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로 거론되는 양대 산맥이다. 개인 기록과 타이틀에서 우승 트로피에 이르기까지, 두 선수가 이룬 업적이 그야말로 넘사벽이라 '신계'에 있고 그 외에 나머지 선수들은 인간계에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만큼 차원이 다른 존재로 인식됐다.

하지만 단지 두 선수만 놓고 보면, 호날두보다는 메시의 재능이나 업적을 조금 더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프로축구 정규리그나 챔피언스리그 통산 우승 트로피, 발롱도르 수상 횟수, 소속팀간 상대전적 등을 종합하면 아직까지는 메시가 호날두에 근소하게 앞선다. 그동안은 메시가 달려나가면 호날두가 추격하는 형국이었다.

특히 호날두가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 레알 입단으로 스페인 무대로 진출하면서 두 선수의 라이벌 구도가 본격적으로 부각된 2009년 이후로, 메시는 늘 호날두의 독주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과도 같은 존재였다. 특히 메시가 2009년부터 발롱도르를 무려 4연패하며 바르셀로나가 라 리가와 UCL을 휩쓸던 최전성기 시절에는, 호날두는 영락없이 '2인자'취급을 받았다. 다재다능한 메시에 비하여 호날두는 득점 기록만 화려할뿐 이기적인 선수로 여겨지기도 했다.

두 선수의 위상에 서서히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다. 호날두는 메시의 5연패를 저지하며 개인 통산 2번째이자 레알 입단 이후 첫 발롱도르를 들어올린 것을 시작으로 최근 5년 사이에만 무려 4번의 발롱도르를 휩쓸며 빠른 속도로 메시를 추격했다. 이 기간 메시는 2015년에 1회 수상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두 선수는 현재 나란히 5회의 수상으로 공동 최다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 기간 발롱도르가 두 선수 간의 인기투표로 지나치게 변질되었다는 지적과 함께 2012-13시즌(프랭크 리베리, 바이에른 뮌헨의 유럽 트레블)처럼 호날두-메시가 아닌 다른 선수가 받았어야 했다는 자격 논란도 있었다. 하지만 두 선수는 압도적인 개인기록과 매년 꾸준한 성적으로 논란을 불식시키며 장기집권의 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호날두가 메시의 그늘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재평가받기 시작한 계기는 역시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성과다. 호날두는 2014년부터 최근 4년 사이에 소속팀 레알 마드리드를 무려 세 번이나 챔피언스리그 정상으로 이끌었다. 맨유 시절인 2007-08시즌을 포함하면 개인 통산 4회 우승이다. 또한 호날두는 2012-2013시즌부터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2014-2015시즌에만 메시, 네이마르와 함께 공동 득점 1위를 기록했을 뿐 나마지는 모두 단독 득점왕을 휩쓸었다.

호날두는 올시즌에도 챔스에서만 벌써 15골을 터뜨리며 이변이 없는 한 6년연속 득점왕 자리를 예약했다. 현재 2위인 모하메드 살라, 호베르투 피르미누(이상 리버풀, 8골)와는 무려 7골 차이다.

또한 호날두의 올시즌 득점은 역대 UCL 한 시즌 최다골 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며, 1,2위도 모두 호날두 본인이 보유하고 있다. 호날두는 2013-2014시즌 17골, 2015-2016시즌에는 16골을 기록했다. 올시즌 레알이 아직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최대 3경기를 더 치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기록을 다시 갈아치울 가능성도 열려 있다. 호날두는 지난해부터 챔피언스리그에서만 무려 11경기 연속 득점 기록을 이어가고 있어서 매 경기 자신의 기록을 경신중이다.

메시와 호날두는 올해 챔피언스리그에서 또다시 희비가 엇갈렸다. 호날두의 레알은 유벤투스를 꺾고 최근 8년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했다. 2015-16, 2016-17시즌도 정상에 올랐던 레알은 대망의 챔스 3연패에 대한 희망도 크게 높아졌다. 반면 메시의 바르셀로나는 8강에서 AS로마를 상대로 2차전에서 충격적인 0-3 완패를 당하며 준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쓴 챔피언스리그의 새로운 역사를 널리 알리는 유럽축구연맹 공식 트위터 사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쓴 챔피언스리그의 새로운 역사를 널리 알리는 유럽축구연맹 공식 트위터 사진 ⓒ 유럽축구연맹 트위터


 리오넬 메시의 사진으로 장식한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페이지 첫 화면

리오넬 메시의 사진으로 장식한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페이지 첫 화면 ⓒ UEFA.com


