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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복지에 대한 정보를 찾아서 신청하여 권리를 보장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각장애인이 복지에 대한 정보를 찾아서 신청하여 권리를 보장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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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다. 심지어 세모녀법이 국회를 통과해 만들어졌지만 지난 4월 6일 증평 모녀 사건이 세 모녀 사건과 유사한 사례로 발견되었다. 더욱 놀란 것은 이미 죽은 지 두세 달이 훨씬 넘어 발견됐다는 점이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며 우리 사회가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손길이 이렇게나 부족한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증평 모녀는 주 소득자인 남편이 지난해 9월 자살한 후 생활고를 겪었다. 이 경우 긴급복지제도의 대상이 되지만 관련 상담이나 신청기록은 없었다. 긴급복지 사업은 세대 내 주 소득자가 사망하거나 질병, 가출, 이혼 등으로 인해 긴급한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생계비와 의료비, 주거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다.

증평 모녀 같은 경우 이러한 제도를 몰랐기 때문에 신청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곧 우리나라에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복지 사각지대 아래에 어떤 복지혜택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필자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보았다. 4년 전, 용인에 사는 시각장애인 김아무개군은 장애인 연금 수급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제도를 몰라 장애인 연금을 신청하지 못하고 심지어는 휴대폰 요금도 감면받지 못했다.

시각장애인이 복지에 대한 정보를 찾아서 신청하여 권리를 보장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면사무소는 불과 3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등록된 장애인임에도 면사무소의 공무원은 자기 관할 내에 장애인이 산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부랴부랴 장애인 연금을 신청했지만 그동안의 5년 치 연금을 받지 못했다.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못 받은 것이다.

장애인이 산다는 것을 안 후부터 주민센터에서는 활동 지원제도도 알려주고 신청을 독려하기도 하였다. 조금만 더 관심이 있었다면 김군이 5년 치의 장애인 연금을 못 받는 억울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현행 신청 제도를 공무원이나 동장, 이장, 통·반장이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면 발굴하여 주민센터에 신고하도록 바꿔야 한다. 신고받은 공무원은 직접 관할 가정에 방문하여 현 상황을 파악해 지원할 방법이 필요하다.

응급진료비 대납제도가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려운 사람들이 생명을 다투는 긴급 상황에서 병원을 방문하면 국가가 대신 치료비를 대납하고 이후에 최장 12개월 분할 납부를 할 수 있다. 우선 치료가 끝난 다음 병원의 의료복지사가 충분히 상담한 후 병원에서 지원할 수 있을 텐데 이 제도를 아는 환자도 거의 없다. 전 국민이 이용할 수 있지만 병원에서도 외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도는 있되 실현은 하지 못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것인가.

시각장애인과 지체장애인 친구들을 보면 활동 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왜 활동 지원을 신청해서 받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본인부담금이 부담되어 못 받는다고 한다. 본인부담금은 자신의 소득이 없어도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 및 건강보험을 종합 평가한다. 따라서 장애인 당사자의 소득은 없더라도 많은 부담금을 내야 하기에 신청이 어렵다.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주어진 좋은 제도지만 이런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 역시 안타까운 일이다.

필자가 아는 사람 중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부양의무제도에 의해 수급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려운 사정에 있는 사람들, 장애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또는 사실상 부양의무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공무원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국회와 정부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부양의무제를 완전 폐지하기 어렵다면 법을 대폭 완화하여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태그:#세모녀법, #긴급복지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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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둠 속에서도 색채있는 삶을 살아온 시각장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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