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협동조합에서 만든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 중 작가들이 회의하는 장면

시트콤 협동조합에서 만든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 중 작가들이 회의하는 장면 ⓒ 시트콤 협동조합


대학생 때 우연히 한 방송작가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습니다.

'방송작가란 세상을 향해 발화하는 사람. 
세상을 향해 글과 행동으로 말하는 사람.'

세상 속 숨은 이야기를 조명하고 영상과 글로 멋지게 풀어내는 다큐멘터리. 사회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는,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한 방송작가의 소회가 담긴 글이었습니다.

TV를 틀면 나오는 수많은 방송들, 그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질 수도 있단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되었죠. 그리고 그런 방송을 만든다는 것이 참 의미 있고 멋진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저는 방송작가라는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여하는 방송작가

그러다 대학을 졸업한 저는 한 지상파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막내작가로 일하게 됩니다. 너무나 바라던 일이었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왔던 오랜 역사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일할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았죠. 전화로 합격 통보를 받고 다음 날 바로 출근하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 출근을 한 날은 5월 1일, 노동자라면 마땅히 쉬어야 할 그 날에 저는 첫 출근을 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간 방송국. 자리는 텅텅 비어있었고 몇 사람만 드문드문 앉아 있었습니다. 출근했던 사람은 모두 프리랜서인 작가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인수인계를 받고 다음 날이 돼서야 저는 팀원들을 소개 받고 제대로 된 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한 팀이 된 메인 작가와 메인 피디, 조연출 그리고 저, 이렇게 넷이서 첫 회의를 했고 회의를 주도한 것은 메인 작가였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카리스마가 넘쳤고 입만 열면 멋진 아이디어가 술술 나오는 메인 작가를 보면서 이 곳에 있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워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출근시간은 오전 10시로 정해져 있지만 퇴근시간은 정해지지 않는, 여느 막내작가와 마찬가지인 하루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잡다한 일들 때문에 저녁시간을 훌쩍 넘겨 퇴근하는 것은 예사였지요. 그런데 밤 늦도록 사무실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저와 같은 막내작가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방송작가는 고상하게 원고만 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 프로그램에서 작가는 아이템을 찾고, 그에 맞는 보고용 기획안을 쓰고, 사례자를 섭외하고, 피디들이 촬영 때 가지고 나갈 촬영구성안(촬영해야 할 것들과 질문지가 담긴 촬영 족보)을 작성합니다. 그리고 피디들은 작가가 써 주는 질문지와 촬영구성안을 가지고 촬영을 나갑니다.

작가들은 피디들이 촬영을 갔다 오면 촬영한 영상들을 전부 다 봐야 합니다. 그래야 다큐멘터리 구성을 할 수 있으니까요. 촬영이 끝나면 편집구성안(영상 편집을 위해 촬영본을 정리한 편집 족보)을 정리합니다. 그것을 토대로 피디는 편집을 하고, 이후 여러 수정을 거친 편집 영상의 더빙 내레이션을 완성하는 것으로 작가의 대략적인 업무는 끝이 납니다. 이렇게 방송작가는 프로그램의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일들을 관여하고 담당하지요.

이 모든 것을 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기에 작가들은 언제나 밤 늦게까지, 주말 없이 일하는 것이 당연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언제나 바쁘게, 정신없이 일하는 것이 방송작가의 프로정신이라고 생각했고 저 또한 그런 선배를 밤낮, 주말 없이 도우면서 나름대로의 보람을 느꼈습니다.

작가들의 업무는 대가 없는 노동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방송이 특집 프로그램에 한 주 밀리게 되자 선배는 납기일에 맞춰 내야 할 대출금을 걱정했습니다. 그제야 저는 메인 작가들이 편당 페이를, 그것도 방송이 다 나간 후에야 지급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프로그램을 준비해오다가 방송이 되지 않으면 아예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작가들이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방송작가는 월급이 아닌 방송 편당 페이를 지급받고, 심지어 프로그램을 준비해오다가 방송이 되지 않으면 아예 그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부당한 처지에 놓일 때도 있었습니다. 일은 똑같이 했는데 단지 방송이 죽었다는 이유로 임금이 지급되지 않고, 방송이 미뤄진 만큼 무급 노동을 하게 되는 것은 방송계의 오랜 관행이라고 했습니다.

선배는 '원래 이 방송바닥이 그렇지만 네가 메인 작가가 될 때쯤이면 이 관행들도 바뀔지 모르겠다'는 이야길 했습니다. 참 시대착오적인 관행... 막연히 '내가 메인 작가가 될 즈음에는 당연히 바뀌겠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 12시간 근무는 예사... 왜 이렇게 일해야 할까

시간이 흘러 저는 직접 구성을 짜고 원고를 쓰는 서브작가가 되었습니다. 이젠 조금 살만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죠. 하지만 착각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에서는 방송 특성상 일주일에 꼭 한 번은 날을 꼴딱 새워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평상시에도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하는 것은 예사였죠. 제가 일하는 시간을 시급으로 계산해보니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이후 옮겨간 프로그램도 마찬가지. 특집 다큐멘터리를 위해 3주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하루에 몇 시간 겨우 자고 출근하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예민해지고 과중한 업무로 스트레스가 쌓여 폭발 직전까지 가는 아슬아슬한 날들, 말 그대로 하루 하루 버텨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할까 수차례 고민 했지만 혼자서는 답을 낼 수 없었습니다.

