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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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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네 엄마 이야기를 해보련다. 예전에 사진관을 할 적에 집이 좁아 책 쌓아놓을 곳이 마땅찮아 사진관에 가져다 놓기도 했던 건 너도 잘 알 터이다. 책이 얼마나 많았는지 사진 찍으러 온 손님이 서점인 줄 알고 되돌아가는 웃지 못할 일이 종종 있을 정도였지.

15년 전, 주말마다 엄마와 오토바이를 타고 시골로 들로 여행을 다녔는데 노자 도덕경 강의 노트를 만들어 청평 한적한 산속에 엄마를 앉혀놓고 강의를 한 일이 있었다. 1장부터 81장까지 강의를 하는 데 3년 걸리더구나. 81장까지 강의를 마치고 무슨 마음으로 도덕경 강의를 끝까지 들어주었는지 물어보았다.

"당신이 잠까지 줄여가며 하는 공부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몇 번 듣다 보니 재미가 있더라고. 다른 집 남편 술 마셔 없애는 돈 당신은 책 사서 공부하니 고맙기도 하고. 도덕경 강의를 들어가면서 나중에는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해줄까 기다려지기도 했는걸. 노자 철학이나 불교 철학은 내가 모르니까 말을 못 하는데, 당신 시 좋아하잖아? 맨날 시집만 사서 읽지 말고 기회가 되면 시인을 시귀어 봐. 당신 붙임성 좋잖아? 시인들에게 뭘 배우라는 게 아니라 그들을 만나서 좋아하는 술 한잔하며 즐겁게 지내면 재미있잖아? 시인들은 어떤 생각으로 시를 쓰는지 알면 당신 시 읽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마침 블로그에서 꽤 여러 명의 시인과 소통이 있었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의 도움으로 남해의 꽤 이름난 시인을 만나러 가기도 했다. 그게 아버지가 시인들과의 인연을 맺기 시작한 첫걸음이었다. 그 뒤로 여러 시인이 사진관으로 찾아오기도 했는데 네 엄마가 참 대단한 사람이다.

사진관으로 시인들이 오겠다는 연락을 받으면 엄마는 족발집이나 아버지 잘 가는 중국집에 미리 넉넉하게 술값을 계산해놓고 아버지에게 술값 달라는 말을 하지 말라며 부탁을 해놓았다. 재미있던 일은 시인들을 만나고 와도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재미있었느냐? 물어보지를 않아 이상하다 했는데 족발집 여사장이 시인들과 하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생중계하다시피 했더구나. 족발집 여사장이 언젠가 아버지를 보며 하는 말에 우스워 혼났다.

"나는 형부도 보통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형부가 만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한결같이 온전한 사람이 없어? 하는 말도 이상하고 다 정신없는 사람들 같아? 원래 그림 그리거나 시 쓰는 사람들은 그런 거야?"

할 말이 없어 그냥 웃고 말았다만, 사실 시인들을 만나면서 그들에게 뭘 배웠다고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옛 한시나 당시에 더 많은 애정이 생겼단다. 이런저런 일로 지금은 특별히 만나는 시인이 없다만 지금부터 아버지 이야기 잘 새겨들으면 좋겠구나.

엄마는 없는 살림에 아무리 책을 사도 잔소리를 안 한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술값을 미리 계산해놓고 아버지는 즐기기만 하면 된다. 아버지가 공부한 노자 도덕경 강의를 3년 동안 열심히 들어주었다. 아버지가 쓴 글을 읽으며 좋은 말보다 쓴소리를 더 많이 한다.

이러한 엄마 덕분에 아버지는 어떻게 변했을까?

엄마의 응원에 힘입어 열심히 공부해가며 틈틈이 쓴 글이 오마이뉴스에 251개의 기사가 올랐으며,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시인'이라 부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아버지를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툭툭 건드려가며 장난을 일삼던 사람들이 공손해졌고 아버지를 남에게 소개할 때 '글 쓰는 사람'이라며 소개를 한다. 마지막으로 결혼한 지 한 달 된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어진 남편이 아내를 더 사랑스러운 여자로 만들기도 하지만 어진 아내는 남편을 바꾼다. 네가 웃어야 남편도 웃는다. 웃을 일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남편과 함께 웃을 일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아끼지 말아라. 돈은 그런 곳에 쓰려고 버는 거란다. 사랑한다 딸아, 너만의 비밀을 하나 만들어라.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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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失花)

이상(李箱)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것이다.

나는 영원한 절름발이로다. 슬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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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아버지와 딸, #시집,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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