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이빙벨>의 한 장면. 침몰하는 세월호

영화 <다이빙벨>의 한 장면. 침몰하는 세월호 ⓒ 시네마달


꽃다운 아이들을 바다 속에 수장시킨 책임을 져야할 박근혜 정권은 일말의 반성이 없었다. 비판 여론과 문화 예술계의 저항이 거세지자 오히려 음성적이던 블랙리스트를 대폭 강화했고, 사찰·검열·배제를 지속했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등은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세월호 시국선언=반정부 투쟁'으로 규정하는 등 강경정책을 추진했다. 희생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추모의 마음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탄압한 야만적 행태였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 조사위)가 그간 구축한 '블랙리스트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분석한 결과,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문화예술인 1302명 중 116명이 박근혜 정부 대통령 비서실의 실제 검열·배제 피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영화 쪽은 2014년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영화제를 비롯해 영화를 상영한 배급사와 극장 등이 탄압의 주요 대상이었다. 블랙리스트 조사위원회는 재판자료를 참고해 13일 이 같은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박찬욱 감독도 지원 배제

기점은 세월호 참사였다. 송광용 대통령비서실 전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은 "재임할 당시에는 '세월호' 사건이 가장 큰 이슈였다"며 "(김기춘 비서실장이) 세월호 참사 시국선언에 참여하거나 정권 퇴진운동에 앞장서는 단체를 반정부적인 단체로 언급했다"고 말했다.

모철민 전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은 "(박근혜 정부는) 아시다시피 세월호 전과 후로 나뉜다"며 "당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존재했고 그러다보니 세월호 시국선언은 반정부적 활동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특히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 이후, 김기춘 비서실장이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문제 삼아 이슈가 됐고 그 과정에서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같은 작품도 문제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후 정권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와 작품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라는 지시가 이어졌다고.

박찬욱 감독도 지원 배제 대상에 포함됐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의 한 행정관은 세월호 사건 관련 시국선언을 하면서 정부를 비판한 사람들도 지원배제 대상으로 선별했다고 밝혔다. 문체부 전 실장과 과장 등은 "조윤선 장관이 그 사실(박찬욱 감독에 대한 정무적 판단)을 보고하셨기에 보고서에 관련한 내용을 기재했다"며 "박찬욱 감독이 세월호, 부산영화제와 관련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된다는 것이었고 네거티브 성격이 강했다"고 전했다. 실무자들이 말하는 정무적 판단은 지원배제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2014년 9월 10일에는 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에서 <다이빙벨>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려 한다"는 것을 인지한 후 후속 지시를 내렸다. 문체부, 문화융성위 등에 상영을 하지 말도록 부산시장과 조직위원회에 통보하고,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계속 확인할 것을 정무수석-교문수석에게 지시한 것. 당시 문체부 관계자들은 제작과 배급사가 누구고 어떠한 경로를 통해 부산영화제 상영작으로 확정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 관계자는 "위에서 난리가 났다"는 말로 청와대 쪽의 압박이 심하게 내려오고 있음을 전하기도 했다. 

 강OO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 업무수첩 중 다이빙 벨 상영방해 관련 내용

강OO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 업무수첩 중 다이빙 벨 상영방해 관련 내용 ⓒ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2014년 9월 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김기춘 전 실장은 <다이빙벨> 상영 금지 지시를 내렸다. 9월 26일 대통령비서실 소통비서관실 허OO은 다이빙벨 관람석 70% 확보했다고 보고했다. 70% 확보는 정무비서관실에서 부산의원들에게 부탁해 이뤄졌다. 이 같은 사실은 강OO 국민소통비서관실 행정관 업무수첩을 통해 확인됐다. 업무수첩에는 "부산국제영화제 다이빙벨 485석(2회 관람) 대응 방안. 전 좌석 일괄 매입하고, 방영 후 폄하 논평"이라고 적시돼 있다. 당시 대통령비서실은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인 <다이빙벨>에 대해서도 무려 26건의 보고를 받는 등 관련 사항을 지속적으로 점검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난 10월 23일 김기춘 전 실장은 <다이빙벨> 상영 대관료 등 자금원을 추적하여 실체를 폭로하라고 지시했다. 27일 청와대는 세월호 다큐상영 논란 관련 문체부 실무자 경고 지시를 내렸다.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에 <다이빙벨> 상영정보가 올라온 것을 늦게 파악했다는 이유만으로 문체부 공무원 3명의 중징계를 요청한 것이다.

