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원더할매 벽화  원더우먼을 패러디한 원더할매. 지난날 항구 언덕 마을 여성의 힘겨운 삶을 해학적으로 형상화한 벽화. 필자는 대한민국 최고의 벽화로 본다.
▲ 원더할매 벽화 원더우먼을 패러디한 원더할매. 지난날 항구 언덕 마을 여성의 힘겨운 삶을 해학적으로 형상화한 벽화. 필자는 대한민국 최고의 벽화로 본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그녀는 토착화된 원더우먼이다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 뒤편 언덕. 그녀는 자기 몸집만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웃으며 서 있다. 정말 웃는 것인지 웃는 척하고 있는 것인지 잘 구별이 가지 않는다.

항구로 오르내리는 가파른 언덕길을 매일 같이 오가며 허리가 휘어지지만, 살기 위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그저 한 번씩 허리를 펴고 주변을 돌아보는 척하며 쉬는 시간만이 유일한 낙일 뿐이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안 된다. 한밤중에 일어나 바다로 나가는 남편의 밥을 챙기고, 오늘도 무사히 뱃일을 마치고 돌아오길 기원한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는 아이들을 챙긴다.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일하고, 부두에 나가 잡일을 하며 생활비에 보태고, 먹을 것들을 사서 머리에 이고 절벽 같은 언덕을 오른다. 실수로 발을 삐끗하면 바로 부상이라 항상 긴장한다.

그나마 바다에서 벌어오는 남편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억센 항구에서 돈 버는 일도 도맡아야 한다. 인생의 의미를 생각할 겨를도 없다. 어느새 머리는 희끗해지고, 체력은 바닥나고, 온몸에 병을 달고 산다. 그러면서도 아프다고 티 내지 않는다. 그저 이를 악물 뿐이다...   

거의 30~40년 전 과거 미국 드라마를 TV에서 방영해 줄 때, <원더우먼>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별이 새겨진 금관 같은 걸 머리에 쓰고, 슈퍼맨과 비슷한 복장에 손목에는 팔찌를 차고 있어 총알이 날아오면 팔찌로 총알을 튕겨내는 초인 여성. 지금 보면 촌스러운 이 복장의 여성이 원더우먼이다.

지난해 이 원더우먼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곁에 왔다. 갤 가돗이라는 배우가 인상적으로 연기해낸 21세기 여성의 모습으로. 

그런데 이 원더우먼은 이미 토착화된 모습으로 묵호항 논골담길 벽화마을에 벽화로 있었다. 얼굴이 영락없는 한국 동해안 할머니의 얼굴이다. 그래서 일명 '원더할매'다.

1960년대의 묵호항  영동 태백선 철길과 묵호항, 그리고 뒤편 언덕 마을이 보인다. '바람의 언덕' 올라가는 길 벽면에 있는 자료사진을 촬영한 것이다.
▲ 1960년대의 묵호항 영동 태백선 철길과 묵호항, 그리고 뒤편 언덕 마을이 보인다. '바람의 언덕' 올라가는 길 벽면에 있는 자료사진을 촬영한 것이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억센 바닷가, 생활이 넉넉하지 않아 항구 언덕 위에 대충 집 짓고 사는 가난하고 고달픈 삶 속에서 잠시 쉴 틈도 없이 집안일과 바깥일을 도맡아 해야 했던 초인적인 여성. 그 힘들고 어렵게 살았던 바닷가 여성의 억척스런 삶을, 초능력을 가진 원더우먼에 빗대어 익살맞게 그려낸 이 벽화를 바라보며 항상 감동을 느낀다.

고통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려내지 않고 해학적으로 승화시킨 그림을 보며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벽화 작품이라고 생각해 왔다. 지나간 한 시대 여성의 삶을 대표할 만한 그림이다.

이 작품만은 오래도록 보존하길 바란다.

묵호벅스 벽화 스타벅스를 패러디한, 로열티를 내지 않는 순수 토종 브랜드 묵호벅스. 단, 매장이 없다. 그래도 소주와 오징어를 같이 먹도록 옆 벽에 그려 놓았다.
▲ 묵호벅스 벽화 스타벅스를 패러디한, 로열티를 내지 않는 순수 토종 브랜드 묵호벅스. 단, 매장이 없다. 그래도 소주와 오징어를 같이 먹도록 옆 벽에 그려 놓았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원더할매 다음으로 인상 깊게 본 것은 묵호벅스 벽화이다. 이름 그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벅스의 짝퉁 명칭이다. 멀리서 보면 스타벅스 로고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야간에 등대가 주변을 비추는 묵호항의 풍경을 로고로 만든 것이다. 

