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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세바돈(Foncebadon)
 폰세바돈(Foncebadon)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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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꾸리는 경제적인 방법

아침마다 배낭을 꾸려야한다. 여러 사람이 자는 곳이라 일어나는 시간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최대한 아주 간단한 동작으로 조용하게 방을 나가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잠자기 전 미리 배낭을 싸지만 수건과 치약, 전날 덜 마른 옷을 침대 여기저기에 걸어놓기 마련이다. 이런 자질구레한 것을 침대에서 일일이 챙겨 배낭에 넣다보면 달그락 거리를 낼 수밖에 없다. 자고 있을 때 듣는 달그락, 소리는 얼마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드는가. 최대한 소리를 줄이는 방법을 궁리해야 했다.

나는 이렇게 했다. 일단 이불처럼 덮고 자는 침낭을 보자기로 사용한다. 활짝 편 그곳에 밖으로 꺼내놓은 물건들을 다 쓸어넣고 들고 나온다. 알베르게 휴게실이나 식당에서 다시 펼쳐놓고는 차분히 짐을 정리한다. 잠자는 사람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려는 나의 노력이었다.

비상 식량을 좀 더 넣고 싶어도 무게가 더 나갈까 싶어 여전히 최소 것만 챙기지만 더 이상 배낭 무게는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짐이 줄어든 것이 아니다. 체력도 아직 견딜만 했다. 근육통, 그런 것도 없었다. 단지 '발'이 말썽이었다.

까미노에 있는 무인 좌판. 사고 싶어도 짐이 되니 못 산다.
 까미노에 있는 무인 좌판. 사고 싶어도 짐이 되니 못 산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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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간 연석이 가끔 어디 즈음 왔는지 물었다. 어제는,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Muris de Bechivalda)에 있는 황토 사설 알베르게에서 저녁 식사를 했는데 너무 좋았다고 하자 그가 곧장 답을 보내왔다.

'나는 그 사설 알베르게에서 자봤어. 그곳은 배드버그(Bed bugs) 원산지야. 왕창 물어 뜯겼다니깐. 공립에서 잔 네가 행운이야.' 

나는 그에게 답했다.

'아, 나도 배드버그에 왕짱 물리고 싶다. 대신 발이 다 낳는다는 조건으로다가.' 

이런 심정은 사실이었다. 발만 완쾌되면 연석보다 더 빠르게 완주할 자신이 있었다. 앞서 가고 있는 연석에게, 아무리 마음을 비우면서 이야기를 한다지만 내심 부러웠다. 내가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그는 걷고 있었다. '진짜 당해보면 그런 말 못해. 엄청 간지러워서 미친다고. 걷기 힘들 정도로.' 째려보는 이모티콘과 함께 그가 항의했다.

연석과 같은 알베르게에서 몇 번 잔 적이 있었다. 하지만 벌레가 그만 물었다. 나도 물었을 것이다. 허리 즈음에 자국이 있었으니깐. 그런데 간지럽다는 느낌이 없었다. 볼록하게 튀어나오지도 않았다. 벌레들이 나를 피한다? 나는 그 이유를 추측해봤다. 첫째는 물집 때문에 항생제를 꼬박꼬박 먹어서 그럴 수도 있었다. 아니면 한국 중년 남자들이 말했던 것처럼 큰 고통이 작은 고통을 마비시켜서 벌레 따위에는 안중에 없어서일까?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 공립 알베르게 휴게실과 외관. 짐을 정리하려고 나와보니 요구르트 네 개가 탁자 위에 있었다. 그 날 네 명의 순례자가 잤다.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 공립 알베르게 휴게실과 외관. 짐을 정리하려고 나와보니 요구르트 네 개가 탁자 위에 있었다. 그 날 네 명의 순례자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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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잘 때 추웠다. 그곳 담요 하나를 침대에 깔고 담요 두 개를 덮었다. 나도 배드버그가 걱정 되어 다시, 판초 우의를 패드 대신 깔고 얇은 침낭은 이불을 대신해서 덮고 잤다. 그 위에 또 담요 두 개를 올렸다. 담요를 돌돌 말고 자서 그런지 꿈속에서 간지러워서 몸을 긁었지만 그것은 심리적인 반응이었다. 아침에 보니 말짱했다.

