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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장수'라는 말을 아시나요?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일과 스트레스로 각종 질병을 안고 살아야 하는 '웃픈' 현실을 뜻합니다.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애환을 들어봤습니다. [편집자말]
툭하면 몸살이 와서 비타민 수액으로 긴급 처방 받았으나 반짝할 뿐, 피곤해지면 또 앓았다.
 툭하면 몸살이 와서 비타민 수액으로 긴급 처방 받았으나 반짝할 뿐, 피곤해지면 또 앓았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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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부터 봄까지, 약 4개월간 기침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삼 주 간격으로 조금 나아지다가 악화되다가를 반복했다. 엑스레이를 찍어봤지만 딱히 문제도 없고,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기침뿐이랴. 툭하면 몸살이 와서 비타민 수액을 긴급 처방 받았으나 반짝할 뿐, 피곤해지면 또 앓았다.

생각해보니 지난번엔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약 3개월간 온몸을 뒤덮어 밤마다 긁어대야 했다. 그 전엔 비염이었다. 코가 막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끝이 아니다. 몸의 애매한 부위마다 돌아가며 염증이 생겼고 곪았다. 여기에 질염도 만성질환으로 갖고 있고 소화기능도 불량해서 치킨만 먹어도 체한다.

'저질 체력'이 된 이유

나는 올해로 서른여덟 살. 딸 아이 한 명 키우는 5년 차 엄마이자 주부. 그리고 말이 좋아 프리랜서 디자이너이지, 아르바이트 수준의 디자인 노동을 하고, 글을 쓴다. 왕년엔 며칠 밤 꼴딱 새도 멀쩡하던 체력의 소유자였건만 지금은 계단만 올라도 숨이 차고, 왕복 네 시간의 서울행만 해도 다음날 누워 있어야 하는 '저질 체력'이 되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되었나. 찬찬히 집어 봤다.

3년간, 아이를 데리고 자면서 수면 부족에 시달렸다(남편은 다른 방에서 잤다). 아이의 작은 뒤척임에도 깨다 보니 하루 4시간 이상 깊은 잠을 잔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낮에 잘 수도 없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6개월, 1년, 3년 이런 삶이 지속되다 보니 늘 멍하고 기운 없는 상태가 '정상'이 되었다. 이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식습관 또한 불규칙하고 부실해졌다. 혼자 종일 집에 있으면 끼니를 거르기 쉽다. 기껏해야 '유아식'을 같이 먹는 정도고, 밥을 잘 안 먹으려는 아이와 씨름하고 나면 내 밥맛은 뚝 떨어졌다. 그러다 허기지면 라면이나 빵으로 때우고, 아이를 재운 후엔 '폭식'했다.

지쳐 쓰러질 지경이라도 아이를 재우고 나면 이상하게 정신이 또렷해졌고 식욕이 솟아났고 그러면서도 가슴은 구멍 뚫린 듯 허전했는데, 그걸 술과 야식으로 메웠다. 짜고 바삭한 치킨이나 쫄깃한 곱창, 매운 떡볶이로 속을 지졌고, 차가운 맥주로 스트레스를 쓸어내렸다.

짜고 바삭한 치킨이나 쫄깃한 곱창, 매운 떡볶이로 속을 지졌고, 차가운 맥주로 스트레스를 쓸어내렸다.
 짜고 바삭한 치킨이나 쫄깃한 곱창, 매운 떡볶이로 속을 지졌고, 차가운 맥주로 스트레스를 쓸어내렸다.
ⓒ 일본NTV '호타루의 빛'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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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했다. 혼자 술 마시며 드라마 한 편 보고 있으면 누가 수고했다 한 마디 해주지 않아도, 알딸딸하게 기분이 좋아져 제법 하루를 잘 보냈다는 착각에 빠져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눈 뜨면 빈 속에 믹스커피부터 타 마셨다. 카페인과 당으로 급속 충전하지 않고선 하루를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를 쫓아다니는 것도 힘이 부쳤지만 다른 무엇보다 나는 사회적 단절, 고립, 외로움으로 병들고 있었다. 생각보다 '경력단절' 기간이 길어지며 '무기력 병'에 걸렸다. 뭘 하려 해도 부모님이나 남편 도움 없는 상황에선 지속 가능하지 않아서 결국 하나씩 포기해야했다.

커가는 아이는 더없이 예뻤지만 나의 앞날도, 정서적 교류가 전혀 없던 남편과의 관계도, 우리 가족의 미래도 컴컴해보였다. 좌절과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렸고, 뭔가 하고 싶은 체력도 의지도 의욕도 소진한 채 하루하루 속이 곪아갔다. 패배감을 술과 믹스커피와 야식으로 손쉽게 위로했고 내 체력은 점점 무너져갔다.

쉬지 못하는 이유

'어두운 터널'을 지나 아이가 조금 크고, 육아와 살림에도 나름 노하우가 생기며 조금씩 나의 시간이 생겨났다. 그래 봤자 하루 여섯 시간 정도였는데, 쉬면서 망가진 몸을 회복하기보다 무력했던 지난날을 보상받기 위해 조바심을 냈다.

엉망이 된 집안을 신들린 듯 정리했고, 운동을 시작했고,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했고 글도 썼다. 뭔가에 목표를 갖고 몰입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는 많이 해소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얼굴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했다.

그런데 여전히 내 몸을 돌보진 못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삶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너무 '자유로워' 망가지기 쉬웠다. 출퇴근이 없다는 건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음, 즉 일터와 집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밤샘'이나 '휴일근무'도 많아짐을 뜻한다.

