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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정의' 원내대표로 참석한 노회찬 2일 공식 출범한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노회찬 원내대표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원내대표단 정례회동에 참석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인사하고 있다.
▲ '평화와 정의' 원내대표로 참석한 노회찬 2일 공식 출범한 '평화와 정의의 의원모임' 노회찬 원내대표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원내대표단 정례회동에 참석해 정세균 국회의장과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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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의당 보좌관이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한 이래 줄곧 진보정당 소속 의원실에서 일했다. 보좌관 생활을 시작한 지 14년 만에 마침내 '교섭단체' 보좌관이 됐다.

공동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한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은 지난 2일 '평화와 정의의 의원 모임(약칭 평화와 정의)'이라는 명칭으로 국회 등록을 마쳤다. 합의에 따라 공동교섭단체의 첫 번째 대표는 정의당 원내대표(현재 노회찬 의원)가 맡게 된다. 그동안 정당 간 논의에서 교섭단체가 아니면 끼지 말라며 정의당을 배제해온 일부 야당의 주장은 이제 소용없게 됐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다른 당 보좌관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도 상임위 일정과 안건을 미리 알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단순히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낼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그럴 수 없었다. 국회는 '교섭단체의 국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법'은 국회 운영에서 교섭단체의 막강한 권한을 보장하고 있다.

절교 수준 쌈박질 해도, 교섭단체간 '전격 합의'에 이르면...

연간 국회운영 기본일정부터 교섭단체 대표의원들이 정한다. 상임위원회, 특별위원회 구성 권한도 갖고 있다. 교섭단체만이 상임위원회, 특별위원회 간사를 둘 수 있으며 의사일정, 안건, 질의시간, 증인 선정 등 국회운영과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을 간사 간 협의로 결정한다.

원래 교섭단체의 목적은 '의원들의 의사를 사전에 통합·조정하여 정파 간 교섭의 창구역할을 하도록 함으로써 국회의 의사를 원활하게 운영'하는 데 있다. 하지만 실질적 권한은 목적을 능가한다.

정당 간 갈등이 극심한 시기일수록 상임위 일정은 불투명한데, 서로 다시는 마주 앉지 않을 것처럼 격렬히 대립하다가도 교섭단체간 '전격적 합의'에 이르면 다음날 갑자기 상임위가 열리기도 한다.

갈등부터 합의까지 이는 오로지 교섭단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인지라 소수당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당일에 상임위 전체회의 개최를 통보받은 적도 있다. 마치 시민권이 박탈된 시민처럼 비교섭단체는 국회 운영상 보이지 않는 존재였고, 기본적인 국회 운영 정보조차도 인맥을 통한 비공식 경로로 제공받을 수밖에 없었다. 의사결정 구조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은 '찬성과 반대'의 선택권 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수의 찬성과 반대는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원식·김성태의 '연설' 그리고 노회찬의 '발언'

국회,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 정세균 국회의장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열린 본회의에서 정부조직법 개정안 가결을 선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재적 221인 중 찬성 182인, 반대 5인, 기권 34인으로 가결됐다.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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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당은 선거를 통해 원내에 진출했으나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배제됐다. 다수당은 교섭단체를 구성함으로 인해 선거에서 부여받은 대표성보다 국회 안에서 훨씬 더 높게 대표된다. 선거제도로 왜곡된 유권자의 선호는 교섭단체 제도로 한 층 더 불평등해진다.

교섭단체가 되지 못한 정당은 발언권도 제한된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소속정당 또는 교섭단체를 대표해 행하는 연설로 40분까지 발언할 수 있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매년 첫 번째 임시회와 정기회에서 각각 한 번씩, 전·후반기 원 구성을 위한 임시회,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합의를 하는 경우에는 추가로 한 번씩 실시할 수 있다.

비교섭단체 대표는 똑같이 정당을 대표함에도 연설은 못한다. '발언'만 가능하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모든 국무위원을 출석시키고 시간도 40분인데 비해 비교섭단체 대표 '발언'은 모든 국무위원이 출석하지 않고, 시간도 15분으로 제한돼 있다. 교섭단체 구성 여부에 따라 정당의 정책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달라지는 것이다.

교섭단체는 정책연구위원도 별도로 둘 수 있다. 1급 내지 4급 상당의 67인이 교섭단체 소속의원의 입법 활동을 보좌한다. 이들은 상임위원회마다 별도로 배정돼 있어 입법, 예산심사는 물론 국정감사와 현안 등에 대해 당의 입장에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다.

