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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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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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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별명이 불곰이다. 화가 나면 얼굴이 불곰처럼 빨개진다. (1쪽)

집에서 아이하고 늘 부대끼는 어머니는 으레 부아를 터뜨린다고 합니다. 바깥일에 바쁜 아버지는 아이하고 부대끼는 일이 적을 뿐 아니라 부아를 잘 안 터뜨리곤 한다지요. 어머니는 아이를 내내 지켜보면서 하나하나 알려주고 이끌다가 마음에 안 차서 부아를 터뜨린다면, 아버지는 집안일을 잘 모르거나 마음을 기울이지 않는 터라 언제 어떻게 무엇을 아이한테 가르치거나 이끌어야 하는가를 못 짚기 일쑤이기에 부아를 안 터뜨린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빠는 좋다. 재밌는 얘기를 잘해 줘서 좋다. 동생은 좋다. 가끔 맛있는 걸 나눠 줘서 좋다. 순덕이는 좋다. 까끌까끌한 혀로 나를 핥아 줘서 좋다. 그런데 엄마는 왜 좋은지 모르겠다. (7쪽)
속그림. 불곰으로 바뀐 어머니 큰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달아나기.
 속그림. 불곰으로 바뀐 어머니 큰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달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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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어머니도 언제나 어머니이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할머니 곁에서 언제나 아이예요. 아이가 자라서 아이를 낳으며 어머니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아직 아이로 살아갈 적에는 어머니도 아이라는 대목을 못 느끼거나 모를 만합니다. 이러면서 어머니가 왜 부아를 터뜨리는지, 어머니는 왜 잔소리가 많은지, 아버지는 왜 부아를 잘 안 터뜨리는지, 또 아버지는 어머니 몰래 군것질거리를 주는지, 이런 여러 가지를 모를 수 있어요.

오늘날 우리 삶터는 예전하고 대면 적잖이 남녀평등이나 가사분담을 한다고 하지만, 아버지로서 집안일을 도맡는 이는 아직 적고, 부엌일이나 집안일이나 살림짓기에 오래도록 마음이나 품이나 겨를을 못 내기 일쑤예요. 아이를 가르치는 살림을 놓고도 으레 어머니가 마음을 쓰지, 아버지는 마음을 못 쓰고요. 아버지는 아이를 학교나 학원에 보내면 교육이 다 되는 줄 알기까지 합니다.

이런 얼거리를 헤아리면서 그림책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허은미·김진화, 여유당, 2018)를 읽습니다.

외할머니 댁에 갔다.할머니가 차려 준 저녁을 먹고, 할머니가 깎아 준 사과를 먹고,할머니가 꺼내 준 사진첩을 봤다."어, 이 아기 누구예요?""누군 누구야, 네 엄마지.""진짜요? 엄마도 이렇게 조그마할 때가 있었어요?" (22쪽)


"이 사람은요?""그것도 네 엄마지.""와, 엄마도 이렇게 예쁠 때가 있었어요?""네 엄마, 지금은 저래도 젊었을 때 얼마나 고왔는지 몰라." (23쪽)
속그림. 어머니 옛 사진을 처음으로 마주한 아이가 물끄러미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속그림. 어머니 옛 사진을 처음으로 마주한 아이가 물끄러미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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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는 '어머니가 왜 좋은지, 어머니가 왜 툭하면 부아를 터뜨리는지, 어머니는 왜 아버지랑 짝을 지어 사는지, 어머니한테도 어린 나날이 있었는지, 어머니는 꿈이 무엇인지'를 하나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아이가 할머니 집에 놀러갔다가 어머니하고 얽힌 옛 삶을 하나하나 처음으로 마주하면서 깜짝 놀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집에 있는 때보다 학교나 학원에 있는 때가 훨씬 깁니다. 이러면서 어머니한테 어머니 옛이야기라든지 어머니가 어릴 적에 뭘 하며 놀거나 할머니한테서 무슨 이야기를 듣거나 배웠는가를 물려받을 틈이 없기 일쑤예요.

이러다 보니, 이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처럼 '어머니한테도 아기 적 사진이 있'고, '어머니한테도 내 나이 때에 찍은 사진이 있'을 뿐 아니라, '어머니가 불곰처럼 으르렁대면서 소리를 카랑카랑 지르는 모습이 아닌 상냥하게 웃는 모습이 있'는 줄 처음으로 마주하면서 울컥해 할 수 있으리라 느낍니다.

나는 오랫동안 엄마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26쪽)


속그림. 불곰으로 바뀌는 어머니 모습
 속그림. 불곰으로 바뀌는 어머니 모습
ⓒ 여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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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에 나오는 아이는 '으르렁쟁이 어머니한테 상냥한 웃음이 있었다니!' 너무 놀란 나머지 할 말을 잊습니다. 그저 어머니 어릴 적 사진하고 아기 적 사진을 보고 또 볼 뿐입니다.

아이는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이는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이는 어제하고 오늘을 어떻게 이을까요? 아이는 어제하고 오늘을 잇는 생각을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새롭게 이을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참말 불곰 같을까요? 아이는 커서 어머니처럼 불곰이 될까요? 오늘 불곰처럼 보이는 어머니는 예전 같은 상냥한 낯빛으로 웃음을 짓는 아이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아이는 앞으로 자라는 동안 불곰 같은 몸짓이 아닌, 아이다운 상냥한 몸짓으로 꽃낯인 살림을 지을 수 있을까요?

그림책은 앞으로 아이가 어떻게 자라는지까지는 다루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 마음이 살그머니 달라진 모습을 다루어 줍니다. 아이는 어머니 속낯을 할머니한테서 처음으로 듣고는 어머니를 새롭게 바라보기로 합니다. 이러면서 아이 속낯을 어떻게 가꾸면서 새로운 어른으로 자랄 적에 아름답거나 즐거울까 하고 그림을 그립니다.

오늘 어른으로 살아가는 나는 어떤 낯으로 어떤 말을 들려주는 하루를 지을 만한지 생각에 잠겨 봅니다. 오늘 어른인 몸인 나는 어떤 몸짓으로 어떤 이야기를 아이한테 물려주는 살림을 가꿀 만한지 하나하나 되돌아봅니다. 불곰이 되는 으르렁낯이 아닌, 꽃님 같은 꽃낯이나 별님 같은 별낯이나 하늘 같은 하늘낯이 될 적에 스스로 즐거우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허은미 글 / 김진화 그림 / 여유당 / 2018.1.25.)



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허은미 지음, 김진화 그림, 여유당(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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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불곰에게 잡혀간 우리 아빠, #허은미, #김진화, #그림책,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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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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