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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 비례해 현명함이 저절로 생긴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늘 갈등하고 잘못하고 후회하고 배우며 살아갑니다. 오늘 실수하고 내일은 그만큼 지혜가 쌓이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중년의 좌충우돌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너가 생각하는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
"엄마? 엄마는 자유로운 사람이지"

아들 왈, 엄마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줄 알면서도 가족도 챙기는 균형 있는 사람이란다. 어쩜 이렇게 지갑이 열릴 소리만 하는지. 처세술이 뛰어난 22살 큰 아들. 그와 내가 이렇게 달달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아마도 지금까지 내가 한 번도 불을 끄고 "엄마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한 적이 없어서인 것 같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아들의 성적표를 본 적이 없다. 숨기고 싶은 데는 그만 한 이유가 있겠지 생각해서 굳이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자랑하고 싶으면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릴 테니 말하지 않는 건 묻지 않았다.

"너가 생각하는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

속으로 궁금할 때도 있었다. 특히 아들 학교 총회에 가서 엄마들을 만나고 오는 날이면 그랬다. 대체로 아이 성적이 좋은 엄마가 여러 가지 정보와 가십에 능하다. 이런 엄마 옆에는 맞장구 쳐주고 그 아이의 과목별 성적과 성과를 열거해주는 '서포터즈'가 꼭 있다.

이 팀이 분위기를 주도하며 아무도 부여한 적 없는 권력(?)을 행사한다. 행여 성적이 낮은 아이 엄마의 소신발언은 나대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나는 중간이라도 갈 요량으로 침묵한다. 학교소식을 잘 모르거나 아이 성적이 낮으면 무관심한 엄마가 되는 분위기다. 억울하다.

아들과 그 친구들은 학교가 끝나면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들이닥쳐 냉장고를 무소유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간식을 만들어 주며 슬쩍 학교생활을 묻는다. 식탁에 앉아서 도란도란 음식을 먹으며 시시콜콜 얘기 해주면 좋으련만 아이들은 암호 같은 단어들만 주고받으며 웃느라 정신없다. 정신없어진 나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내 방으로 퇴장, 정보 캐기는 실패.

어떤 엄마는 내 아들이 요새 누구랑 어울리는데 그 아이 집안에 문제가 많은 아이라고, 학교에서도 문제가 많다고 깨알 정보를 흘려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아이는 라면에 청양고추 넣어서 먹고, 다 먹고 나면 자기 그릇 싱크대에 넣을 줄 알고, 잘 먹었다고 인사할 줄 아는 아이라고 동문서답해서 감히 깨알정보를 흘려 준 그 분의 말문을 막는 우를 범한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선 이상한 엄마였다. 멀리서 들리는 아이와 내가 본 아이는 많이 다르다.

집 나간 고2 아들, 가출편지 창의력 하고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포스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포스터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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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고2가 되던 해에 집을 나갔다. 편지 한 통을 화장대 위에 올려둔 채.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단다. 이 무슨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같은 진부한 청소년 드라마의 클리셰인지. 뭔가 더 그럴싸한 이유를 기대한 것도 내 욕심인가. 내가 아들을 이토록 창의력 없이 키웠다니, 자괴감이 밀려왔다.

3일 동안 아이 방에 냉기가 돌았다. 집은 오지 않지만 학교는 다니는 모양이다. 그동안 내 몰골도 말이 아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자유롭게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억압이라 느꼈을까. 아들 전화기는 꺼져있어 친구들에게 그의 안부를 들었다.

밤새 뒤척이다 마음을 다잡고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지금은 살짝 방황하지만 심지가 있고 심성이 착해서 금방 돌아올 거라고 되레 나를 위로해 주셨다. 아이는 청소년 드라마의 반항아 캐릭터처럼 3교시가 시작할 무렵 등교했다. 교무실에서 나를 본 아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이와 단둘이 빈 교실에 앉았다. 아이는 자취하는 친구 집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원하는 건 놀기다. 아무런 제약 없이 놀기. 이때가 아니면 언제 맘껏 놀아보겠나 싶어서 그러라고 했다. 담임 선생님께 아이를 자퇴처리 해 달라고 했다. 공부건 뭐건 필요하면 그때 하면 되니까. 자유는 책임을 동반하니 스스로를 책임지는 건 당연지사.

어차피 꺼져있는 핸드폰과 직불카드가 들어있는 지갑을 돌려받고 교무실을 나왔다. 아이는 나의 쿨한 처사에 당황했다. "엄마, 자퇴는 안할 거예요." 아들의 흔들리는 목소리가 내 뒤통수에 닿았다.

진부하기는 나도 마찬가지. 속으로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가 절로 새어나왔다. 참 명대사다. 차에 타자마자 전화기가 울렸다. 선생님이다. "어머니, 잘 하셨어요. 애가 깜짝 놀라서 이제부터 지각도 안 하고 학교 잘 다니겠다고 엄마한테 얘기 좀 잘해 달라고 싹싹 비네요." 난 진심인데 선생님은 작전으로 받아들이신 거 같다. 여튼 심약한 아들의 3일 일탈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못난 놈. 칼을 뺏으면 뭐라도 썰든지.

4수를 하건 5수를 하건

 이런 봄날, 무거운 가방 메고 독서실로 향하는 아들이 참...
 이런 봄날, 무거운 가방 메고 독서실로 향하는 아들이 참...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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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지금 4수중이다. 고3 이후로 몸이 아파 치료받고 요양하느라 연필만 쥔 채 2년을 보냈다. 이제 건강을 회복해 제대로 공부하고 싶단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번거로운 나는 아들 대학 들어갔냐는 질문이 불편하다.

죄는 아닌데 대학도 못 보내는 무능한 엄마인 거 같아 괜히 움츠러든다. 아들 신경 안 쓰고 자기 할 일만 하고 다닌다고 수군거리는 거 같아 내심 불편했는데 아들의 답변이 내 기를 살려준다.

"나중에 엄마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얼씨구,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런 말 하는 거 보니 쇠고기가 먹고 싶은가 보다.

4수를 하건 5수를 하건 지금 우리가 함께 지지고 볶는 시간이 좋다. 요즘 나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보낸다. 그러다 보니 집 근처 독서실 다니며 독학 재수중인 아들과 삼시세끼를 나눈다.

누군가와 하루 세끼를 나누면 없던 친밀감도 생기게 마련이다(남편과 집에서 먹는 삼시세끼는 불법으로 간주함). 아들의 내밀한 맘속 이야기를 들을 때면 엄마와 아들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그를 바라보게 된다. 자식이 타자화 되는 새로운 경험이다.

애들 대학 보내놓고 홀가분하게 여행 다니며 중년을 즐기는 친구들, 혹은 갱년기 우울증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4수생 삼시세끼를 챙기느라 아무 겨를이 없다. 그것도 좋다. 겨를 없는 삶. 겨를은 번뇌를 불러오기도 하니까.

온 세상이 꽃 천지다. 이런 봄날, 무거운 가방 메고 독서실로 향하는 아들이 참...

다만 나는 매일 결심한다. 행여 아들이 대학을 가지 않거나, 혹은 못 가게 되더라도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와 같은 가시 돋친 말들을 쏟아 내지 않기를. 내딛는 걸음걸음 돌부리 천지인 인생에서 넘어지지 않는 것보다 넘어지면 일어나는 것이 백배 중요한 일임을 진심을 담아 말할 수 있기를. 이 시간은 이 시간대로 의미가 있었음을 '내가 꼭' 기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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