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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즘'의 사전적 정의는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국가의 보존과 같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라면,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은 수단을 사용해도 용인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정치와 도덕을 분리해서 본 것이다.

이는 역사 속 위인의 평가에서 잘 드러난다. 조선의 태종과 청의 옹정제는 가족까지 서슴지 않고 숙청하는 등 부도덕한 면을 보였지만,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는 공과 과가 병존한다. 과연 개인의 능력과 도덕성은 분리해서 평가할 수 있는가? 나폴레옹은 근대의 기반을 마련한 영웅인가, 아니면 공화정을 무너뜨린 전쟁광인가?

지난해 말,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에 대한 폭로로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대한민국에도 전파되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고은' 시인이 포함되어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최영미 시인 등 곳곳에서 증언이 속출하고 있지만, 지난 3월 4일 고은은 영국의 출판사를 통해, 이와 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글쓰기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933년 출생한 고은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며, 현재 문학계를 대표하는 원로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시집 <만인보>가 유명하며, '은관문화훈장', '시카다 문학상' 등을 수상하는 등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의 작품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탓에, 고은은 매년 노벨상의 단골 후보로 꼽혀왔다. 즉, 최근 불거진 성추문과는 별개로, 문학적인 재능만큼은 인정할 만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최근 그가 성추문에 휩싸임에 따라, 서울과 수원, 군산 등 각지에서 그에 대한 각종 기념사업이 잇달아 취소되고 있다. 이것은 고은이라는 '인물 개인'에 대한 평가를 철회하는 것이니,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의 창조물인 '작품'에 대해서는 분리해서 평가하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문학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가까이는, 친일행위로 비난받지만 한국 최초의 근대 장편소설 <무정>을 써낸 이광수와 최남선, 그리고 멀리는, 옥사를 통해 동인세력을 몰살시켰으나 <관동별곡>과 같이 가사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정철 등은 우리가 학창시절에 머리가 아프도록 외웠던 인물들이며, 작품들이다. 그것은 그들의 됨됨이와 별개로, 그들의 작품이 '역사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고은 역시 그의 엽색적인 행각과는 별개로 작품은 분리하여 평가해야 한다. 고은의 해외 출판사는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한국에서 이미 지워지고 있는 고은의 문학적 유산과 함께할 것이지만, 의혹이 제기된 잘못들을 용인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즉,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평가하면 된다. 그의 작품이 실은 형편없는 작품이었다면, 고은이라는 이름이 역사에서 지워지듯, 그의 작품 역시 자연스럽게 잊힐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의 작품은 그와 별개로 평가받아야 한다. 굴욕적인 역사를 상징하는 '삼전도비'가 훼손되지 않고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는 '문화재'인 것처럼 말이다.


태그:#미투 운동, #고은, #문학, #정철, #이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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