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에 이은 위드유 운동까지, 젠더 폭력에 대한 새로운 물결이 한국 사회를 휘젓고 있다. 용기 있는 피해자의 고백으로 지금까지 등장하지 못했던 피해 사실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가해자의 극악무도함이 파헤쳐졌다. 또한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해야 하는 법과 제도의 미비함도 자연스럽게 노출되면서 현재 모든 시민들과 국회에서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다.

tvN의 프리미엄 특강쇼인 <어쩌다 어른>에서는 위드유 특집으로 17년간 성교육, 성폭력 예방을 위해 힘쓴 손경이 강사를 초청했다. 그는 약 1시간 동안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해서, 가해자 예방 교육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주변 사람들의 태도 변화에 대해서 끊임없이 설명했다.

먼저 "가해자와 피해자 중에 예방 교육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했을 때, 모든 청중들이 "가해자"라고 외쳤고, 이에 손경이 강사는 울먹임을 감추지 못했다. "오래 세월 동안 수많은 강단에 서서 똑같은 질문을 했지만, 모두가 한목소리로 가해자를 말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지난 28일 방송된 <어쩌다 어른> '위드유'편에 출연한 손경이 강사.

지난 28일 방송된 <어쩌다 어른> '위드유'편에 출연한 손경이씨. ⓒ tvN


정작 잘못은 가해자가 했지만, 피해자는 당시 사건에서 자신이 행한 행동에 대해 조목조목 해명해야만 했다. '술을 왜 먹었는지' '복장은 왜 그랬는지' 가해자에게 화살을 돌려야 할 사건이 피해자다움에 대해서 집중하면서, 사건의 책임이 묘연해지고 실제로 피해자가 명예훼손이나 무고죄로 고소를 당하면서 실형에 처하는 경우도 많다.

위계와 위력에 기반을 둔 권력형 성범죄가 횡행하지만, 피해자는 침묵을 강요 받는다. 비단 가해자에 의한 통제뿐만 아니라, 사건을 둘러싼 목격자 혹은 주변인들 역시도 권력자인 사람이 두려워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피해자의 존재를 감추고 쉬쉬하며 사건을 조용히 넘어가고자 한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불특정 다수에게서 벌어진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에서 피해자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고, 무력함을 마주하게 된다.

<어쩌다 어른>에서 다룬 '성관계시 동의' 문제 "NO는 YES 될 수 없다"

손경이 강사는 잘못된 성 관념이 흐르는 사회 곳곳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피해 사실이 발생한 상황에서 피해자 편에서 함께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성추행,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 잘못된 젠더 관념을 극복하고 가해자의 정확한 처벌과 사과를 받을 수 있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비난과 책임이 피해자에게만 생기고, 피해자에 대해 제대로 된 보호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다.

그리고 손경이 강사는 방송에서 '동의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투표권을 얻는 나이보다 지나치게 낮은 만 13세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부여함으로써, 어린 사람에게 피해를 줬음에도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녔다는 이유로 가해 사실이 정상참작되거나 없었던 일로 회부되는 경우도 많다. 사건을 따지는 과정에서 최종적으로는 '자기결정권에 따른 동의'로 왜곡해서 판단하기 십상이다.

 지난 28일 방송된 <어쩌다 어른> '위드유'편에 출연한 손경이 강사.

지난 28일 방송된 <어쩌다 어른> '위드유'편에 출연한 손경이 강사. ⓒ tvN


방송에서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지나치게 어린 나이에 설정된 문제를 짚으면서, '개인과 개인 사이의 동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도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손경이 강사는 "성관계에서 중요한 동의는 상대방이 의식 있을 때 눈을 마주 보고 허락받는 것이지, 술 취한 상황이나 잠결에서는 동의가 절대로 성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NO라고 말한 것은 정말 NO이고, YES만 YES라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 NO는 YES가 될 수 없고, 침묵은 판단 중이라는 뜻일 뿐 동의로 보는 것은 성급한 처사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피해자 보호 시설 확충과 체계적인 정책 및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 미투 운동과 위드유 운동이 높은 온도로 유지돼야 함을 주장했다. 일련의 피해 사실이 일시적인 이슈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통렬히 기억하면서 문제에 접근하고, 이번 기회로 사회 안전망을 철저하게 구축해나가야 함을 지속해서 이야기했다.

강연을 보면서 과거에 나는 어디에 있었고, 현재의 나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끊임없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가해자인 사실에 나도 포함된다는 점을, 침묵으로 일관하는 방관자로서만 사건을 회피하고 건너뛰지 않아야 함을 또다시 생각하게 됐다. 손경이 강사와 함께 보낸 1시간여의 시간은 그 자체로 값졌다. 삶 속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실천은 무엇인지 일상 곳곳에서 마주해야 할 것이다.

어쩌다어른 손경이 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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