로열티를 한 푼도 지불하지 않는 토종 커피 전문 브랜드 묵호벅스다. 커피와 함께 마실 소주와 안주인 오징어 벽화도 있다. 만약 오징어가 한 마리라 부족하다면 근처에 오징어 수십 마리를 널어 말리는 벽화가 있으니 여기서 떼어오면 되겠다.

논골담길 벽화마을의 오징어 벽화  담벼락에 오징어 말리는 풍경을 그려놓았다. 한 마리가 뒤집혀 있어 이채롭다.
▲ 논골담길 벽화마을의 오징어 벽화 담벼락에 오징어 말리는 풍경을 그려놓았다. 한 마리가 뒤집혀 있어 이채롭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다만 아쉬운 것 하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매장이 없다는 점이다. 전국 어디에도 지점이 없다.

그래서 나중에 인생 은퇴하기 직전 어느 바닷가에 묵호벅스 지점을 차려볼까 한다. 본점이 없으니 영업 방침은 내 마음대로다. 혹시 스타벅스 측에서 소송이라도 걸라 치면 인생 마지막 가기 전 늙은이의 소원이니 냅두라고 까불란다. 

논골담길 벽화마을과 묵호 등대를 거닐다 

전국에 많은 벽화마을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곳이 어디냐 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강원도 동해시 논골담길 벽화마을을 꼽는다.

여러 가지 이유로 무던히도 많이 찾아갔지만, 그래도 이곳을 특별나게 좋아하는 이유는 첫째, 동해안의 아름다운 바다와 항구를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망 좋은 위치에 있다는 점.

둘째, -이게 더 중요한 이유인데– 이곳 지역민들의 삶의 애환을 잘 보여주는 벽화들이 참 의미 깊고 정감이 가기 때문이다. 즉, 어디에나 흔한, 그저 예쁘고 재미있게만 보이려는 벽화가 아니라 지역 특성과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만복이네 벽화 논골담길 벽화마을에는 이렇게 해학적이고 보기만 해도 즐거운 벽화들이 많다.
▲ 만복이네 벽화 논골담길 벽화마을에는 이렇게 해학적이고 보기만 해도 즐거운 벽화들이 많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논골담길 벽화마을은 등대가 있는 바닷가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데, 아래위로 오르내리는 총 네 갈래의 길이 있다. 등대와 바로 연결되는 등대오름길, 논골 1길, 논골 2길, 논골 3길이라고 이름 붙여진 길들이다.

개인적으로는 논골 1길로 올라가 묵호 등대와 출렁다리를 보고, 다시 논골 3길로 내려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반대로 이동해도 되고, 편한 대로 다녀도 상관은 없다. 만약 등대에 차를 세웠다면 논골 1길로 내려간 다음, 논골 3길로 올라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논골 3길 쪽이 가장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어디로 가든 논골 3길은 빼놓지 말라고 당부한다. 왜냐하면 이 길에 원더할매, 묵호벅스, 논골 갤러리, 일출 등의 인상적인 벽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 전국을 돌며 많은 벽화마을에 가봤지만, 이 논골담길처럼 지역 특성과 밀착된 흥미롭고 의미 있는 벽화들을 별로 보지 못했다. 묵호항구와 푸른 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이 언덕 마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바람의 언덕 전망대 최근에 조성한 바람의 언덕 전망대. 항구를 내려다보는 곳으로, 지난 날 항구 언덕마을 여성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는 조각 작품이 있다.
▲ 바람의 언덕 전망대 최근에 조성한 바람의 언덕 전망대. 항구를 내려다보는 곳으로, 지난 날 항구 언덕마을 여성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는 조각 작품이 있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묵호항 전망 바람의 언덕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묵호항 풍경
▲ 묵호항 전망 바람의 언덕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묵호항 풍경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최근에 동해시 측에서는 이곳을 좀 더 홍보하고 유명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마을 일부에 손을 가했다. 그 결과 항구가 가장 잘 내려다보이는 지점에 바람의 언덕 전망대가 들어섰고, 여기로 가는 길이 깨끗하게 정비되었다. 주변에는 세련된 게스트하우스와 작은 카페, 식당이 들어섰다.

딱 여기까지였으면 좋겠다. 더 이상 손을 대면 전국 어디에나 있는 벽화마을과 달라질 게 없을 것 같다.

언덕 정상부의 묵호등대는 등대 자체로도 손꼽아줄 만한 위치와 전망을 갖고 있다. 동해안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어항인 묵호 항구 북쪽 언덕 위에 자리하여 고깃배들의 동반자가 되어 왔다. 등대 내부가 공개되어 등대 전망대까지 올라가 시원한 동해안 바다를 전망할 수 있다. 