지난 겨울부터 올 봄까지 나의 생활은 이랬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자마자 빠르게 집안일을 마치고 점심도 거르며 일을 하다가 아이가 오후 3시 반에 집에 오면 일을 하던 감각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아이를 봐야 했다. 도중에 또 전화를 받고 틈틈이 급한 수정사항을 처리해내고 아이를 재우고 나면 다시 지친 몸으로 컴퓨터를 켜고 새벽까지 작업을 했다.

남편은 '제발 일 좀 줄여'라고 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남편은 '제발 일 좀 줄여'라고 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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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제발 일 좀 줄여'라고 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누구의 엄마로만 살다가 돈도 벌고 사람도 만나고 유식한 이야기들도 나누니 이제야 사는 거 같은데 그만하라고? 한편으로는 '혹시 나는 나를 들들 볶으며 살 팔자인가' 싶어 씁쓸했다. 왜 나는 편히 쉬지를 못하지?

낫지 않는 기침 감기와 툭하면 찾아오는 몸살. 나는 나의 능력과 한계치를 받아들여야 했다. 이제 20대나 30대 초반처럼 전력 질주가 불가능했다. 만성 피로, 근육통, 비염과 함께 늘 예민한 상태로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건강 약자들을 무능력하게 보곤 했다. 엄마가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는 소리를 '건강염려증'이라고 치부했고, 누군가 건강상의 이유로 배려를 요구하면 표현은 안 해도 짜증부터 났다. 이제야 알았다. 정말 하고 싶어도 몸이 안 되면 못 하는 거란 걸. 몸이 약해진 후에야 겸손을 배웠다.

내 몸은 내가 챙기자

내 체력에 맞춘 규율을 정했다. '아침형 인간 되기'는 포기했다. 내 체질엔 맞지 않는지 일찍 일어나면 꼭 며칠 후 몸살이 났고, 저녁부터 밤까지 아이를 혼자 보며 먹이고 씻기기에도 힘이 부쳤다. 자는 시간을 줄인다 해도 멍하게 인터넷 기사 읽기에 허비하곤 했으므로 밤 12시 이전엔 꼭 자고 아이가 일어나는 시간까지 푹 자기로 했다.

두 번째로 틈틈이 잘 먹기. 혼자 있을 땐 요리가 귀찮고 바쁠 땐 먹는 시간조차 아까워 끼니를 거르게 되었는데 떡, 두유, 발효 빵, 찐 달걀, 과일, 선식처럼 건강하고 간단한 간식들을 식탁에 두고 수시로 먹어 가며 기운이 달리지 않도록 했다. 라면은 주 1회만, 커피는 꼭 음식을 먹은 후 마시고, 그 좋아하던 야식과 맥주도 끊었다.

라면은 주 1회만, 커피는 꼭 음식을 먹은 후 마시고, 그 좋아하던 야식과 맥주도 끊었다.
 라면은 주 1회만, 커피는 꼭 음식을 먹은 후 마시고, 그 좋아하던 야식과 맥주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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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강의는 왕복 시간 포함 2시간씩 걸리다 보니 조금만 바쁜 일이 생겨도 안 가서 하는 법을 바꾸었다.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 홈 트레이닝'. 10분짜리 유산소 운동부터 부위별 스트레칭, 단계별 요가 수련도 많았다. 그날 뻐근한 부위에 따라 선택해서 이삼십 분씩 했더니 부담 없이 꾸준히 할 수 있었다.

퇴근이 늦는 남편은 아침에 좀 더 부지런히 육아를 해주기로 했다. 남편이 아이 옷과 먹을거리를 챙겨주고 등원을 시키면 그 사이 나는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집안일을 후다닥 해치우고 오전 9시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다. 주말에도 이틀 다 어디 돌아다니지 않고 하루는 집에서 푹 쉬고, 많이 움직인 날엔 꼭 낮잠과 휴식을 취했다. 남편 역시 내가 아파 몇날 며칠 누워있게 되면 자기에게 돌아오는 '피해'가 심하다는 걸 겪으면서 적극 협조했다.

그래서 내가 계획대로 잘했냐면 아니었다. 며칠 못 가 흐지부지 됐다. 습관이 되지 않은 일상의 루틴은 쉽게 무너졌고, 의욕이 앞선만큼 실망이 컸다. 목표부터 다시 작고 낮게 잡기로 했다. 요가를 할 때처럼 동작을 얼마나 멋지게 잘 하느냐 보다, 남들은 다 하는데 나는 못한다며 비교하기 보다,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호흡을 놓치지 않기로 다잡는다. 종종 거리며 무리하지 말고, 차라리 숨 고르며 쉬자고 다짐한다.

전엔 열 가지 중 두 가지를 못해도 속이 쓰렸는데 이제 열 가지 중 세 가지만 해도 후한 점수를 주기로 했다. '어제는 공기청정기의 필터를 씻었고, 오늘은 현관 바닥을 쓸었다. 심지어 글도 한 장이나 썼다! 나 참 잘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개인 블로그에 기록해 나가고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조금 더 신경 쓰게 되니까. 나름의 강제성이다.

양이나 질보다 나에게 중요한 건 숨을 고르며 천천히 끝까지 걷는 것이다. 툭하면 과속하려는 나, 의욕이 앞서는 나를 이렇게 붙잡아본다. 가늘게, 길게, 느슨하게. 그래도 괜찮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 중복게재합니다.



태그:#저질체력, #건강 약자, #체력 관리, #엄마,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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