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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남북정상회담(4월)과 지방선거(6월)를 앞두고 문재인 정부에 '악재'로 작용할 사건들이 터졌다. 하나는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산하 한미연구소 소장 교체 과정에서의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로비성 해외출장 의혹 사건이다.

앞서 터진 <중앙일보>의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 보도는 청와대의 반박으로 더 이상 논란이 커지지 않았다. '사실(fact) 싸움'에서 <중앙일보>가 밀린 탓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양상은 <중앙일보>의 '문재인 정부판 블랙리스트' 보도 때와는 상당히 다르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대화파'인 로버트 갈루치 한미연구소 이사장이 소장을 교체하려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간섭이 있었다'고 주장했고,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 등 보수진영이 '의혹'이 아닌 '사실'을 바탕으로 김기식 원장의 로비성 해외출장 의혹들을 잇달아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미연구소의 경우 박근혜 정부 때부터 이벤트 중심의 사업 진행, 불투명한 예산집행과 결산, 구재회 소장의 12년 장기 집권 등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돼 왔기 때문에 소장 교체 과정에서의 청와대 개입 의혹은 상대적으로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청와대 개입을 완벽하게 증명할 만한 명확한 사실도 없었다. 

하지만 김기식 원장의 경우는 문재인 정부에 부담이 될 정도로 사안이 심각하다. 특히 청와대가 재검증에 나선 이후에도 '적격 판정'을 내리면서 "문재인 정부가 오만해지고 있다"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노동운동→시민운동→국회의원... '비타협적 원칙주의자'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사 대표이사 간담회'를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8.4.10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사 대표이사 간담회'를 마치고 나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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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원장은 1980년대와 1990년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시민운동에 이르렀다. 지난 1993년 참여연대 준비모임을 거쳐 1994년 발기인으로 참여연대 창립에 참여했다. 이후 사무국장과 정책실장, 사무처장, 정책위원장 등을 맡으며 '86세대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로 떠올랐다.

특히 김 원장이 오랜 기간 참여연대 활동을 통해 집중한 것은 '재벌개혁'이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지난 1997년부터 재벌개혁운동을 시작했다고 적었다. 대기업 계열사의 주식을 가진 소액주주와 연대해 대기업을 감시하는 '소액주주운동'이 대표적이었다.

비슷한 시기 김 원장과 함께 참여연대에서 활동했던 인사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었다. 장 실장은 당시 경제민주화위원장을, 김 위원장은 경제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 겸 재벌개혁감시단장과 경제개혁센터 소장을 맡아 활동했다. 

이후 정치개혁과 파병반대, 한미FTA 저지, 야권통합 등의 운동을 펼친 김 원장은 지난 2012년 19대 비례대표 국회의원(민주통합당)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주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하면서 금융회사지배구조법안 등 금융개혁과 관련한 법안을 많이 발의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그룹인 '더좋은미래'도 이끌었다.

시민운동가 때나 국회의원 때나 김 원장에게는 '비타협적 원칙주의자'라는 평가가 계속 따라 다녔다. '비타협적 원칙주의'가 시민운동의 주장을 정당화하거나 초선 정치인을 부각시키는 전략으로 유효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나중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터져 나온 '로비성 해외출장 의혹'... '김기식 지키기' 나선 청와대

김성태 "김기식 원장 사퇴해야"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김성태 "김기식 원장 사퇴해야"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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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국회에 입성하지 못했던 김 원장이 지난달 30일 금융감독원장에 선임됐다. 그러자 재벌개혁을 위한 '투톱 체제'가 갖춰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와 김상조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을 주도할 쌍두마차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일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한 직후부터 '로비성 해외출장' 의혹이 터져 나왔다. 김 원장이 19대 국회의원 시절인 지난 2014년 3월부터 2015년 5월까지 미국과 유럽, 중국, 인도 등을 방문했는데, 여기에 들어간 비용을 피감기관(한국거래소,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우리은행)에서 지원받았다는 것이다. 

김 원장 단독으로 간 점, 정식 비서가 아닌 인턴과 동행한 점, 피감기관으로부터 비용을 지원받은 점, 출장 일정에 관광이 포함된 점 등으로 인해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10년 이상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던 한 인사는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국회의원 혼자서 해외출장을 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라고 전했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김 원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김 원장의 해외출장이 모두 공적인 목적으로 이뤄졌고, 적법해서 해임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지 않다"라고 '쉴드'(shield, 방어막)를 쳤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김 원장을 임명하기 전과 논란이 커진 뒤에 각각 검증과 재검증에 나섰지만 '해임 불가' 판정을 내렸다. 