12월에는 문체부에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영진위 지원금 전액 삭감을 지시했다. 이후 과정은 익히 알려진 대로다. 부산시와 감사원 특별감사국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사무국에 대한 전방위적이고 이례적인 감사를 실시했다. 서병수 시장은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다이빙벨>을 상영한 성남·고양 영상미디어센터도 2015년 지원에서 배제됐다. 당시 <다이빙벨>을 상영한 미디어센터 운영 주체인 성남과 고양의 시장은 민주당 소속 이재명, 최성 시장이었다.

추모 영화제 사찰한 박근혜 청와대

영화진흥위원회는 2015년 상반기 지원 배제 키워드에 '세월호'를 추가해 제작 지원과 개봉지원사업에서 배제하는 형식으로 블랙리스트를 적극 실행했다. 세월호를 다룬 영화 <엄마가 팽목항으로 올 때면 난 엄마보다 먼저>가 심사 탈락했고, <할매꽃2>는 조별심사에서 84.7로 면접심사 대상이 되었으나, 면접심사 시 '세월호' 관련성 여부가 확인되면서 탈락했다.

 세월호 1주기 추모영화 김경향 감독의 <같이 타기는 싫어> 세월호 유가족 옆에서 벌어진 일간베스트 회원들이 폭식투쟁을 비판한 단편영화다.

세월호 1주기 추모영화 김경향 감독의 <같이 타기는 싫어> 세월호 유가족 옆에서 벌어진 일간베스트 회원들이 폭식투쟁을 비판한 단편영화다. ⓒ 김경향


<다이빙벨>을 개봉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 대한 지원배제도 이뤄졌다. '영화지원제도 개선 참고자료(대외주의)' 중 '독립영화전용관 지원사업 개선'에 지역으로 전용관 1곳을 이전하고, '인디스페이스' 운영 지원 중단을 검토하는 방안이 담겨 있다. 이 결과인 듯 부산에 영진위 직영 독립영화관 등 영진위가 프로그램 선정에 관여할 수 있는 지역 독립영화관들이 생겨났다.

다큐멘터리 전문 배급사 '시네마달'도 <다이빙벨>을 비롯해 정부 비판적인 영화를 지속적으로 제작 배급한다는 이유로 모든 지원에서 배제됐다. 블랙리스트 조사위 발표에는 없지만 <다이빙벨> 배급에 관여한 제작 배급사 관계자들에 대한 통신조회와 세무조사 등도 이어졌다. 당시 배급 관계자는 "통신조회를 확인해 보니 너무 많아서 말하기가 무서울 정도였다"며 세무조사도 영화인들이 더 위축될 것 같아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5년 세월호 1주기 영화제는 청와대에서 직접 사찰하기도 했다.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렸던 '4.16 추모기획전-우리 함께'와 강릉시네마떼끄의 '4.16 추모특별영화제' 등이었다. 2015년 3월 19일 작성된 '세월호 1주기 영화제 추진동향'에는 각 영화가 다루고 있는 세월호 관련 내용이 요약되어 보고됐다.

이들 영화제에서는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가 세월호 단식 유가족 옆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를 비판한 김경형 감독의 <같이 타기는 싫어>, 민병훈 감독의 <생명의 노래>, 백승우 감독의 <기도>, 이정황 감독의 <다녀오겠습니다> 등 19편이 상영됐다.

세월호 블랙리스트 다이빙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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