내가 가지고 간 얇은 침낭은 보온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곳은 여름이어도 4계절을 다 볼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이른 봄이나 늦가을처럼 춥다가 한낮에는 아주 뜨겁다. 그제와 어제는 비바람이 쳤다. 체감 온도는 거의 겨울이었다. 그래서 순례자들이 오늘 넘게 될 고지를 두고 그리 걱정했던 것이다. 철의 십자가는 1505m였다. 고지라 온도 변화에도 신경써야 했다.

아침에 마주친 순례자들은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 패딩에 털모자까지 썼다. 유난히 아침이 쌀쌀하기도 했다. 그들의 옷차림을 보자 나는 경각심이 일었다. 얼마나 춥길래 저렇게 완전무장을 했을까. 내가 전혀 알지 못한 뭔가가 있는 걸까. 정보가 없는 곳(대상)은 두려운 법이다. 연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겨울옷이 없어서 걱정이야.' 먼저 산을 넘은 연석은 '나는 반팔에 판쵸로 다 커버했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메시지라서 진짜 웃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판쵸도 필요없었다. 땀으로 온몸이 젖었으니깐.

폰세바돈(Foncebadon)

철의 십자가 조금 못 미처 해발 1400m에 있는 폰세바돈(Foncebadon)에 도착한 시간은 2시가 다 되어서였다. 여섯시간 동안 22km를 걸어 올라왔다. 힘들긴 했지만 다 걷고 난 여정은 힘듦도 희석시키는 마력이 있다. 실은 내일 여정이 더 큰 고비라 힘들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전체 여정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1505m)를 두 곳이나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 언덕(?)은 태양과 더 가까워서인지 뜨겁다. 도착하자마자 발바닥 소독을 먼저 하느라 빨래를 5시 지나서 했다. 한 시간도 못 돼서 말라버렸다.

폰세바돈에서 만난 프랑스 순례자들. 왼쪽이 레옹에서부터 두달 째 걷고 있는 분이고 오른쪽이 두번째 순례길을 걷고 있는 분이다.
 폰세바돈에서 만난 프랑스 순례자들. 왼쪽이 레옹에서부터 두달 째 걷고 있는 분이고 오른쪽이 두번째 순례길을 걷고 있는 분이다.
ⓒ 차노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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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샤워하고 물기 묻은 발바닥을 바깥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자 거의 같은 시간대에 폰세바돈에 도착한 프랑스 순례자가 내 발바닥을 보더니 안쓰러워했다. 그녀의 이야기 상대로 나와 있던 또 다른 프랑스인도 나를 걱정해주었다. 그러면서 그녀들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그녀는 두 달 전 레옹(Lehon)에서 출발했단다. 21일 째인가, 나보다 더 큰 물집이 생겨 잠시 걷는 것을 중단했단다. 그리고는 치료를 하고 다시 걸었단다. 그러면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나를 걱정했다. 그녀들의 걱정이 부담스러워 나는 내일 넘게 될 철의 십자가로 화제를 돌렸다. 그곳은 거대한 돌무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집에서 들고온 돌을(돌 외의 기념품도 있지만)을 그곳에 두고 간다. 돌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순례길을 떠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 담겨 있다. 가령 버리고 싶은 것들 그리고 염원하는 것들을 담고 있는 그것은 순례자를 대신하는 상징이 되어 그곳에 남게 되는 것이다.

그녀들은 금방 내 발에서 산을 넘는 것으로 수다를 옮겨갔다. 다른 프랑스 분은 10년 전에 처음 왔고 이번이 두 번째라고 하면서 그때보다는 덜 힘들 거라고 했다. 그녀들은 얼굴 가득 주름을 만들며 자주 웃었다. 나도 절로 환한 미소를 띠지 않을 수 없었다.

