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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페이스북에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페이지가 개설되었다. 이 흥미로운 이름의 페이지는 말 그대로 오이를 싫어하는 어떤 페이스북 유저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했다.

이런 단순한 콘셉트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밖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억지로 오이를 먹이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때문에 트라우마로 성인이 된 이후 오이를 싫어하게 된 사람들이 많았던 것. 단순히 식감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는 식당 주인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오이를 음식에 넣어서 주곤 했으니 그들의 고충이 얼마나 컸으랴. 내가 당시의 분위기를 흥미롭게 바라본 건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오이를 싫어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였다.

어떤 이들은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페이지 메시지를 통해 오이가 맛있는데 왜 싫어하냐면서, 오이 사진으로 '테러'를 감행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은 개인의 취향이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 서투른 탓에 일어난다. 오이가 싫다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될 것을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다.

'취존'할 줄 모르는 '근본주의자'들

나는 평양냉면을 무지 좋아하지만,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는다.
 나는 평양냉면을 무지 좋아하지만, 그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않는다.
ⓒ 김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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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만큼이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음식이 평양냉면이다. 누군가는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고 하고, 국물이 걸레를 빨고 난 물을 마시는 느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밋밋해서 싫다고 하기도 한다.

먼저 밝히자면, 나는 평양냉면을 정말 좋아한다. 유명한 냉면 맛집을 찾아다닌다. '평냉'에 대해 얘기한다면 이 지면을 온통 채울 수도 있을 정도다. 유진식당과 우래옥, 서북면옥의 차이점과 맛의 특징에 대해서도 시간이 주어진다면 신나게 떠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동시에 평냉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왜 싫어하는지 알겠다. 밋밋하고 걸레 빤 물 같으며 도대체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다는 일련의 평가. 그럼에도 나는 그 느낌이 좋아서(?) 찾아다닌다.

사실 처음 먹었을 때부터 이게 호불호가 강하게 날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니까 먹는 거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안 먹는 거고, 그 뿐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이 단순한 사고가 잘 안 되는 편이라서 평냉에 대해 참 많은 말들이 오간다.

앞서 말했던 오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 '뭘 모르는 사람들'로 치부하는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정말 많다. 그들은 마치 종교의 교리를 엄격하게 지키고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자들을 공격하는 '근본주의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타인의 취향에 과도하게 개입한다.

특히 일부 연예인들과 전문가들이 방송에서 '평양냉면은 이렇게 먹어야 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답을 내려주는 것 마냥 얘기하는 것이 TV에 몇 차례 나온 적도 있다. 유난히 평양냉면이라는 음식과 관련해서는 '꼰대질'하는 데에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얘기다.

한 장의 사진이 불러온 위력

2일 오후 평양냉면 전문점인 평양 옥류관에서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원인 아이린 등 걸그룹 레드벨벳 멤버들이 냉면을 먹고 있다.
▲ 레드벨벳 아이린, '평양냉면 맛있어요' 2일 오후 평양냉면 전문점인 평양 옥류관에서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원인 아이린 등 걸그룹 레드벨벳 멤버들이 냉면을 먹고 있다.
ⓒ 평양공연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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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근본주의자'들을 향한 울분(?)이 터진 건 지난 2일 남측예술단이 방북했을 때 유명 식당 '옥류관'에서 대접받은 냉면의 모습이 언론에 찍히면서다. '평냉 근본주의자'들은 모름지기 평양냉면은 나무젓가락으로 먹어야 하고, 면을 가위로 잘라서는 안 되며, 양념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냉면을 먹는 레드벨벳은 쇠젓가락을 쥐고있었고, 냉면 옆에는 다대기(양념)가 놓여 있었다.

평양냉면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 평양냉면을 다른 방식으로 먹는다고 핀잔 받던 사람들의 조롱이 이어졌다. 혹자는 레드벨벳과 백지영을 데리고 다시 평양냉면에 대한 방송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그 한 장의 사진의 위력은 대단했다.

물론, 나는 여전히 가위로 자르지 않고 양념을 넣지 않은 채로 먹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누군가는 평양냉면을 다른 방식으로 먹고 있고, 세상 어느 식당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평양냉면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이 등장한 후에야 '어떻게 먹건 그건 개인의 취향이구나. 북한에선 저렇게 먹는데 취향을 존중해야겠군'이라는 생각이 가능한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 물론 여전히 이런 식의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지만 말이다. 냉면 하나가 한국 사회의 폭력적인 면을 드러낸다는 것이 참 흥미롭지 않은가.


태그:#평양냉면, #취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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