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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제58주년 제주4.3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해 묵념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과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8년 4월3일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2006년 제58주년 제주4.3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해 묵념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과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8년 4월3일 제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추념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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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위령제단을 향해 천천히 걸어나갔다. 제단 앞에 이른 대통령이 조화를 바친다. 그리고 영령들을 향해 깊이 고개 숙여 절을 올린다. 한껏 예를 갖춰 분향하고 다시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나서는 추념사를 통해 국가 공권력에 의한 4.3희생에 대해 사과를 한다. 대통령의 움직임을 꼼짝도 하지 않고 지켜보던 유족들 눈에는 눈물이 고이고, 가슴에 맺혀있던 한(恨)과 응어리는 녹아내린다. 유족들은 박수로 고마움을 전했다.

2006년 4월3일 4.3평화공원을 찾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12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장소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는 말 그대로 닮은꼴이었다.

국가원수로서 4.3추념식(위령제)에 참석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민주정부에서 보수정부로 바뀐 이후 대통령의 발길은 뚝 끊겼다. 민주정부를 계승한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4.3추념식 참석을 부활시킨 셈이다.

그렇지만 형식적으로는 훨씬 더 파격적이었고, 내용 면에서도 훨씬 더 진전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4.3위령제 참석은 취임(2003년) 후 3년이 지난 후에야 성사됐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기간에 4.3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재조사 및 명예회복을 약속했지만, 위령제 참석 약속은 탄핵 등의 정치적 상황으로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 대신 4.3에 대한 실체적 진상규명 작업과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위령공원 조성 등 정부 차원의 지원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03년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가 의결됐고, 그해 열린 제주평화포럼에 참석해 4.3과 관련해 국정책임자로서 국가공권력의 잘못에 대해 공식 사과함으로써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 중 하나인 4.3사건의 매듭을 푸는 전기를 마련했다.

문 대통령의 추념식 참석은 이에 비하면 '속전속결'로 이뤄진 측면이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기간 중 유족들을 만난 자리에서 '70주년 추념식' 참석을 약속한데 이어 올 초 <순이삼촌>의 저자 소설가 현기영과의 전화통화에서 다시 한번 추념식 참석을 확약했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문 대통령은 또 이전 VIP들과는 동선부터 파격적이었다. 이날 4.3평화공원을 찾은 문 대통령은 행방불명인 표석에 참배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그 동안 '빨갱이 딱지'가 붙어졌던 수형인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그 유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건넸다.

문 대통령은 또 보안 대신 '스킨십'을 택했다. 노 전 대통령 방문 당시에는 보안 때문에 사전 비표를 받은 유족 4000명만 입장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한 일부 유족들이 항의하고,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사실상 비표 없이 검색대 통과만으로 추념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 추념식이 끝난 뒤 문 대통령은 악수하고, 사진을 같이 찍는 등 유족들 곁으로 훨씬 더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내용 면에서도 훨씬 진전됐다.

12년 전 노 전 대통령이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들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포괄적(?) 사과를 했다면, 문 대통령은 행불인 희생자 표석을 찾아 70년간 '전과자 가족'이라는 왜곡 속에 웅크렸던 유족들의 가슴과 어깨를 활짝 펴게 했다.

과거 노 전 대통령은 과거사 정리와 관련해 '진상규명→사과․반성→배․보상→용서․화해'라는 4단계 해법을 제시했고, 2단계까지는 직접 실천에 옮겼다.

문 대통령은 이날 추념사를 통해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배․보상'을 약속함으로써 진정한 용서와 화해라는 완전해결로 가기 위한 고개를 하나 더 넘었다.

또 김대중(4.3특별법 제정), 노무현(진상조사보고서, 공식사과) 두 대통령이 쌓은 진상규명의 토대 위에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다며 한발 더 나갔다.

추념식이 끝난 뒤 유족들을 초청해 오찬을 하면서 거듭 위로하고, 용서를 통한 화해와 상생의 길로 나아가자고 당부한 뒤 제주를 떠난 것 역시 두 대통령은 무척이나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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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제주4.3, #문재인,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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