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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고발한다, 미투
 나도 고발한다,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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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시절, 근처에 사는 대학원생이 경찰에 체포되었다.

한밤에 부부싸움을 하던 중 부인이 경찰에 전화를 했고, 곧 경찰관 두 명이 현장에 도착했다. 잠시 후 남자는 수갑을 차고 집 밖으로 끌려 나왔다. 집 앞에 주차한 경찰차가 계속 요란한 경고등을 켜고 있었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은 그곳에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직감하고 숨을 죽였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사건의 전모다. 학생 부부가 다투던 순간에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상황에 대한 가해자와 피해자 진술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남자는 홧김에 상대 몸을 살짝 밀었을 뿐이라고 했고, 여자는 뺨을 맞았다고 했다.

아마도 두 사람은 경찰이 도착했을 때도 상반된 발언을 했을 것이다. 이 경우, 경찰이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체포하는 것이 온당할까? '한쪽 말만 듣고 섣불리 단정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공부했던 위스콘신 주는 다른 많은 주처럼 '의무적 체포법(Mandatory Arrest)'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경찰이 보기에 피해자 진술이 타당해 보이면 증거나 영장 없이 가해 혐의자를 체포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체포할 수 있다'가 아니라 '체포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이다.

한국사회에 미투운동이 확산하면서 저항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형태도 다양하다. 대놓고 '꽃뱀'을 들먹이는 몰상식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공작설'을 퍼뜨리는 음모론자도 있고, '한쪽 말만 듣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자'도 있다.

'꽃뱀론'과 '음모론'은 어떤 복잡하고 심오한 조건을 달든 결국 가해자 편을 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신중론'은 제법 합리적 균형을 잡는 시늉을 한다. 이들은 미국 경찰이 가정폭력에 대응하는 방식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가해 혐의자를 현장에서 체포하는 미국 경찰이 매우 신중치 못하다고 판단할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 진술이 다를 경우, 경찰이 현장에서 머리만 긁다가 돌아오는 '신중한 선택'을 하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과거 미국 경찰이 그랬고, 아주 최근까지 한국 경찰이 그랬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만연한 가정폭력이었다.

신중론자들은 누군가 길모퉁이에서 '도둑이야'라는 소리를 외칠 때 어떤 생각을 할까? '달려가서 돕자'나 '경찰에 신고하자'는 아닐 것이다. 아마 '정말 도둑이 맞을까?', '무고 아니냐?', '한쪽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는 신중한 자세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합리'와 '팩트'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신중론자들은 즉각 반발할 것이다. '성폭행 당했어요'와 '도둑이야'가 똑같으냐고. 당연히 똑같지 않다. 성폭력이 도둑질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를 남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신중론'은 이름과 달리 신중함과 거리가 먼, 매우 편파적인 견해다. '고발자 말을 거짓으로 간주하고 보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 범죄를 고발할 때 가장 합리적인 태도는 고발자 말을 신뢰하는 것이다.

얼마나 지겹게 들었는지, 이 순간 '꽃뱀'과 '무고' 이야기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그들이 좋아한다는 '팩트' 이야기를 좀 해 보자. 범죄의 허위신고 비율은 매우 낮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허위신고 비율을 신고된 전체 사건의 2~4% 정도로 추정한다.

경찰이 신고를 받고 '진짜냐'고 묻지 않은 이유는 98% 대 2%의 통계적 상식 때문이다. 당연히 여기서 '일반 범죄와 성범죄가 똑같냐'고 반론이 나올 것이다. 당연히 다르다. 성범죄는 일반 범죄보다 신고율이 훨씬 낮다.

미국의 경우, 성범죄 허위신고를 일반범죄의 허위 신고비율과 비슷한 2% 수준으로 추정한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점은 '허위신고 비율'이 신고된 전체 사건의 비율이라는 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고되지 않은 사건은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실제로 발생하는 사건에 대한 허위신고율은 훨씬 낮다.

미국의 강간 신고율은 30~40% 수준이다. 더 많은 사건이 신고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다. 살인, 강도, 폭력 등 다른 강력범죄의 신고율이 매우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같은 허위신고율 2%가 얼마나 다른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이 똑같으냐'는 항변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한국의 강간 신고율은 6~10%로, 미국의 반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꽃뱀', '음모', '신중'을 들먹이는 건 몰상식을 넘어선 폭력이다.

문제 해결의 첫 단계는 고발자를 믿고 대응하는 것이다.

'꽃뱀 신화'는 가부장적 편집증

나는 매우 독특한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정력신화'로 대표되는 남성들의 성적 강박이다. 가끔 동료 교수들과 대화하다가 그 이야기가 나오면, 예외 없이 '석사 전공이 뭐였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신문방송학'이라고 답하면,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묻는 이들까지 있다. 혹시 '비뇨기과'라는 답을 기대했던 것일까? 하지만 남성들의 성적 강박은 성기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이며, 문화의 문제다.

나는 '꽃뱀론'이 매우 전통적인 남성적 강박 위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여기서 전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여성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은 남성을 파멸시키는 존재'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주위 어른들로부터 '여자 잘못 만나면 인생 망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내가 자라가면서 깨달을 사실은, 남자가 여자를 파멸시키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었다. 가장 확실한 파멸의 형식은 살인일 텐데, 주로 누가 누구를 죽이는지를 생각하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이나 영화에는 '팜 파탈(femme fatale)', 즉 '파멸적인 여성'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천사의 탈을 쓴 악마나, 악마의 탈을 쓴 천사로 나온다. 실제로는 남성이 여성을 파멸시킬 가능성이 훨씬 큰데, '옴 파탈'은 별로 인기가 없다.

나는 '꽃뱀'을 '파멸적 여성'에 대한 무의식적 강박의 형태로 이해한다. '파멸적 여성론'은 여성 타자화의 '부메랑 효과'인 셈이다. 본래 누구를 적으로 만들어 배척할 때, 공포감은 적을 만들어 낸 사람의 몫으로 돌아가는 법이니까.

남성들이 훨씬 많은 권력을 누리고 행사해 온 가부장제 사회에 이런 강박이 존재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결국, 이것은 가부장제가 양날의 칼이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여성을 차별하고 주변화하면 그 피해가 남성에게도 돌아가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꽃뱀 신화'

성폭력 거짓으로 신고하거나 성행위를 미끼로 돈을 갈취하는 전문 사기단이 있지 않으냐고 물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교통사고를 허위로 신고하거나 부상을 미끼로 돈을 갈취하는 전문 사기단이 있듯 말이다.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 온 남자 환자에게 '혹시 자해 공갈단 아니냐'고 묻는 것은 몰상식한 행동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범죄 생존자에게 '꽃뱀 아니냐'고 묻는 것 역시 몰상식한 행동이다.

여기에서 '공작'이나 '신중론'을 들이댄다고 몰상식이 상식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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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와 <미디어기호학>을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