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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수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남기기 마련이다. 한국전쟁 중 인명 피해는 피아 500여 만 명으로 추산된다. 물적 피해는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전쟁의 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굴뚝의 기둥만 남아 있을 정도였다. 우리 국토에 남겨진 전란의 생채기는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사진으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박도 기자의 사진 근현대사] 36회는 한국전쟁 당시 국토 곳곳의 전쟁 상흔 사진으로 꾸렸다. -기자 말

1950. 11. 20 원산, 전란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고 건물 기둥과 굴뚝 일부만 남아 있다.
 1950. 11. 20 원산, 전란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고 건물 기둥과 굴뚝 일부만 남아 있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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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2. 16. 전란으로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1950. 12. 16. 전란으로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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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1. 25. 전란으로 반파된 수원의 한 성문.
 1951. 1. 25. 전란으로 반파된 수원의 한 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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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1. 27. 공주, 전란으로 주저앉은 금강교.
 1951. 1. 27. 공주, 전란으로 주저앉은 금강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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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9. 30. 전란으로 폐허가 된 대전역.
 1950. 9. 30. 전란으로 폐허가 된 대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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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0. 1. 전란으로 파괴된 서울역 플랫폼.
 1950. 10. 1. 전란으로 파괴된 서울역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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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9. 16. 전란으로 인천역 일대가 불타고 있다.
 1950. 9. 16. 전란으로 인천역 일대가 불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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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1. 20. 굴뚝만 남은 원산의 공장지대
 1950. 11. 20. 굴뚝만 남은 원산의 공장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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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8. 15. 경남 창녕의 낙동강 남지 철교로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한창 전투 중일 때는 강물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상류에서 사체가 둥둥 떠내려 왔다고 한다.
 1950. 8. 15. 경남 창녕의 낙동강 남지 철교로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한창 전투 중일 때는 강물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상류에서 사체가 둥둥 떠내려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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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4. 1. 전란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된 춘천.
 1951. 4. 1. 전란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된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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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8. 22. 마산,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다가 부서진 탱크 잔해들.
 1953. 8. 22. 마산, 전장을 종횡무진 누비다가 부서진 탱크 잔해들.
ⓒ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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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11. 4. 전란으로 공장은 파괴되고 굴뚝만 남았다.
 1950. 11. 4. 전란으로 공장은 파괴되고 굴뚝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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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기에 수록된 사진 이미지들은 눈빛출판사에서 발간한 박도 엮음 <한국전쟁 ‧ Ⅱ>에 수록돼 있습니다.



태그:#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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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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