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윤아. 요새 덕질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잖아. 덕질이란 어떤 분야를 무척 좋아해서 그와 관련된 물건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것을 말해. 당장 너희 엄마도 가수 하현우를 좋아해서 같은 공연을 여러 번 가고, 절판된 하현우 CD를 비싼 값을 치르고 사잖아. 그뿐이냐? 3시간짜리 공연을 보고 나서도 긴 줄을 서서 하현우 열성 팬용 상품을 손에 넣으려고 해.

책과 피겨를 모으는 아빠는 말해야 뭐하겠니. 덕질이라는 말에는 자기 생업과 관련 없는 분야를 파고드는 것을 말하는 뉘앙스가 숨어 있어. 가령 요리사가 비싼 칼을 모은다거나 미용사가 고가의 가위를 탐내고 모으는 것을 팬 활동이라고 말하지는 않잖아. 아빠가 좋아하는 피겨는 없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요리사가 좋은 칼을 쓰고 미용사가 명품 가위를 사용한다면 직업적으로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어.

비록 경제적으로 여유는 없더라도 자신의 생계와 관련된 값비싼 도구를 탐내는 것은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일종의 투자라고 볼 수도 있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작가들은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면 동서고금을 통틀어서 궁핍한 삶을 살았어. 대학교수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유명 작가를 제외하면 작가라는 직업군은 아마도 평균 소득이 가장 낮은 직업 중의 하나일 거야.

궁핍한 작가라도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탐내고 귀하게 여기는 도구가 있기 마련이란다. 글을 쓰는 데 필요하거나 글을 쓰는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물건들이지.

두 번째 가진 것은 사회에 나와서 맨 첫 번 월급다운 월급을 받았을 때이다. 글을 쓰는 것이 나의 천직이니까 좋은 만년필을 갖고 싶은 것이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욕망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파카 21을 샀다. 51호 짜리를 사려고 하였으나 역시 21을 샀다.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나의 책상 위에 이 새로운 만년필을 놓고 밤늦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김수영 전집 2. 58쪽
세 번째 파카를 사기 위해서 나는 맹렬히 발분(發奮)하였다. 싼 만년필은 사기 싫고 파카를 살 만한 모내기 돈은 생기지 않은 채 지옥 같은 며칠이 지났다. - <김수영 전집 2>, 60쪽

시인 김수영은 직장 생활을 한 것이 드물고 수입도 변변찮아서 보다 못한 아내가 닭 100마리로 양계를 시작한 사람이야. 궁핍한 시대에 태어나서(1921년) 미처 보릿고개가 사라지기 전에 세상을 달리한(1968년) 전업 작가이니 그리 특별한 경우도 아니겠다.

김수영이 월급다운 월급을 받은 시절은 그의 인생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그런 그가 '맨 첫 번 월급다운 월급'을 받아서 가장 먼저 생각하고 한 일이 만년필 파카 21을 산 것이라는 거지.

김수영 전집 표지 사진
▲ 김수영 전집 김수영 전집 표지 사진
ⓒ 민음사

관련사진보기


위에 있는 인용문을 쓴 때가 아마도 한국 전쟁 직후일 거야. 저 당시에 파카 만년필이라면 아마도 김수영이 실질적으로 구할 수 있는 가장 고급 필기구가 아닐까 싶다. 가격도 엄청 비쌌을 거야. 김수영 말이 다소 이기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전업 작가로서 필기구에 욕심을 내는 것은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욕망'일지도 모르겠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소설가 이태준은 만년필을 잃어버린 애틋한 마음을 담아 수필을 남겼을 정도야. 게다가 '나는 다른 방면엔 박하더라도 만년필에만은 제법 흥청거렸다'라고 말함으로써 궁핍한 문인의 필기구 사랑을 대변해.

