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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광주 충장로 광주우체국 앞에서 강기정·민형배·최영호 세 후보가 제안한 시민공동정부를 제안하고 있다.
 1일 광주 충장로 광주우체국 앞에서 강기정·민형배·최영호 세 후보가 제안한 시민공동정부를 제안하고 있다.
ⓒ 강기정 후보 페이스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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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만 있는 버스 노선이 있다. '518'번이다. 상무지구에서 아시아문화전당이 있는 금남로를 거쳐 5.18국립묘지로 가는 노선이다.

1980년 5월 당시 상무지구엔 '상무부대'가 있었다. 시민군들은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와 모진 고문을 당했다. 1980년 5월 당시 금남로는 항쟁의 거리였다. 광주시민들이 죽어가면서까지 지킨 금남로와 전남도청은 '민주주의'였다. 1980년 5월 당시 죽은 자들은 망월동에 와 묻혔다. 망월묘역은 결코 마르지 않는 민주주의의 강이 되었다. 518번 버스는 그렇게 '오월광주'를 관통한다.

1일 오후 광주 충장로 광주우체국 앞에서 이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강기정·민형배·최영호 예비후보가 '광주를 바꿀 더 큰 힘, 시민공동정부 선언식'을 한 것이다. 1일 현재까지는 광주에서만 열린 선언식이다.

세 후보는 "광주의 변화는 시장 하나를 바꾸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다"면서 "정당과 의회, 시민세력이 함께 하는 시민공동정부를 구성해 시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겠다"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시민공동정부는 자치분권 시대 광주지방정부의 역동성을 살려내고, 광주성장과 시민행복이라는 공동목표에 헌신하며 5·18정신 구현에 앞장설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오는 3일까지 단일후보를 결정하고, 시민공동정부 구상안도 함께 밝히기로 했다.

차갑게 얘기하자면 세 후보의 선언은 '후보단일화 선언'이다. 단지 그뿐이면 이들은 후보단일화를 이루기 위한 방법과 시기 등만 얘기하면 됐다. 그러나 이들은 "후보단일화가 주 목적이 아니고 시민공동정부 구성이 목표"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들은 시민공동정부를 구성하는 주체로 정당과 의회, 시민세력을 꼽았다. 그리고 "시민공동정부는 5.18정신 구현에 앞장 설 것"이라고 했다. 광역시장 선거에 나선 이들이 시민공동정부 구성을 목표로 단일화에 나선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시민공동정부, 참 매력적인 비전"이라며 "세 후보를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선 이재명 전 성남시장은 "시민공동정부 구성은 역시 광주다운 발상으로 매우 감동적"이라면서 "시민공동정부 구성을 위한 광주 시민사회의 노력과 세 후보의 결정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시민공동정부라는 말을 들으니 5.18때 계엄군을 물리치고 우리 광주시민이 만들었던 일주일 동안의 '해방광주'가 생각나 울컥했다"면서 "후보단일화도 광주가 하면 역시 다르다"고 말했다.

강기정·민형배·최영호 세 후보가 제안한 시민공동정부 선언을 하겠다고 미리 알린 웹 포스터.
 강기정·민형배·최영호 세 후보가 제안한 시민공동정부 선언을 하겠다고 미리 알린 웹 포스터.
ⓒ 강기정·민형배·최영호 후보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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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민형배·최영호 세 후보의 시민공동정부 구성 제안이 각별한 까닭은 '광주'이기 때문이다. 광주시민들은, 광주를 에워싸고 침공의 날만 기다리고 있던 공수부대의 총칼 앞에서도 날마다 금남로 분수대에 둘러앉아 '민주성회'를 열었다. 광주시민들은 민주성회를 통해 시민 스스로 광주를 지키는 규칙과 일정을 만들었다. '해방광주' 일주일 동안 광주는 시민들의 자치 공화국이었다.

이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지난해 '시민정치 페스티벌'이라는 형태로 재현됐다. 시민정치 페스티벌은 각 마을 총회에서 올라온 마을 의제를 시민의제로 채택하고, 정책 실행 주체에게 넘기는 정치 축제다. 물론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정치·정책 축제였고,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다. 역시 광주니까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시민정치 페스티벌이 세 후보에 의해 시민공동정부 구성이라는 단계까지 진화한 것이다. 그동안 광주 시민사회는 진정한 자치분권과 협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민공동정부를 구성하는 데 나가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 첫 매듭이 지어진 것이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세 후보의 정체성이 '광주'와 '5.18'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7명이나 되는 민주당 광주광역시장 경선 후보 가운데 광주와 오월의 정통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후보는 강기정·민형배·최영호 후보와 윤장현 시장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학생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갔거나 죽어가는 시민을 치료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광주를 떠나지 않고 광주에서 줄기차게 진상규명 투쟁을 벌였다. 관료 출신으로 서울에서 성공해서 돌아온 경우와는 전혀 다른 사회정치 경로를 걸은 것이다.

윤장현 시장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광주와 오월 정통성을 얘기할 수 있는 민주당 시장 후보 가운데 '맏형' 격인 윤 시장이, 강기정·민형배·최영호 후보가 먼저 시작한 시민공동정부 구성에 합류할 경우 경선 구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현실이다. 무수한 이익 계산으로 뱀의 혀처럼 능란하게 움직이는 현실 정치 한복판에서 '정신'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낯설게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여기는 광주다. 광주니까 가능했고, 광주니까 가능하다.

강기정·민형배·최영호 세 후보가 제안한 시민공동정부의 정신은 '민주대성회'의 햇불이 활활 타오르던 1980년 5월 광주와 맞닿아 있다. 시민공동정부 구성의 꿈이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광주에서 처음으로 타오르던 민주주의 햇불이 결국 군부독재를 종식시키는 들불이 되었듯, 시민공동정부는 자치분권의 새로운 진화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임에는 분명하다.

정치가 시민을 신물 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정치가 시민을 설레게 하는 경우도 있다. 세 사람의 제안처럼 말이다. 모처럼 광주에 설레기 좋은 봄날이 왔다.


태그:#강기정, #5.18, #민형배, #최영호, #광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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