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11명이 함께 만들어가는 스포츠다.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경기장 안에서 혼자서 모든 걸 할 수는 없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축구는 결국 모든 선수가 각자의 역할을 함께 해내야 하는 팀 스포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이끄는 '에이스'의 가치는 높다. 흔히 프로축구 선수들 간 실력 차이를 '종이 한 장'으로 표현하지만, 그 '차이'를 지배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런 선수들을 우리는 '에이스'라 부른다.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실수 없이 실력을 발휘하는 선수에게 팬들은 전율을 느낀다.

어떤 경기에서든 에이스의 활약 여부는 중요하다. 그 무대가 월드컵이라면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다. 월드컵은 4년에 한 번씩만 개최되고 축구판에 있어서 가장 권위있는 대회인 만큼 경기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때문에 스타 플레이어도 월드컵에서는 실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 위해서는 극한의 압박감을 뚫어낼 선수가 팀에 필요하다. 뛰어난 실력과 고도의 집중력으로 조국에 월드컵 챔피언의 자리를 선사하고자 하는 우승후보국의 에이스들을 알아보자.

스포츠 종주국은 해당 종목에서 대부분 세계 최정상급의 실력을 뽐낸다. 한국의 태권도, 미국의 농구 등이 좋은 예다. 근대 축구의 발상지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세계 3대 리그 중 하나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축구의 규칙을 정하는 국제 축구 평의회에 반드시 영국 연합에 속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축구의 대표자가 각각 한 명씩 포함되어야 할 정도로 축구 내외적으로 영국의 힘은 막강하다.

하지만 순수한 실력 측면에서 영국 축구는 오랜 기간 조롱을 면치 못하고 있다. 196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잉글랜드가 우승한 경험을 끝으로 지난 52년간 월드컵에서 고전 중이다. 우승 이후 잉글랜드가 참가한 아홉 번의 월드컵 본선에서 최고 기록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준결승 진출이 최고 성적이다. 유럽 선수권 대회(유로)에서는 단 한 번의 우승도 기록하지 못했다. '삼사자 군단(잉글랜드 대표팀 애칭)'은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런던을 휩쓴 돌풍 해리 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핫스퍼의 해리 케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핫스퍼의 해리 케인 ⓒ 토트넘


잉글랜드는 2001년 마이클 오언이 발롱도르를 수상한 이후 '월드 클래스' 공격수를 배출하는 데 애를 먹었다. 리버풀에서 정상에 섰던 오언은 레알 마드리드 입단 이후 급격히 추락하면서 대표팀에서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유로 2004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했던 웨인 루니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전설이 됐지만, 월드컵에서는 1골을 넣는 데 그치며 지난해 쓸쓸히 대표팀에서 물러났다. 위력적인 자국 공격수의 부재로 EPL의 득점왕 자리는 오랜 기간 외국인 선수의 차지였다.

그렇지 않아도 확실한 골잡이가 없어 골머리를 앓던 잉글랜드는 데이비드 베컴, 스티븐 제라드 등의 거물급 미드필더들이 은퇴 및 기량 저하를 겪자 빠르게 침몰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는 조별리그 꼴찌로 탈락했다. 잉글랜드의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탈락은 56년 만에 발생한 참사였다.

희망이 없어 보였던 잉글랜드 대표팀에 한줄기 빛이 비추기 시작한 시점은 2014년 말이다. 북런던에서 발생한 작은 돌풍이 순식간에 '허리케인'으로 성장했다. 토트넘 홋스퍼의 공격수 해리 케인의 이야기다. 토트넘 유소년 선수 출신의 케인은 선수 커리어 초반 하부리그 팀 임대를 전전하며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밀월FC 소속으로 2부리그에서 넣은 7골이 최고의 성적이었다.

2013-2014 시즌 토트넘 1군 소속으로 본격적으로 팀에 합류한 케인은 두 번째 시즌 만에 잉글랜드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2014-2015 시즌 초반 로베르토 솔다도 등에게 밀려 교체로 주로 활약했던 케인은 솔다도의 부진을 틈타 기량을 뽐내면서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2014년 12월까지 각종 대회에서 13골을 넣으며 관심을 받기 시작한 케인은 2015년 1월 리그 선두 첼시를 상대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잉글랜드 차세대 공격수로 급부상했다.