등대 안마당에는 몇몇 조형물들이 있고, 오래된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1968년 작) 촬영지임을 알려주는 안내석도 있다. 거의 절벽에 가까운 바로 아래에는 펜션이 있고 푸른 바다가 정원처럼 깔려있다. 수평선까지 마음이 트인다. 동해안은 이래서 좋다.

묵호 등대 야경  묵호항과 주변 바다를 비추는 등대. 야간에는 파란색, 보라색, 녹색의 여러 색깔로 바뀌며 서정적 풍경을 이룬다.
▲ 묵호 등대 야경 묵호항과 주변 바다를 비추는 등대. 야간에는 파란색, 보라색, 녹색의 여러 색깔로 바뀌며 서정적 풍경을 이룬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이곳은 야경도 좋다. 어둠이 찾아오면 등대 외면은 파란색, 녹색, 보라색 등으로 수시로 색깔이 바뀌며 빛깔 있는 풍경을 연출한다. 그다지 휘황찬란하지는 않지만, 점점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항구의 야경, 고깃배들이 이동하며 빛 화살을 날리는 풍경이 묵호항만의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등대 왼쪽 길을 따라 내려가면 출렁다리에 닿는다. 벌써 10년이 다 돼가는 2009년의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촬영지로 알려져 한때 사람들이 많이 찾았던 곳이다. 지금은 출렁다리 자체의 희귀성이 떨어져 인기는 식었지만, 여전히 풍경이 좋아 등대 온 김에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다.

논골담길 벽화 풍경  돌에 그린 벽화처럼, 사는 사람들이나 방문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즐거운 마을이 되길 바란다.
▲ 논골담길 벽화 풍경 돌에 그린 벽화처럼, 사는 사람들이나 방문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즐거운 마을이 되길 바란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물도 검고, 바다도 검고, 물새도 검다 하여 먹 묵(墨)자를 써서 묵호(墨湖)라고 이름 지었다는 항구, 그 항구에 기대 살았던 논골담길 마을. 마을 사람들이 밤샘 작업을 하고 묵호항에서 오징어를 받아 지게에 지고 머리에 이고 마을길을 올라가며 흙을 쓸어내린 모습이 계단식 논과 같아 '논골'이라 이름 붙여진 마을.

벽화를 그릴 때 마을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 그들의 이야기와 생활이 구석구석에서 살아 숨 쉬는 마을.

벽화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곳이 동해시 논골담길 벽화마을이다. 날 더워서 언덕 오르는 것이 버거워지기 전에 봄 햇살을 한껏 맞으며 다녀올 만한 곳이 아닐까.

여행 정보

* 자가용으로는 동해고속도로 망상IC로 나가는 것이 가장 빠르다. 노봉교차로에서 우회전, 대진~어달~묵호로 이어지는 해안길(이 도로 풍경이 좋다)을 따라가다 어달항을 지나면 우측으로 등대 오르는 길이 있다.

등대에 주차장이 있는데, 20대도 주차하기 힘들어 공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 눈치를 봐서 길가에 적당히 대면 된다. 혹은 논골담길 벽화마을 아래쪽 길가에 대도 괜찮다.

* 시내버스로는 동해공영버스터미널이나 묵호역 등 시내에서 13-1, 14-1, 21-1, 21-2, 21-4, 32-1번 시내버스 등을 이용, 묵호어판장 앞에서 내려 논골길을 향해 걸어간다. 5분 정도 걸으면 벽화마을 아래에 갈 수 있다. 

* 묵호 등대 아래쪽 바닷가는 묵호~망상에 이르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이기도 하다. 날 좋으면 바다는 짙푸른 색채를 띠며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이 바닷가 길을 따라 횟집들이 여럿 있는데, 주로 관광객이 아닌, 동해시 주민들이 찾는 동네 횟집들이 많다. 횟감이 싱싱한 것은 물론 묵호항이나 인근의 일반 관광지 횟집보다 1만원 정도 저렴하다. 개인적으로 단골집도 있다.

묵호 등대 출렁다리 묵호 등대에서 좌측 아래로 내려가면 출렁다리가 있다.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촬영지로 알려져 한때 인기가 있었다.
▲ 묵호 등대 출렁다리 묵호 등대에서 좌측 아래로 내려가면 출렁다리가 있다.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촬영지로 알려져 한때 인기가 있었다.
ⓒ 홍윤호

관련사진보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프리랜서 여행작가, 문화유산 답사 전문가. 개인 저서 6권. 공저 다수. 여행을 삶의 전부로 삼아 나그네의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