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를 키우면, 어른들끼리는 경험하기 힘든 낯선 일들을 겪습니다. 오직 육아하는 이때만, 부딪칠 수 있습니다. 애 키우는 동안 나를 흘려보내는 것 같아 좌절감에 글을 씁니다. '너희만 크냐? 엄마도 같이 크자'는 마음으로 펜을 들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 육아일상 속 메시지를 담아 글을 씁니다. [편집자말]
"혼자 할 거야."

어린이집 하원 후, 놀이터에 가던 딸이 불쑥 말을 꺼냈다. 딸은 아직 말이 서툴다. 제대로 알아듣고 싶어 조금 더 캐물었다.

"뭐를 혼자 할 거야?"
"모래 놀이."

그제야 이해됐다. 아이는 어린이집 하원 즈음인, 오후 놀이터 터줏대감이다. 놀이터에서 할 수 있는 온갖 놀이를 섭렵했는데, 그중 으뜸은 단연 모래놀이였다. 선명한 핑크빛 모래놀이 장난감을 풀어 놓으면 갓 걷기 시작한 돌쟁이에서부터, 초등학생들까지 우르르 몰려온다. 아이들은 모두 모래 장난을 좋아했다. 어제도, 그제도 낯선 아이들과 장난감을 나누어 놀더니, 그게 싫었나보다.

"같이 놀면 더 재밌을 텐데."
"싫어."

단호한 한 마디. 함께 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녀는 바야흐로 31개월. '내 것'을 챙기는 소유개념과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인지발달 중인 딸에게, 배려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할 수 없다. 어른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조언만 해주고, 혼자 놀지, 함께 놀지 선택을 딸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래. 같이 놀지 말지를 너가 결정해. 대신 나눠 놀지 않으면 다른 친구들이 싫어 할 수도 있어."

딸은 대꾸도 안 하고, 도착하자마자 모래놀이 장난감부터 풀었다. 흙 파고, 밀고, 담고, 찍고, 꽂고. 온갖 화려한 기술을 뽐낸다.

놀이터의 즐거움 중 으뜸은 모래놀이. 장난감을 풀어 놓으면, 낯선 친구들이 찾아온다.
 놀이터의 즐거움 중 으뜸은 모래놀이. 장난감을 풀어 놓으면, 낯선 친구들이 찾아온다.
ⓒ 최다혜

관련사진보기


몰입해서 노는 딸 옆으로 한 살 어린 남자 아이가 다가왔다. 올 것이 왔다. 딸이 같이 놀기를 거부하면, 저 아이는 얼마나 서러울까. 보기 민망한 상황이 눈 앞에 훤했다. 남자 아이의 엄마 얼굴에도 안절부절, 긴장한 빛이 돌았다. 아들이 타인의 장난감에 허락없이 함부로 손 댈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얼굴에 드러났다.

"동생아, 같이 놀자."

다행이었다! 혼자 놀 거라더니, 막상 어린 친구가 쭈뼛쭈뼛 다가오자 마음을 돌렸나보다. 딸은 이름모를 동생과 어울려 놀기로 했다. 나와 아이 엄마는 긴장이 풀려 그제서야 서로 인사를 나눴다. 함께 놀 줄 모르는 3살, 4살 아이는, 따로 놀았다. 각자의 상상 세계에서 행복해하면서!

쪼잔한 엄마, 부끄러워졌다

한창 잘 놀던 모래놀이 장난감을 바닥에 팽개치고, 미련없이 뛰어갔다. 사실, 아무리 좋아하는 놀이라도 길어야 10분이다. 모래놀이가 지겨워, 놀이기구를 타러 간 것이다. 시소, 그네, 미끄럼틀. 하나씩 만끽하며 즐거워한다. 유모차에서 바둥대는 7개월 둘째와 함께 멀찍이서, 혼자 잘 노는 놀이터 장인을 지켜만 보았다.

미끄럼틀에서 주르르 내려오더니, 뱅뱅이로 뛰어갔다. 자매로 보이는 여아 셋이 빠르게 돌리는 뱅뱅이에 눈길이 간 모양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뱅뱅이는 2개였는데, 딸이 동승하면, 세 아이가 다른 뱅뱅이로 우르르 바꿔 타는 게 아닌가. 한두 번 거절도 아니고, 민망한 상황을 다섯 번 넘게 반복했다. 딸이 어떻게 하나 궁금했다. 계속 소외되니, 속상한 마음에 그만 둘 줄 알았다.