첼시전을 기점으로 케인은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2014-2015 시즌 리그 21골로 득점 랭킹 2위에 등극한 케인은 다음 시즌에는 25골을 몰아쳐 득점왕이 됐다. 1999-2000 시즌 케빈 필립스 이후 16년 만에 잉글랜드 공격수 EPL 득점왕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상승세를 탄 케인은 2016-2017 시즌 득점 랭킹 최상단에 또 한 번 자리하며 두 시즌 연속 왕좌에 올랐다. 올 시즌은 현재 득점 2위로 24골을 터뜨리며 29골로 선두를 질주 중인 리버풀의 모하메드 살라를 추격하고 있다.

깜짝 우승 후보 잉글랜드

어느덧 케인은 '꿈의 클럽' 레알 마드리드가 강력히 원하는 공격수로 성장했다. EPL 두 시즌 연속 득점왕이자 레알이 원하는 공격수가 된 케인에게 이제 '월드 클래스' 칭호는 아깝지 않다. 전 유럽이 케인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2017년에만 56골을 넣은 케인이기에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잉글랜드의 에이스가 됐다.

그렇다면 케인이 중심이 된 잉글랜드 대표팀은 과연 러시아에서 52년 만에 두 번째 별을 가슴에 새길 수 있을까. 가능성은 높지 않다. 잉글랜드는 월드컵 지역 예선을 비교적 수월하게 통과했지만 소위 '꿀조'에 배정된 영향이 컸다. 러시아 월드컵 정상을 노리는 경쟁 국가에 비하면 인상적인 경기력은 아니었다.

선수단의 면면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케인을 제외하고는 냉정히 '월드 클래스'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있는 선수가 없다. 잉글랜드를 강력한 우승 후보가 아닌 다크호스정도로 분류하는 이유다.

그러나 선수단 면면은 과거보다 부족한 대신 오히려 현재 대표팀이 실속이 있다는 의견이 있어 일말의 희망을 품게 만든다. 잉글랜드의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전방보다는 후방에 팀의 무게를 두면서 경기를 안정적으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잉글랜드 축구 특유의 화끈함은 사라졌지만 팀의 안정성은 대폭 상승했다. 항상 메이저 대회에서 어이없는 수비 실책으로 붕괴하며 거듭 실패했던 잉글랜드에게는 희소식이다.

전통적인 포백 수비 대신 쓰리백으로 성과를 올리고 있다. 존 스톤스를 중심으로 수비시에는 파이브백까지 형성하면서 후방에 두터운 벽을 세우고 빠른 역습으로 승리를 노리는게 근래 잉글랜드의 플레이 패턴이다. 효과가 좋다. 최근 독일-브라질-네덜란드-이탈리아로 이어지는 강팀과의 A매치에서 단 2실점 만 허용했을 정도다.

단단해진 수비와 반대로 공격은 최근 A매치 4경기에서 2골을 넣는데 그쳤다. 제시 린가드, 제이미 바디 등이 분전했지만 한계가 보였다. 월드컵 우승을 위해서는 반드시 골이 필요하다. 빈약한 공격력 때문에 주포 케인의 어깨가 더욱 무겁다.

앞선 상황을 고려했을 때 케인에게 주어진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과거 눈부시던 멤버들에 비해 2% 부족한 대표팀의 현 에이스로서 선배들이 이루지 못한 일. 즉, 월드컵 우승을 해낸다면 그 가치는 배가 될 수 있다. 토트넘과 유사하게 케인 옆에서 지원 사격을 해줄 젊고 패기 넘치는 라힘 스털링, 델리 알리 등도 잉글랜드 공격진에 포진하고 있다. 경험이 아직 적을 뿐 세계 최고가 될 자질의 동료들이 충분히 옆에 존재한다.

케인은 공격수가 갖춰야 할 모든 자질을 지닌 선수다. 힘과 높이를 바탕으로 부드러움이 더해져 수비수 입장에서는 방어가 쉽지 않다. 또한 케인은 공간이 생기면 여지없이 강력한 슈팅을 생산한다. 슈팅의 정확성도 날이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

케인은 부정할 수 없는 현존하는 최고의 '9번'이자, 잉글랜드 축구사에 큰 족적을 남길 거물로 진화 중이다. 월드컵은 케인이 전설적인 공격수가 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반 세기 만에 축구 종가의 위엄을 되찾고 싶어하는 잉글랜드를 케인이 어느 높이까지 올려놓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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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케인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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