메시는 2014-15시즌 '트레블'(라 리가-UCL-국왕컵 3관왕)을 달성하며 정점을 찍은 것을 마지막으로 최근 3년간은 번번이 8강에서 좌절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AT 마드리드, 볼프스부르크, 바이에른, 유벤투스 등 유럽 각 리그를 대표하는 강호들을 상대로 챔스 토너먼트에 접어들수록 더욱 매서운 모습을 보여주는 호날두에 비하여, 메시는 최근 5시즌간 8강무대에서 무득점에 그치며 유독 8강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호날두가 유벤투스와의 8강전에서 멋진 오버헤드킥 득점(1차전)과 2차전 승부를 결정짓는 PK골 등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데 비하여, 메시는 로마와의 2차전에서 부진한 활약고 저조한 활동량으로 대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불과 몇 년전만해도 '메시는 큰 경기에서 강하고 호날두는 다소 약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오히려 이 평가가 정반대로 역전된 분위기다.

사실 올시즌 초중반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메시 쪽이 우세했다. 메시의 바르셀로나는 네이마르(PSG)의 이적 공백으로 인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라 리가에서 24승 7무로 승승장구하며 '무패 우승'이라는 대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리그 득점왕 경쟁에서도 메시가 29골을 기록하며 호날두(23골)에 6골 차이로 앞선다.지난해 12월 열린 엘클라시코 더비에서는 바르셀로나가 레알에 3-0 완승을 거두기도 했다.

호날두는 시즌 초반만 하더라도 부상과 징계로 인한 출장 정지, 탈세 논란과 이적설로 인한 심리적 부담까지 겹치며 의외의 부진을 보였다. 30대를 훌쩍 넘긴 호날두의 기량이 정점을 지났다며 '노쇠화'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다. 레알은 사실상 바르샤에 밀려 리그 우승 가능성이 희박해졌고 국왕컵에서도 탈락하며 사실상 챔피언스리그에 올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호날두는 라 리가에서 부진하던 시기에도 챔피언스리그에서만큼은 변함없는 골감각을 과시했다. 오히려 적절한 로테이션과 컨디션 관리로 체력을 비축한 호날두는 후반기 들어 다시 전성기에 버금가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렇게 부진하다는 지적을 받았는데도 리그에서만 벌써 23골을 터뜨리며 메시에 이은 득점 2위다. 이번 시즌 모든 대회를 통틀어서는 38경기에 나서 41골로 오히려 메시(47경기 39골)보다 앞선다.

두 선수간의 내년 발롱도르 경쟁도 다시 한번 불이 붙을 전망이다. 바르셀로나가 이미 리그 우승은 확정적인 가운데 사실상 관건은 '무패 우승' 여부다. 바르셀로나는 7경기를 남겨놓은 가운데 2위 아틀레티코와 11점차를 유지하고 있다. 오는 5월 6일 열리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올시즌 두 번째 엘클라시코가 무패 우승의 최대 고비로 평가받고 있다.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 리그 우승만 벌써 8회나 기록하며 맨유-레알 시절을 합쳐도 리그 5회 우승에 불과한 호날두에 앞선다. 챔피언스리그는 놓쳤지만 무패 우승에 득점왕까지 차지한다면 메시가 다음 시즌 발롱도르에 도전할 자격은 여전히 충분하다.

호날두는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절실하다. 라 리가에서는 4위에 그치며 실망스러운 성적을 보이고 있는 레알은 무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올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바르셀로나가 탈락했지만 바이에른 뮌헨, 리버풀, 로마 등 유럽 4대리그를 대표하는 강호들이 아직 건재하여 레알이 우승컵을 낙관할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레알은 준결승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한다. 호날두가 만일 올해도 정상에 오르며 3연패라는 대업을 달성한다면 챔스 통산 우승횟수에서도 5회로 메시를 한발 앞서게 된다.

특히 두 선수의 발롱도르 경쟁에 올여름 또 하나의 변수는 러시아 월드컵이다. 나란히 30대를 넘긴 두 선수가 전성기의 기량을 유지하며 도전할수 있는 마지막 월드컵이 될 가능성이 높기에 초미의 관심을 모은다.

동시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메시와 호날두도 월드컵과는 아직 인연이 없다. 메시가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결승진출에 성공하며 우승에 근접하는 듯 했지만 독일의 벽에 막혀 분루를 흘렸다. 호날두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4강진출에 성공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메시는 2008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호날두는 유로 2016에서 정상에 오른 바 있다. 국가대표에서의 성과만 놓고본다면 A매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호날두가 다소 앞서지만 메시에게는 월드컵 골든볼까지 수상한 개인 경력에서 앞선다. 러시아월드컵에서의 성과는 두 선수에 대한 '역사의 평가'를 가늠할 마지막 분기점이 될수도 있다. 진정한 최고를 가리기 위한 '신들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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