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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봄이 올 것 같지 않았던 지난겨울이었다. 절기상으로 입춘을 보낸 2월 초순, 제주도는 오랜만의 폭설로 기상이변 상황을 맞고 있었다. 하얀 눈의 나라가 된 제주도였다. 비행기가 수시로 결항되는 어려움을 뚫고 10여명의 음악인들이 4.3기행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어렵게 시작된 1박2일간의 기행. 제주4.3항쟁 70주년 범국민추진위원회 문예위원회(위원장 배인석)에서 주관하는 「제주 4.3 70년만의 편지 - 서울에서 띄우는 노래」 팀이었다. 그들에게 제주도행은 여행이 아니었다.

국가에 의해 반 이상의 제주도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던 4.3의 비극적인 유적지를 돌아보는 아픈 길이었고 그 역사적 아픔과 기록들을 노래로 만들고 불러야 했다. 너무나 끔찍해서 인간의 본심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는 현장에서 당시의 상황을 그려 봐야한다는 사실, 그 느낌과 마음을 노래로 만들어야 하는 창작의 고통이 기행에 참여한 창작자들의 표정에서 내내 새어나왔다.  
4.3의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  4.3평화공원 기념관에 쓰여진 문구. 항쟁 당시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 4.3의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 4.3평화공원 기념관에 쓰여진 문구. 항쟁 당시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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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이 시작된 관덕정을 시작으로 쌓인 눈을 뚫고 갔던 4.3평화공원, 토벌대에 의해 5백여 명의 주민들이 학살된 북촌리 너븐숭이 4.3공원, 현기영작가의 소설 '순이삼촌' 문학비, 총탄에 맞아 턱이 사라져 평생을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살았던 진아영할머니 생가, 섯알오름에서 학살된 132명 유해가 모셔진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 그리고 알뜨르 비행장과 섯알오름 학살터까지 1박 2일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했고 한 달여의 창작 작업을 거쳐 지난 3월 말, 음반으로 발매됐다.

김성민, 류금신, 문진오, 손병휘, 안석희, 연영석, 우리나라, 이씬, 이수진, 임정득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문제를 노래해온 10팀의 민중가요 뮤지션들이 참여한 4.3 사건 창작곡 컴필레이션 음반은 이렇게 세상에 나왔다.

꾸준하게 민주와 평화를 노래해온 이들에게 70주년을 맞은 4.3항쟁은 남다른 의미가 있었으리라. 자신들의 목소리로 4.3을 되새겨보고 지금 이 시대 4.3이 주는 의미를 노래에 담고자 했고 직접 제주로 내려가 참혹하지만 꼭 봐야할 유적지를 둘러보고 유족들에게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제로부터 처마마저 잘린 관덕정의 울음을 귀에 담고 4.3의 역사와 4.3항쟁 희생자들의 위패가 모셔진 4.3평화공원에서 전시와 기록물을 보며 끔찍한 진실을 새겼다. 제주도에서 가장 피해가 많았던 마을 북촌리. 함덕에 주둔했던 2,3연대 군인들에 의해 집단 학살됐던 너븐숭이와 제주 4.3을 세상에 드러낸 최초의 문학작품인 '순이삼촌' 문학비에서 좌우 이념으로 희생된 북촌마을의 슬픈 영혼들을 만났다.

4.3희생자 유족으로부터 들은 서북청년단의 학살이야기를 통해 과연 당시 제주도민에게 국가는 어떤 존재였고 어떤 위치였던가? 국가의 이름으로 특정지역 국민들을 이처럼 무참히 살육할 수 있는가? 아픔 역사를 들춰낼 때마다 들었던 물음들을 다시 되물었다.

총탄에 맞아 평생을 슬픔과 한으로 살았던 무명천할머니로 불리는 진아영할머니의 옷가지와 무명천이 제주의 풀꽃들처럼 흔들리는 걸 보았고, 섯알오름에서 학살된 132명 유해가 모셔진 '백할아버지 한 자손'이라는 뜻의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 흰 눈에 피처럼 뚝뚝 떨어져 있는 붉은 애기동백에게 미안한 미소를 보냈다.
3만의 제주도민이 학살됐다  제주도민의 3분의 1이 학살된 제주4.3항쟁은 한국판 홀로코스트자 제노사이드다.
▲ 3만의 제주도민이 학살됐다 제주도민의 3분의 1이 학살된 제주4.3항쟁은 한국판 홀로코스트자 제노사이드다.
ⓒ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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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 비행장을 지나 희생자 추모비 아래 검정고무신이 슬퍼 보이는 만벵듸영령 희생터에서는 그간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예비검속자들의 학살 현장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집단학살 당시 철근 뼈대에 사람들의 몸이 여기저기 박혀있었다는 참혹한 현장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그야말로 '이것이 인간인가' 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되는 가장 잔악한 짓들을 했고 제주도민들은 너무도 처참하게 희생됐다는 것을. 이 역사가 얼마나 오랫동안 묻혀있었는지. 위정자들의 정권야욕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희생됐는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다들 묵언하듯 말들을 아끼며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4.3 희생자들에게 편지를 쓰듯 가사를 쓰고 노래를 만들었다. 10곡이 들어 있는 <제주 4.3 70년만의 편지 - 서울에서 띄우는 노래>는 4.3항쟁 70주년 추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씀처럼 '4.3을 기억하는 일이 금기였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시 되었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 넣어 망각에서 우리를 일깨워 주었던' 예술이 있었듯이 이제는 4.3의 노래가 유족들의 한을 어루만지는 치유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각자 담아냈다.