故박환성, 故김광일 피디 사망 사건 남아공에서 두 독립피디가 촬영 중 사고로 사망했다.

▲ 故박환성, 故김광일 피디 사망 사건 남아공에서 두 독립피디가 촬영 중 사고로 사망했다. ⓒ 한국독립PD협회


그러던 중 방송계에서는 스태프들이 과로로 쓰러지고, 사고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최근 한 드라마 스태프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쓰러진 뒤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기사를 본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당장 오늘 제가 그렇게 쓰러진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희망을 보여주는 방송을 만들고 있는 나.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프리랜서라는 허울 좋은 말로 저임금에 초장시간 노동을 스스로 감내하며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정작 나 자신은 돌아보지 못했구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왔습니다.

작가는 '엄마'같은 존재다?

몇 년 전, 아는 선배가 참여했던 한 다큐멘터리가 정부기관에서 주는 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다큐멘터리는 (모든 작가가 그러하듯이) 작가가 사전 취재를 하고, 사례자를 섭외했고, 다큐멘터리의 편집 구성을 짜고 마지막 내레이션 원고 작성까지 끝마친, 제작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참여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상은 PD에게만 돌아갔습니다. PD들은 몇 백만 원이나 되는 상금을 작가와 나누지도 않았습니다. 수상 기념 회식자리에서 수상소감을 이야기 한 것도 피디뿐이었고요. 회식 자리에서도 뒤로 밀려난 선배님께 따로 축하 인사를 드리고 난 뒤에도 마음은 계속 찝찝했습니다.

방송사의 연말 방송대상 시상식이나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상 외에, 프로그램에 주는 상은 모두 PD에게 주어집니다. 프로그램의 제작 주체가 PD라는 인식 때문인 듯합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합니다.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에는 피디와 작가, 둘이 한 세트가 되고 간혹 작가가 피디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그런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이 빛을 받을 때, 언제나 작가의 존재는 뒤로 사라집니다.

한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한 가정에서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엄마. 방송작가라는 직군의 여성성 때문일까요(실제로 방송작가의 94.6%는 여성입니다). 작가들의 노동은 방송 전반에 영향을 주지만 마치 엄마의 가사노동처럼, 그 노력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는 듯합니다. 집 안에서 귀찮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엄마를 부르면 대체로 해결이 됩니다. 하지만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어떤 일들을 어떻게 해 왔는지, 우리는 그동안 관심을 갖지 못했죠.

때로는 방송을 위해 작가들이 하는 자료조사와 사전취재, 촬영과 편집을 위한 수많은 구성안들이 작가들의 전문적인 능력으로 만들어진 작업물이라는 인식보다는 영상을 위한 보조적인 역할로 치부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 작업들이 없다면 방송은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을 거예요. 마치 한 가정이 굴러가기까지 어머니의 역할은 필수적이고 엄청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죠.

작가들의 목소리로 만들어 낼 놀라운 변화들

방송작가유니온 대전충청지회 출범식 방송작가유니온의 두 번째 지역 지회인 대전충청지회가 출범했다.

▲ 방송작가유니온 대전충청지회 출범식 방송작가유니온의 두 번째 지역 지회인 대전충청지회가 출범했다. ⓒ 방송작가유니온


선배가 저에게 했던 말이 종종 떠올랐습니다. 진정 내가 메인 작가가 될 때 쯤이면 이 이상한 관행들이 없어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수차례 하던 중에 방송작가들의 노조가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저도 용기를 내 가입했어요. 세상을 향해 이야기하는 스피커 같은 방송작가들이 모여 함께 우리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 해 보기로 한 겁니다.

이 비정상적인 관행들이 사라진다는 것,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자조했었습니다. 그런데 노조가 생긴 뒤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난 뒤, 제 생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방송국에서 작가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기 시작했고, 방송국에서 작가들의 처우에 관심을 갖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거든요. 작가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생긴 놀라운 변화들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막 시작된 작가들의 자기 고백에 힘입어 많은 것들이 변화할 차례예요. 앞으로의 변화로 작가들의 비정상적인 노동 환경이 개선되고, 작가들이 더 이상 '을'이 아닌 방송을 만드는 당당한 주체로 우뚝 서게 되길 기대합니다. 그리고 함께하는 많은 작가들이 있기에, 그 날이 좀 더 빨리 오게 될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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