄마는 2차 대전 후 뉴욕 사교계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글로리아 밴더빌트이다. 영화배우로 모델로 유명 패션 디자이너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머니는 2000억대의 자산가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엔 어떠한 유산도 없다. 아흔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한 푼도 주지 않겠다 선언했고 아들도 당연하다 맞장구 쳤다. 가문의 흥망성쇠를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보았을 앤더슨 쿠퍼에게  '유산'이란 "인간의 진취성을 망칠 수 있는 저주 같은 존재"일 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유산을 생각하고 살았으면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까요?"

미국 경영학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가장 중요한 과목 중 하나다. 리더십과 기업 윤리, 환경과 사회에 이바지하는 경영이 기업의 흥망성쇠에 가장 큰 요소라 믿고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미국 국적을 획득하고 단순히 학위만을 취득하는 것 말고 미국 경영학계의 이런 흐름은 좀 읽으셨으면 좋겠다. '갑질' 부리는 한국 '재벌'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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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시민 기자. 현 오마이뉴스 북미 통신원.

이 기자의 최신기사 6월 12일 아침 미국 뉴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