라바날 델 까미노를 떠나며
 라바날 델 까미노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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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수다에는 생기가 있었다. 얼마나 멋진 인생을 사는가. 나도 10년 후 저런 모습을 하고 있겠지? 그때를 기약했다, 사치스럽고 예쁜 외양 보다는 건강하고 당당한 자신감으로 내면이 충만한.

거울 속의 나

지팡이, 가리비, 노란 화살표를 달고 있는 순례자 인형 뒤로 보이는 거울 속의 나. 가끔 내 얼굴이 붙어 있는지 궁금했다.
 지팡이, 가리비, 노란 화살표를 달고 있는 순례자 인형 뒤로 보이는 거울 속의 나. 가끔 내 얼굴이 붙어 있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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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을 걸으면 외양을 치장하는 것에서 멀어진다. 이곳에서 머리카락을 드라이어로 말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연 바람이 드라이어다. 삐치면 삐친 대로 놔둔다. 한 번은 전에 모 블로그에서 읽었던 대로 빨래 비누로 머리를 감은 적이 있었다. 세면도구는 팜플로나에 다 두고 오기도 했지만(다시 샀다) 빨래 비누로 머리를 감을 수 있으면 샴푸가 없어도 된다. 비누 하나로 빨래도 빨고 머리도 감을 수 있으니 짐을 줄인다는 것이다(0.1g의 무게에도 예민해진다). 하지만 머리를 감았는데도 엄청 눌러 붙은 느낌 때문에 다시는 비누로 감지 않았다. 대신 샴푸로 빨래를 하곤 했다.

화장 같은 것은 전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거울 보는 것도 멀어졌다. 아침마다 내 얼굴이 제대로 붙어있는지 궁금했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선크림만 대충 발랐다. 한 시간만 지나면 땀으로 얼굴이 범벅이 됐다. 상당한 시간을 두고 할애하는 것은 내 신체 중에서 발이다. 걷기 전에 소독 해줘야 하고 정성스레 밴딩을 해야 신발 속에 넣을 수 있다. 이렇게 신경을 써도 양쪽 검지 발가락 발톱이 빠질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싫다고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도 최선을 다해 정성을 다한다. 한 가지만 바랄 뿐이다. 부디, 소란스러운 신고식 없이 빠져주기를 말이다.

바에서의 휴식
 바에서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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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에 물집이 잡힌 뒤로 까미노 중간 중간에 있는 바에서 쉴 때면 무조건 신발을 벗었다. 양말까지 척척 벗고 뭔가를 주문했고 먹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 순례자가 그랬다. 양말 벗고 있는 이들을 보면 한두 군데 이상이 있었기에 투정을 부릴 수도 없었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쪽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절반 이상 걸어 온 순례자들은 훈장과 같은 상처를 지니고 있었다.

세수도 안 하고 양말을 벗고 있어도 다들 지나가면서 즐겁게 인사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No pain, no gain!' 모두들 고통 없이 뭔가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스스로 고통을 자청한 순례자들은 기꺼이 그것까지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 길이 활기 넘치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누구에랄 것 없이 인사를 건넨다.

"올레, 부엔 까미노(안녕, 즐거운 순례길이 되길 바래)!"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를 떠나며. 구름이 무섭도록 붉다.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를 떠나며. 구름이 무섭도록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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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2017년 6월 13일에 걷기 시작해서 7월 1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습니다. 30일만의 완주였습니다. 그 다음 날, ‘세상의 끝’이라는 피니스테레와 묵시아까지(100km)까지 내처 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34일 동안 900km 여정을 마쳤습니다. 몇 십 년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34일의 여정은 짧을 수 있으나 걸으면서 느꼈던 것들은 제게 인생의 축소판처럼 다가왔습니다. 움츠린 어깨를 펴게 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내다보게 했습니다. 이곳에서 34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도란도란 풀어놓으면서 함께 공유하려고 합니다.



태그:#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 길 , #프레그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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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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