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를 본다는 건 어떤 것일까. '프랑스 영화'란 건 어떤 걸까. 미적인 화면, 모호한 줄거리, 난해한 수학 공식보다 더 어렵게 찾아야 하는 철학적 명제? 아마도 1895년 뤼미에르 형제 이래 영화라는 문화적 장르를 구축한 프랑스 영화를 한 마디로 정의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듯싶다. 하지만, 적어도 2018년에 프랑스 영화를 본다는 건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이야기를 만난다는 것이다. 그 확실한 '다른' 이야기를 선보인 작품이 지난 4월 5일 개봉했다. 브루노 뒤몽 감독의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이하 슬랙 베이)>이다.

영화의 한국어 제목은 보는 바와 같이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이다. 하지만, 이 제목에 낚여서 혹은 이 제목에서 연상되는 스릴러 장르에 대한 궁금함으로 이 영화를 접한다면 아마도 십중팔구 난감할 듯하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벌어진 살인 사건에 집중하고 싶지만, 정작 영화는 한 눈을 너무 많이 판다. 그리고 이는 어쩌면 브루노 뒤몽 감독의 장기와도 같은 것이다.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 ⓒ 에스와이 코마드


살인사건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사건이 브루노 감독의 작품에서 처음은 아니다. 이미 2014년 <릴 퀸퀸>이란 선례가 있다. <릴 퀸퀸>에서도 <슬랙 베이>에서 처럼 연쇄 살인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 사건을 두 형사가 추격한다. 그런데 <릴 퀸퀸>에서나 <슬랙 베이>에서나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의 시선 안에 드는 건, 그리고 영화가 주목하는 건 '사건'이 아니다. 외려 사건은 곁가지로 취급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 군상들을 통해 사건보다 더 '심각한 상징적 현실'과 관객들은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제목이 아닌 원제 < Ma loute >이다. loute는 속어로 loulou, 젊은 처녀라는 뜻이다. 하지만 <슬랙 베이> 속 뱃사공네 큰 아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이중적 의미는 영화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그곳은 척박한 자연 환경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어부들의 마을인 동시에, 1910년 한참 부를 누리는 프랑스 중상층들의 여름 휴가지이다. 바닷가 절경이 보이는 언덕 위에는 매년 그곳에서 여름을 지내는 앙드레(파브리스 루치니 분)의 저택이 있다. 여름을 보내기 위해 찾은 앙드레와 그의 아내 이사벨(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 분), 그리고 그의 두 딸과 조카가 그곳에서 지내고 있다. 활동적인 아이들은 여행자 실종 사건이 벌어진 상황에서도 마을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닌다. 그러다 한때는 마을에서 가장 유능한 어부였지만 이제는 나룻배 뱃사공으로 20센트씩 받으며 살아가는 가난한 어부와 그의 아들 마루트(브랜든 라비에빌 분)를 만나게 된다.

한 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앙드레의 조카 빌리(라프 분)와 어부의 아들 마루트. 영화는 '살인사건'은 차치하고, 소나기처럼 사랑에 빠져버린 두 청춘과 두 사람의 가족 이야기로 눈을 돌린다. 그리고 결국은 비극이 되어버린 두 청춘 남녀의 사랑의 아이러니함이 브루노 뒤몽 감독이 주목하는 부분이다.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 ⓒ 에스와이코마드


마루트와 빌리, 그들의 엇갈린 만남

마루트와 빌리의 사랑은 <소나기>의 소년과 소녀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을 찾아온 형사들에게 자신들의 여름 별장의 고급스러움을 거들먹거리는 부르주아 가문의 빌리와 단돈 20센트에 손님을 날라주는 꼬질꼬질한 마루트의 환경은 이질적이다.

엄마 오드(앙드레의 누나, 줄리엣 비노쉬 분)에게 야단맞고 뛰쳐나와 마루트와 함께 바다로 나갔다 죽을 뻔한 빌리를 구해준 마루트에게 앙드레 가족은 감사를 표하지만, 정작 빌리가 마루트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자 이들은 대번에 어처구니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인다. 생명의 은인이라며 마루트를 식사에 초대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거친 말 한 마디에 가족들은 대놓고 그를 조롱한다.

운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마을 사람들의 생업의 터 앞에서 잔뜩 겉멋을 부린 채 외식을 즐기는 앙드레 부부가 날리는, 진심이라고는 1도 없는 허세 가득한 삶의 찬가는 졸부의 실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다. 그들의 가식과 허세와 자비는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가 유지될 때뿐, 빌리의 사랑 고백처럼 그곳에 금이라도 갈 양이면 언제든 태세 전환을 한다.

살인 사건으로 시작했지만, 정작 두 형사의 범죄 수사보다 빌리의 가족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기 시작하는 영화는 '고어'한 살인 사건의 전모보다도 외양에서부터 기괴한 앙드레네 가족을 샅샅이 관찰하는 데 더 집중한다.

두 팔을 휘적거리며 자신의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앙드레와, 자전거 하나 제대로 타기 힘든 그의 처남이자 매제인 크리스티앙의 신체는 특이하다. 두 집안의 갈등을 초래한 주인공, 빌리의 외양도 만만치 않다. 마루트가 한 눈에 반해버린 빌리, 그러나 형사들은 그녀(?)의 정체성에 헷갈려한다.

영화는 <릴 퀸퀸>이 살인 사건을 매개로 여전히 프랑스에서 지속되는 종교적 갈등, 보수적이고 완고한 사람들의 아이러니함을 다루었듯, <슬렉 베이>도 역시나 살인 사건을 매개로 부르주아 계급의 '부도덕'을 블랙 코미디의 형식으로 신랄하게 꼬집는다.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

슬랙 베이; 바닷가 마을의 비밀 ⓒ 에스와이 코마드


빈부 격차 심했던 1910년 프랑스

그런 그들의 맞은편에 그들을 오로지 먹고사니즘의 대상으로 여기는 마루트네가 있다. 앙드레 가문 같은 집안은 아름다운 해변에서 하녀를 두고 여름휴가를 보낼 정도가 되었겠지만, 마루트네와 같은 하층민들에겐 여전히 먹고 사는 것이 요원한 과제인 시기였다. 19세기 중반까지도 서구인의 수명은 45세에서 50세 정도였다. 아일랜드에서 감자 파동으로 인해 10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 19세기 중반이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은 '기근'과 싸웠다.

<슬랙 베이> 속 마루트 네의 숨겨진 비밀은 바로 이런 기근 속에서 한때는 잘 나갔지만 이제는 20센트를 받으며 손님을 실어 나르며 살아가는 가난한 가족의 현실이다. 우리에게는 이젠 그저 '고어'할 뿐이지만, 당시에는 어쩌면 '선택 여지가 없는 현실'이었던.

<소나기>처럼 만났던 부르주아 가문의 빌리와 가난한 어부네 마루트의 풋사랑은, 정작 마루트 네의 숨겨진 비밀 때문이 아니라, 빌리의 숨겨진 진실 때문에 파탄난다. 해프닝이 된 사건, 사건보다 더한 부르주아 가문의 부도덕, 그것이 <슬랙 베이>가 도달한 결론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슬랙 베이;바닷가 마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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