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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이 지났지만 세월호 참사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에게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참사를 겪은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의 치열한 진상규명 요구에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이 남아 있습니다. 세월호는 뭍으로 올라왔지만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은 무엇인지, 침몰하고 있는 상황에서 왜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는지, 당시 정부는 진상규명 노력을 왜 조직적으로 방해하려 했는지 등 진실은 아직도 침몰한 상태 그대로입니다.

직접 참사를 겪은 당사자가 아님에도 세월호 참사를 생각하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아픔으로 가슴이 저립니다.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의 불의한 대처를 거부할 수 있는 혹은 그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들이 국가정보원, 경찰, 행정기관들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중에는 촛불을 들고 '불의한 정권 퇴진 운동'에 나왔던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인데 자신들의 자리에선 왜 저항하지 못했을까요?

세월호 참사 자체도 고통스럽지만 사고 후 구조 과정에서 그리고 진상규명 과정에서 마주하게 된 사람들의 행동도 저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왜 사람들은 양심의 소리보다는 권력자들의 부당한 명령과 지시를 따르게 되는 것일까요? 한편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나는 과연 그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며 권위에 복종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인간은 생각보다 약하다

복종에 반대한다 표지
 복종에 반대한다 표지
ⓒ 도서출판 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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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크게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본질을 일상적으로 부정하는 일이 우리 문화에서 말하는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한 중요한 요소가 되어 버렸다. 즉, 우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되었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80쪽)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복종을 권하는 구조 안에 있었다면 비록 잘못된 권위일지라도 쉽게 저항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 아르노 그륀의 책 <복종에 반대한다>를 읽으며 부당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연습해 봅니다. 왜 복종하게 되는지, 맹목적 복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실제 상황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종의 복잡한 양상을 잘 파악하고 자신의 사고를 스스로 지배함으로써 복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이러한 역사(사회변혁 시대에 전체주의적 통치자가 권력을 장악하는)에 반기를 들 수 있다." (25쪽)

왜 복종이 자연스러울까?

저자는 가장 먼저 복종이 우리 안에 어떻게 자리 잡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륀은 유아기에 겪은 부모의 힘과 권위에 대한 경험으로 인해 사람들이 복종에 익숙해진다고 봤습니다. 특히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들의 경우 고유한 정체성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이들은 타인을 공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파괴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한 사람에게 복종이 스며드는 과정과 그 결과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권위가 지닌 위협적인 냉혹함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부모는 아이의 감정을 나약하고 무가치하다고 단정하기 때문에 아이는 그런 부모로부터 자기 고유의 감정, 자신의 본질을 수치스럽게 여기도록 배운다. (중략) 그 결과 아이는 자존감을 상실한 인격체로 자라난다. 자존감 상실은 복종의 원동력, 다시 말해 부모의 명령의 자신의 것으로 내면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58~59쪽)

"우리는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감정과 자각을 포기하게 된다. 정체성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자기감정과 자각을 포기하도록 강요받게 되면 (중략) 권위에 매달리는 것이 삶의 기본원칙이 된다. 권위를 증오하면서도 자신을 그 권위와 동일화시키는 것이다. 그 외에는 살아남기 위한 다른 방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권위에 매달리기 위해 자신의 본질을 억누르면 증오와 공격성이 생겨난다. 문제는 이런 증오와 공격성의 대상이 억압자가 아닌, 다른 희생자를 향한다는 것이다." (59~60쪽)

지난해 촛불집회 현장에 태극기, 성조기 등을 들고나와 맞불집회를 하던 이들이 떠오릅니다. 이들은 여전히 박근혜는 죄가 없다고 악다구니를 부립니다. 자신과 동일시하던 권위가 박근혜로 상징되는 권력이었기에 이 사람들은 드러난 진실조차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폭력적인 행동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저자의 설명을 읽으니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사실 복종에의 강요는 유아기에 시작되지만 그 과정은 한 사람의 성장과정 전체에 걸쳐 지속됩니다. 초·중·고교의 교실에서, 대학의 선후배/교수-학생 관계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어찌 보면 평생토록 우리는 복종을 권하는 구조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자는 이와 같은 구조에서 복종이 권력의 토대를 만들어준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강력한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복종은 태극기를 들고 외치는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복종하라는 압박은 매우 강력하다