자식은 부모 마음 같지 않았다. 자존심 구겨가며 언니들을 쫓아다녔다. 저 정도로 비굴하면, 같이 타 줄 만도 하건만. 눈치 없는 딸이 거절당하기만 하니 지켜 볼 수만 없었다.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너랑 안 탄대. 같이 놀지마. 엄마랑 놀자."
"싫어. 이거 탈 거야. 같이 탈 거야."

도무지 물러날 기미가 없었다. 세 여자 아이들은 난처해 하면서도, 낯선 꼬마 때문에 놀이기구를 탈 수가 없었다. 자매는 간간이 인상 찌푸리며 짜증을 냈다. 할 수 없다. 어른의 권력을 이용해, 조금 비굴하게 부탁했다.

"얘들아, 딱 한 번만 같이 타주면 안 될까?"

아이들은 서로 눈짓 하더니, 드디어 4살 꼬마를 태워줬다.

"아, 애기 있으니 세게 못 돌려. 재미 없어."

저렇게 드러내고 싫어하니, 더 이상 함께 탈 수 없었다. 딸을 무엇으로 꼬드겨 뱅뱅이에서 내리게 할까. 고민하던 차에 다행히 어린이집 친구가 왔다! 이때다 싶어 친구와 함께 태우고, 세 자매는 다시 속도감 있는 뱅뱅이를 즐길 수 있게 됐다.

마음이 복잡했다. 딸이 혼자 모래놀이 하겠다 했을 때는 '그래. 같이 할지, 혼자 할지, 선택은 네 몫이다. 정답은 없지'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른 아이들이 딸과 놀고 싶어하지 않을 때는 '어휴, 같이 놀아주면 좀 좋아. 놀이터는 어울려 노는 곳'이라고 완전히 반대 입장을 취해버렸다.

내 좁은 심보를 알아차리니, 부끄러웠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놀이터 버전이 따로 없었다.

놀이터는 낯선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사회 학습의 공간이다.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놀이터는 낯선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사회 학습의 공간이다.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부모들이여, 놀이터로 갑시다!

짧고 강렬한 경험이었다. 놀이터에 오지 않았다면 생각도 못 했을 일이었다. 아이만 놀이터에서 낯선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았다.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집에서는 내 아이만 보면 됐고,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 지도 아래, 조화롭게 잘 지냈다. 육아 서적에서 가르쳐주는 교우 관계는 책 밖에서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자녀가 타인과 어울리는 방법을 가르쳐주려면, 부모도 난처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실전 경험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최적의 장소가 바로 놀이터였다.

놀이터에 오면 처음 본 아이, 얼굴 마주쳤던 아이, 원래 친한 친구도 만날 수 있다. 동생, 또래, 언니, 오빠(누나, 형) 등 연령대도 다양하다. 성향도 가지각색이다. 모르는 친구와도 잘 어울리는 아이, 동생들을 챙기며 뿌듯해 하는 초등학생들, 낯선이를 경계하는 아이들. 좋고, 나쁨 없이 그저 다른 아이들이 어우러진다.

아이도, 부모도 놀이터에서 여러가지 상황을 겪어보면 좋겠다. 그때, 그때 다를 것이다. 날 것 그대로, 인간 관계 속으로 들어가니 매번 다른 상황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대처 능력을 기를 수 있는 사람은 아이 뿐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딸이 놀이터에 갈 때 장난감을 넉넉히 챙겨가야겠다. 혼자 놀지, 말지는 딸의 선택이지만, 상대 아이가 거절당했을 때 느낄 민망함을 부모가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놀이터에 가지 않았다면 몰랐을 나만의 비결이 생겼다. 볕 좋은 날, 자주 나가 '원만한 또래 관계 비법'을 쌓아야겠다. 놀이터에 갑시다, 우리!

아이도, 부모도 함께 크는 놀이터.
 아이도, 부모도 함께 크는 놀이터.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기자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태그:#놀이터에가야하는이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책 읽고, 글 쓰고, 사랑합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을 꿈 꿉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