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어른> 손경이 강사편 두 번째 이야기

<어쩌다 어른> 손경이 강사편 두 번째 이야기 ⓒ O tvN


애석하게도 우리 집은 성교육이 부재한 곳이었다. 성은 금기시되었고,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몸의 변화가 시작된 사춘기 때에도 혼란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고,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당시에는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러운 것처럼 느껴졌고 응당 따라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침실과 화장실을 오가며 비밀이 많아졌고,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 썩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성교육은 유명무실했고, 대부분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해당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 측에서도 교육부 지침 하에서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시간으로 여겼던 것 같고, 심지어는 교육부가 나눠준 자료들에는 비뚤어진 성 의식을 조장하는 내용들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었다. 남성의 성적 충동을 당연하게 인식하고, 성폭력의 책임을 우유부단한 태도를 가진 피해자의 몫으로 넘기는 등 성차별적 시각을 강화하고 잘못된 성폭력 예방과 대처법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있었다.

나는 가정과 학교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기억이 없다. 대신에 나와 혹은 우리는 잘못된 성 관념을 또래 남성 집단들 사이에서 습득하게 되었다. 남녀공학이었지만 여학생들과 분리된 상황 속에서 성에 대한 이해는 편견으로 메워지고, 왜곡된 성 의식 속에서 10대의 시간을 보낸 기억이 더 많다.

"자극적 콘텐츠에만 주목... 올바른 성 의식 배우는 게 중요"

O tvN <어쩌다 어른>이 지난달 28일에 이어 4일에도 손경이 강사의 강연을 방영했다. 이날 손 강사는 '누가 성을 배워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올바른 성교육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이들을 넘어 어른들로 교육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 행복한 교육이 행복한 성을 만들고, 올바른 성 가치관을 형성하면 성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신념을 공유했다. 강의가 진행된 1시간이 아주 짧게 느껴졌다.

"강연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자극적인 콘텐츠만 주목한다. 올바른 성 의식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된 성 의식 속에서 범죄가 발생한다고 말한 그녀는 조기 성교육이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젠더감수성은 아이 때부터 키울 수 있고, 놀이를 통해 지속해서 습득한 것들이 고정관념으로 자리할 수 있다고 일컫는다.

실제로 나의 경우에도 어린 시절 완구점에 가서 인형 코너를 구경한 기억보다 로보트를 사러 간 기억이 많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었을 수 있겠지만, 격리된 놀이 문화 속에서 '남자답다'고 여겨지는 것에 자연스레 손길이 갔을 가능성이 높다.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다

손 강사는 남자보다 여자의 신체 명칭이 생소한 점에 대해 말하면서 말의 기준이 남성으로 향해 있다고 얘기했다. 실제로 우리가 생식기를 말할 때 남자는 '있다'로 여자는 '없다'로 통칭하는데, 이 흐름은 남자를 긍정하고 여자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인식이 언어에 반영되기도 하고 언어가 인식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면서 이제는 언어 습관의 변화를 통해 인식을 바로잡자고 역설했다.

손 강사가 지적했듯, 남녀 간의 소통 부재로 서로에 대한 몰이해가 발생하는 점도 문제다. 실제로 이날 방송분에선 '발기'와 '생리'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담은 영상을 내보냈는데,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은 이 둘에 대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영상에 등장한 남학생들은 발기에 대해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자다 알어나면 그렇게 돼 있다", "점심 먹기 전에 잠시 잘 때가 있는데, 자고 일어나면 그렇게 돼 있어서 점심 먹으러 뛰어가지도 못한다", "여학생들이 오해할까 난감하다"고 밝혔다. 이에 여학생들은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게 올라올까", "흥분이 될 때 그렇게 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아니라는 걸 듣고 놀랐다"고 말했다.

또 남학생들은 '생리'가 가져다주는 고통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방송에선 중학교 한 보건교사가 겪은 일이 소개되기도 했는데, 보건교사는 "'한 남학생은 TV광고에서 생리대가 파란 액체를 흡수하는 장면을 보고 생리혈이 파란색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 했다. 또 여학생들은 생리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걸 주저했다. 여학생들은 교실에서 생리 때문에 화장실에 가야한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잘못된 성 지식을 가진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고통 받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의 몸의 변화를 감지했을 때, 대화 시도나 성교육 대신에 그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게끔 한다. 그리고 많은 교사들은 학생들의 잘못된 성인식을 올바르게 바로잡기보다는 방치하거나 심지어는 부추긴다. 비단 부모와 교사만의 문제일까? 부모와 교사가 아닌 다른 어른들도 일상생활에서 젠더감수성이 결여된 잘못된 발언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손경이 강사는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유연한 인식을 지닌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교육의 부재 속에서 자라나 '어쩌다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도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번, 세 번 동의하는 바다. 더 많은 '어쩌다 어른'들이 자발적으로 성교육을 받고 자신을 되돌아봤으면 한다.

2주 동안 방송된 <어쩌다 어른> 손경이 강사 편은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성은 뭔지, 성교육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알려주는 좋은 거름이 될 것이다. 혹여 방송을 놓친 사람들이 있다면 자신과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꼭 보길 바란다.

어쩌다어른 손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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