작가들이 필기구에 욕심을 내는 것은 '허세'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 요즘이야 펜으로 글을 쓰는 작가보다 키보드로 글을 쓰는 작가가 압도적으로 많겠지만 김수영이 살았던 시대는 펜이야말로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에게 칼의 존재와 다르지 않잖아. 김수영의 처사가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지.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이 대세가 된 요즘도 연필이나 만년필을 고집하는 작가가 여럿 있으니까 말이다.

한 마디로 작가들의 필기구 사랑은 시대와 사람을 가리지 않는 유구한 전통이자 작가들의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해야겠다. 아빠는 강원도 철원에 있는 육군 6사단에서 군대 생활을 했는데 하도 작업(작업이라고 쓰고 막노동이라고 읽어야겠구나)을 많이 해서 6사단이 아니고 '삽 사단'이라고 불렀단다.

작업으로 삽을 7자루 정도는 닳아빠질 정도가 되어야 전역을 할 수 있다는 말을 했거든. 말하자면 아빠는 삽을 몇 자루 닳아빠지게 했느냐로 남은 군대 생활을 생각했는데 작가 헤밍웨이는 연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날의 집필한 분량을 사용한 연필 자루 수로 말했다고 하는구나. "연필 7자루를 해치웠다"라고 말이다.

이 연필은 이상적이라고 할 만큼 단단하면서도 매우 부드러워. 목공용 연필보다 색감도 훨씬 좋지. 재봉사 소녀를 그릴 때 이 연필을 썼는데 석판화같은 느낌이 정말 만족스러웠어. 부드러운 삼나무에 바깥에는 짙은 녹색이 칠해져 있지. 가격은 한 개에 20센트밖에 하지 않아." -2017년 2월 21일자 조선일보 '취향의 물건'에서 인용

연필 회사 영업사원이 한 말이 아니란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네덜란드 화가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야. 고흐가 극찬한 삼나무로 만든 짙은 녹색 연필은 바로 '파버카스텔사의 카스텔 9000'이란다.

너도 익히 아는 연필일 게다. 오래전부터 사용한 연필이니까. 아빠가 너에게 몇 다스나 준 육각형 녹색 연필이 바로 카스텔 9000이란다. 아빠가 사랑하는 필기구지. 연필이 6각형으로 나온 것이 이 모델이 처음이란다. 고흐가 사랑한 연필이 요즘도 나오는 것만 봐도 이 연필이 얼마나 전통이 있는지 짐작이 될 게다. 심지어 모델명도 같아.

특별히 멋을 낼 의도가 없지만 아무리 사용해도 질리지 않고, 기품이 느껴지며, 필기감이 좋고 잘 부러지지 않아. 연필을 이야기하자면 절대로 뺄 수 없는 것이 김훈 작가란다. '연필이 아니면 한 자도 쓸 수 없다. 지우개가 없으면 한 자도 쓸 수가 없다'고 말할 정도니까. 퇴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니까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려면 연필이 실용적이기도 할 거야.

김훈이 사랑하는 연필은 독일의 '스테들러'야. 몇 년 전에 우리 가족이 통영을 거쳐서 여수 여행을 간 적이 있잖아? 그때 통영에서 박경리 기념관과 묘소를 찾았는데 아빠가 박경리 선생 기념관에서 가장 유심히 본 것이 '몽블랑 149' 만년필이야. 박경리 선생이 애지중지 아끼면서 집필을 할 때 사용한 만년필이란다.

소설가 박완서는 시조 시인 이영도에게 선물 받은 파카45를 애지중지했단다. 애석하게도 이영도가 준 파카45에 처음 잉크를 채운 날 이영도의 부음을 들었어. 박완서는 이 파카45로 여러 작품을 썼고 실수로 바닥에 떨어뜨려서 망가졌을 때 애통하고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고 해.