상임위원회 회의장에 자리도 따로 있는데 볼 때마다 부러웠다. 내가 속한 의원실이 항상 일이 많았던 것은 다른 당에는 있는 정책 전문 인력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교섭단체에게만 배정될 인력이 아니다. 정당에 소속된 정책연구위원이 더 많아진다면 정당의 정책 전문성도 높아질 것이다. 교섭단체 구성 여부와 상관없이 의석수를 기준으로 배정하는 것이 공평하다. 나아가 원내 진출 정당에게 기본 인원을 배정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교섭단체에게만 주어지는 중요한 권한 중 하나는 '정보위원회'다. 국가정보원 소관에 속하는 사항을 다루는 정보위원회는 '교섭단체 소속 의원'만 위원이 될 수 있다. 정보위원회는 원칙적으로 비공개로 진행하고, 의원과 보좌관들은 직무수행 상 알게 된 국가기밀에 속하는 사항을 공개하거나 타인에게 누설하여서는 안 된다고 국회법 상 엄격하게 규정돼 있기에 그동안 비교섭단체는 어떠한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다. 그야말로 있으나 없는 존재였다.

'민주주의 암흑기' 때 정해진 기준이 현재까지

이와 같은 교섭단체의 권한은 누가, 언제, 어떻게 정한 것일까?

국회법 상 교섭단체는 '20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과 '다른 교섭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20인 이상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교섭단체 구성 요건 '20인 이상의 국회의원'이라는 기준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제헌의회에서는 교섭단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수당의 횡포와 파당적 운영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제헌의회 4회기에 신설된 20인 구성요건은 1963년 6대 국회에 이르러 오히려 10인으로 완화됐다. 다시 20인 이상으로 늘어난 것은 유신 직후인 1973년 2월, '국회법' 전부개정을 통해서다. 국정감사를 없애고, 국회의원 1/3을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도록 하며,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 국회 해산권, 법관 임면권을 부여하여 삼권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보장했던 '민주주의의 암흑기'에 정해진 기준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제도가 변하였지만 교섭단체 기준만은 마치 절대 바뀔 수 없는 고정불변의 제도처럼 운영돼 왔다.

소수당도 다수당과 똑같이 정당의 정치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의석이 적은 정당일지라도 그에 따른 책임과 역할이 있다.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부여한 권한이 교섭단체 구성 여부에 따라 차별될 수 없다. 게다가 교섭단체 구성 요건은 나라마다 다르다. 1석을 기준으로 하는 나라도 있고, 의석의 5%를 하한선으로 하는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의 의석수 대비 교섭단체 구성 기준(6.7%)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교섭단체 요건을 대폭 완화하여 목적대로 국회를 원활하게 운영하는 단체로만 기능하게 해야 한다. 다양한 정당의 활동이 의회 내에서 공평하게 보장되어야 정치에서 다원주의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고, 이럴 때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온전한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섭단체가 '만능 열쇠'는 아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 심상정 의원이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노회찬 원내대표, 심상정 의원이 지난 3월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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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0석으로 시작했던 17대 국회 시절에는 선거를 한 번만 더 치르면 우리도 '20인 이상 소속 의원을 가진' 교섭단체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18대 국회에서 진보정당의 의석은 5석으로 줄었다. 원내 첫 진출이라는 프리미엄은 눈 녹 듯 사라졌고, 보수정당이 집권한 가운데 19, 20대 의석도 대동소이했다.

'소수정당'이 우리 당의 다른 명칭이 될까 두려운 시간이 흘렀다. 오랜 시간 교섭단체 보좌관이 되기를 꿈꿨고, 드디어 '꿈'이 실현됐다. 자력으로 교섭단체가 됐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교섭단체는 만능 해결의 열쇠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지향점이 '다른' 정당과 공동 행보를 해야 한다. 갈등이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정치에서 그런 경우는 없다. 갈등 해결 능력이 정치적 실력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무엇보다 주어진 의제에 '반응하는 정당' 역할은 끝났다.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의제를 주도해야 한다. 더 이상 '비교섭단체라서'가 변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진보정당에게 '가리워진 길'이 열렸다. 성큼성큼 가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선민씨는 윤소하 정의당 의원 보좌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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