권위 혹은 권력에의 맹목적인 복종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대표적인 곳은 직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직급에 따른 위계질서가 분명하고 관리자들을 통해 위로부터의 상명하복의 문화가 당연시되는 곳. 이와 같은 조직 내에서 명령이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복종의 부작용이 큽니다. 복종은 스스로를 왜곡시키고 진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권위자에게 순응하게 하고 때로는 권위자의 잘못된 행동까지도 숨기거나 정당화시키게 됩니다.

저자는 에티엔 드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에 대하여> 중 일부를 인용해 권력구조 안에서 자발적 복종이 아주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라 보에시는 권력자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매우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데, 무서운 것은 보통 직장에서 이런 사람들을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래 인용구에서 '독재자'를 조직 내 최고권력자로 바꾸면 흔한 대한민국 직장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독재자는 자신의 곁에서 총애를 구걸하고 자신에게 알랑거리는 사람들을 늘 주시한다. 이 사람들은 독재자가 말하는 대로만 해서는 안 되며, 독재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생각해야 한다. 또한 독재자의 요구에 응해야 하며, 심지어 독재자의 생각을 미리 알아차리기도 해야 한다. 그들은 독재자에게 복종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독재자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야 하며, 독재자를 위해 자신을 갈기갈기 찢고 들볶고 망가뜨려야 한다. 또 독재자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재미있어야 하며, 자신의 기질에 압박을 가하고 자신의 천성을 거부해야 하며, 독재자의 말과 목소리, 눈짓, 눈을 주시해야 한다.

그들은 당연히 군주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자신들에게 떨어진 악운을 꽤 잘 견딘다. 그들이 이 상황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받은 모멸을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기 때문인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준 군주를 향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처럼 불행을 참고 견디며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는 약한 존재들에게 악습을 그대로 반복한다." <자발적 복종에 대하여>에서

용기와 관심, 열린 생각

우리는 어떻게 맹목적인 혹은 자발적인 복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이 강력한 틀을 깨기 위한 시작은 자신을 억압하는 복종을 마주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타인의 낯선 견해를 만났을 때 이것을 무의식적으로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견해를 따르게 될 때 잃어버리게 되는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또한 '복종하지 않는 것은 죄'라는 인식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이 아니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복종하는 사람들이 다수이기는 하지만 통계적으로 사람들의 약 20~30% 정도는 복종을 강요하는 사회에 비판적이고 실제로 복종을 거부해 왔다는 사실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공감,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은 복종에 맞서 싸우게 하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저자는 "용기와 관심, 열린 생각"이 복종하지 않을 힘을 공급한다고 썼습니다.

'복종에 반대한다'는 선언적이고 강한 느낌의 책 제목에 비해 결론은 상당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이어서 책을 다 읽은 후 김이 빠지긴 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에 취약하고 순응하는 것을 편안하게 느끼는 인간의 불완전한 속성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은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은 확실합니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민주주의를 굳건히 하려면 복종을 권하는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썼습니다. 대한민국은 '촛불혁명'을 조금씩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사법부의 몇몇 판결들을 보면 실망스럽습니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 가장 시급히 필요한 선언과 행동은 '복종에 반대한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복종에 반대한다 -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온전한 삶을 위해

아르노 그륀 지음, 김현정 옮김, 더숲(2018)


태그:#복종, #권위, #인간, #아르노 그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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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건대, 지치지 말기를. 제발 그러하기를. 모든 것이 유한하다면 무의미 또한 끝이 있을 터이니. -마르틴 발저, 호수와 바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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