심지어는 오랫동안 함께해서 손에 익은 파카45가 없어졌으니 다시는 글을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단다. 다행스럽게도 파카45를 잃은 박완서는 '워드 프로세서(넌 이 기계를 본 적이 없을 게다. 말하자면 전자식 타자기라고 생각하면 되겠다)를 거쳐서 마침내 컴퓨터라는 신문물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서 세상을 달리 할 때까지 많은 작품을 남겼지. 박완서 선생은 각 시대를 대표하는 효율적인 글쓰기 도구를 받아들이고 활용을 한 유연함(?)을 발휘한 작가란다.

시인 박두진, 소설가 박범신, 최인호는 자기 이름이 인쇄된 전용 원고지를 애용했어. 특히 박범신 작가는 '박범신 원고용지'라는 문구가 한자로 인쇄된 전용 원고지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해. 어찌 보면 겉멋이라고 깎아내릴 수도 있겠지만 일제강점기에도 여러 가난한 문인들이 자신의 이름이 인쇄된 전용 원고지를 사용했단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선생도 전용 원고지와 만년필로 글을 썼단다. 요즘에도 왕성하게 글을 쓰는 유홍준 선생은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해지기 전까지만 해도 전용 원고지와 만년필이 없으면 글을 쓰지 못했어. 유홍준 선생은 특이하게도 200자 원고지가 아닌 600자 원고지를 직접 만들어 사용했는데 원고지 하단에 '유홍준 원고지'라는 문구가 있더구나.

책상 위는 촛농이 벗겨질 사이가 없다. 책상이라 하지만 그것은 집에서 밥 소반으로 쓰던 것을 임시 책상으로 대응하여 쓰고 있는 것이다. 책상이 없으니까 이것을 쓰는 것이고, 이 책상 아닌 책상 – 석유 궤짝만큼도 못한 울퉁불퉁한 책상에 앉을 때마다 이다음에 돈이 생기면 우선 만사를 다 제쳐 놓고서라도 책상부터 사야지 하고 있는 것이 환도 이후부터이니까, 근 1년이 다가오는 데에도 여태껏 목적을 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저 책상의 주인이 얼마나 무능력한 위인인가를 증명하여 주는 것도 되지만 사실 이 책상 주인이 이 변변치 않은 책상에 남모르는 애정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김수영 전집 2>, 76쪽

이 글을 읽자니 '고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작가가 세상을 뜬 지 50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가장 잘 읽히는 시가 '밥 소반'에서 쓰인 것이라니 말이다. 그런데도 작가에게 글쓰기 도구에 대한 욕심은 어쩔 수 없구나. 양철 지붕을 한 단칸방에 사는 가정의 가장 김수영은 돈이 생기면 책상부터 사겠다고 벼르고 있잖아. 작가에게 있어서 필기구와 책상은 요리사에게 칼과 도마나 마찬가지란다.

필기구와 책상이 없으면 아무리 영감이 솟는다고 해도 글 자체를 쓰기가 무척 곤란하잖아.  머릿속으로 장편소설을 구성하는 극소수 천재는 예외로 하자. 아빠는 노트북과 책상이 없으면 절대로 글을 못 쓴단다. 새해에 새로운 업무를 맡았는데 모든 동료가 피하는 일이야. 물론 아빠도 힘든 일을 하게 되어서 걱정을 많이 하긴 했는데 전년보다 사무실 책상이 10cm 정도가 더 길어지고 넓어졌다는 것을 알고 쾌재를 불렀단다. 어려운 일을 맡았다는 부담감과 걱정이 일순간에 사라지더구나.

업무를 마치고 책을 보고 노트북을 펴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조금 더 커진 책상은 엄청난 쾌적함을 제공해주거든. 아빠가 만약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 커진 책상을 반기지 않았을 거야. 쓸데없이 큰 공간은 안락함보다는 불편함이 더 큰 법이니까. 작가가 좋은 필기구와 넓은 책상을 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상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고 그 이야기는 필기구로 완성되니까.


김수영 전집 2 (2003년판) - 산문

김수영 지음, 민음사(2003)


태그:#김수영, #산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