순이삼촌 문학비를 둘러보는 뮤지션들  4.3항쟁을 세상에 알린 소설 '순이삼촌' 문학비. 현기영작가는 이 소설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 뮤지션들이 너븐숭이공원에 있는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순이삼촌 문학비를 둘러보는 뮤지션들 4.3항쟁을 세상에 알린 소설 '순이삼촌' 문학비. 현기영작가는 이 소설로 많은 고초를 겪었다. 뮤지션들이 너븐숭이공원에 있는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권미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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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띄우는 노래 편지

이번 음반작업은 '노래하는 나들'이 이끌었는데 민중가요 록밴드 천지인의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청계천 8가>를 비롯한 명곡들을 만들었던 김성민씨는 희생되신 분들의 제사를 일컫는 말인 '가매기 모른 식게'라는 노래를 작사 작곡했다.

1980년대 말 노동자노래단 이후부터 계속 노동현장을 지키고 있는 베테랑 보컬리스트 류금신씨는 김경훈시인의 시에 문진오씨가 곡을 붙인 '그대는 분노로 오시라'를 불렀으며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활동하다 솔로로 데뷔해 5장의 정규 음반을 내놓은 포크 싱어송라이터 문진오씨는 변종태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제주섬, 동백꽃, 지다'를 만들고 불렀다.

반미, 자주통일을 노래하는 노래패로 민중가요 노래패의 계보를 이으며 광화문의 촛불을 지켰던 노래패 '우리나라'는 멤버인 백자가 글과 곡을 쓴 '아이야'를 만들었다. 이 곡에는 '제주 4.3항쟁 희생자 변병생 모녀의 조각상을 보고'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서울 민중가수들이 띄우는 노래 음반 자켓  제주도를 다녀온 후 10명의 가수들이 노래를 만들었다. '노래하는 나들'이 제작한 이번 음반은 광화문에서 열리는 4.3항쟁 추모문화제에서 무료로 나눠준다.
▲ 서울 민중가수들이 띄우는 노래 음반 자켓 제주도를 다녀온 후 10명의 가수들이 노래를 만들었다. '노래하는 나들'이 제작한 이번 음반은 광화문에서 열리는 4.3항쟁 추모문화제에서 무료로 나눠준다.
ⓒ 노래하는 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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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 있는 시선과 목소리로 신자유주의 시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가수 연영석씨는 무명천할머니를 담은 '내 이름 진아영'을 노래에 담았으며 록과 포크를 아우르며 꾸준히 청계천 전태일 동상 앞에서 공연하는 뮤지션 이씬은 제주4.3으로 집터만 남은 채 사라져버린 마을들인 곤을동, 다랑쉬마을 등을 담은 '잃어버린 마을'을 만들었다.

서정가요와 록 등의 음악 어법으로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민중가수 임정득씨는 4.3의 아픔이 치유되기를 바라며 '기억의 방향'을 만들고 불렀으며, 서총련노래단과 노래마을 출신으로 촛불이 있는 곳에 늘 다정한 노래를 더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손병휘씨는 여전히 4.3의 슬픔을 안고 있는 제주도의 아픔을 외친 '붉은 섬'을 쓰고 불렀다.

노래패 아름다운 청년에서 활동하다 솔로로 독립한 후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가수 이수진씨는 '제주 4.3의 정명을 기원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며'라는 부제를 달은 '이름을'을 만들고 불렀으며, 꽃다지와 유정고밴드 등에서 활동하면서 명곡 <바위처럼>과 <장산곶매> 등으로 민중가요의 변화를 이끈 주역 안석희씨는 편안해지기를 바라며 '남쪽엔 봄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들려준다.

2000년대 이후 민중가요를 일구어가는 싱어송라이터들인 만큼 기존 민중가요 어법과는 다른 다양한 음악을 펼쳐놓은 이번 음반은 비매품으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추모행사 부스에서 배포되며 4월 3일에 이어 6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릴 공식 추모 무대에서 음반에 참여한 가수들이 직접 노래를 부른다. 4월 7일 열리는 서울추모식에서도 일부 가수가 참여해 이번 음반에 실린 노래를 불러준다.  
제주4.3항쟁 서울 추모문화제  서울 광화문에서 4월 3일부터 4월 7일까지 열리는 제주4.3항쟁 국민문화제
▲ 제주4.3항쟁 서울 추모문화제 서울 광화문에서 4월 3일부터 4월 7일까지 열리는 제주4.3항쟁 국민문화제
ⓒ 제주4.3범국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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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문학뉴스'에도 게재됨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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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의 최신기사 '동주'를 통해 나를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