청와대가 김 원장을 적극 감싸자 자유한국당은 10일 그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심지어 사퇴하지 않으면 국정조사까지 요구할 태세다. 하지만 청와대는 11일에도 "어제 말한 것에서 변화가 없다"라고 밝혔다. 김 원장의 해임이나 사퇴는 없다는 것이다.

"결국에는 다 정권의 부담으로 쌓인다"

  (서울=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외유성 해외출장 의혹을 받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사 대표이사 간담회'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2018.4.10
 외유성 해외출장 의혹을 받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국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내부 통제 강화를 위한 증권사 대표이사 간담회'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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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분위기라면 청와대의 '김기식 지키기'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김 원장이 태도를 바꾸어서 갑자기 사퇴하지 않는 한 청와대가 나서서 그를 해임하거나 그에게 자진사퇴를 종용할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감기관의 지원을 받아 단독으로 해외 출장을 간 김 원장도, 그런 고위 공직자를 적극적으로 엄호하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여론 또한 높다. 심지어 여권 일각에서는 김 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것은 조금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김 원장은 사퇴하는 게 옳다"라며 "자꾸 이렇게 얼버무리려 하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나중에 폭발한다"라고 말했다.

"도덕의 수준으로 진보와 보수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그동안 진보가 도덕적 우위를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웠다. 그 기준에서 보자면 김 원장의 해외출장들은 뇌물에 해당한다. 김 원장의 행위는 마치 안민석 의원이 삼성그룹이 정유라에게 말을 뇌물로 준 것을 조사하겠다고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활동비를 지원 받아 독일에 가는 것과 같다. '자유한국당도 그렇게 해외출장을 가지 않았냐?', '그때는 관행이었다' 이렇게 물타기할 일이 아니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말)이나 당시 국회의 관행 등을 이유로 로비성 해외출장 의혹을 정당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관계자는 "이제 진보는 보수에 비해 도덕적으로도 우위에 있지 않다"라며 "김 원장이 물러나지 않고 버틸 수도 있는데 이런 것이 결국에는 다 정권의 부담으로 쌓인다"라고 파장을 우려했다.

기자가 지난 9일 청와대의 고위관계자에게 '이렇게 김 원장을 두둔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적절한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 등 보수진영이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김 원장의 로비성 해외출장 의혹을 실제보다 키웠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 공격용'이라는 주장은 맞다. 그런데 보수진영이 이것을 '문재인 정부의 급소'처럼 적극 활용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진보의 이중성'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재료이기 때문이다. 

김 원장이나 청와대 모두 김 원장의 해외출장건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점만은 인정한다. 김 원장은 "공적인 목적으로 다녀왔으나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8일)이라고 고개를 숙였고,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는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9일)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을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한다'는 김 원장이나 청와대는 자진사퇴나 해임을 거부하고 있다. 해외출장건이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 맞지 않다면서도 정작 이것을 진지하고 중요한 인사검증의 요소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한 인사는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보다 더 높은 기준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김기식씨가 자기에게도 엄격했으면 좋겠다"

노무현 정부 시절 초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이해성 현 바른미래당 부산 해운대을 지구당위원장은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했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지난 2003년 4월 2일 시민단체들이 서동구 KBS 사장 임명을 강하게 반대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일부 시민단체 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렀다.

이 위원장은 "시민단체대표들은 잔인하리만치 원칙을 내세우며 대통령을 몰아붙였다"라며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공격한 사람이 참여연대의 김기식씨였다"라고 전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면서 조금이라도 오해받을 일을 해서 되겠냐고 거의 겁박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매몰차게 다그쳐서 결국 그날 간담회는 허탈하게 끝났다. 노 대통령은 내게 '이 노무현이가 오만했던 것 같소'라고 말하며 (서동구 사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이 위원장은 "나는 김기식씨를 잘 모르지만 그날 노무현 대통령이 정말 낮은 자세로 호소할 때 반대하던 (김기식씨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라며 "김기식씨가 자기에게도 엄격하면 좋겠다"라고 썼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날 노무현의 마음을 헤아리고 주변 인물들의 실체를 파악해 현명한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라는 고언도 곁들였다.

김 원장은 국회의원 시절에도 '비타협적 원칙주의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난 2014년 10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한국정책금융공사 국정감사에서 "지원을 받으려고 하는 기업과 그것을 심사하는 직원의 관계에서 이렇게 기업의 돈으로 출장가서 자고, 밥먹고, 체재비 지원받는 것 이것 정당합니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랬던 김 원장이 로비성 해외출장 의혹으로 사퇴 요구에 직면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이중적 입장주의'(자신의 입장에 따라 관점과 태도, 행동이 달라지는 경향을 일컫는 말-기자주) 앞에서 그날 그 발언을 다시 들려주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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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선대부속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한국의 보수와 대화하다><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