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연의 영화음악> 메인 사진 '이영음'의 폐지를 두고 청취자들의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 <이주연의 영화음악> 메인 사진 '이영음'의 폐지를 두고 청취자들의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 MBC


최근 MBC 라디오의 새벽과 함께하던 청취자들이 부쩍 화를 내고 있다. 다른 라디오에서는 '암흑 시간대'라고 불리며 광고마저도 거의 불가능한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의 시간대에 한 프로그램을 일부러 찾아 듣기까지 한 청취자들이라 더욱 이례적이다. 이들의 반발 이유는 4월 9일 개편으로 인해 MBC 이주연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이주연의 영화음악(아래 '이영음', 영화음악)>이 폐지되고, 오전 8시와 9시 사이에 방송되는 < FM 영화음악 정은채입니다>가 신설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청취자들의 관심이 적어 폐지나 개편이 수시로 이루어지는 심야방송 치고 꽤나 큰 파문이 일고 있다. MBC 현 사장인 최승호 사장의 SNS 계정 글에는 "이주연의 영화음악 폐지를 반대한다"는 댓글이 속속 달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주연의 영화음악> 폐지를 저지하기 위해 '이영음(이주연의 영화 음악) 4기 추진'을 위한 카페도 운영되면서 '영화음악 지키기'를 위한 목소리가 늘고 있다.

누군가는 '일개 심야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영화음악 프로그램은 여러 번 폐지 반대 운동에 직면했던 과거가 있다. <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가 두 번 폐지되었을 때도 그랬고, 과거 <영화음악>이 MBC 사측에 의해 표준 FM으로 옮겼을 때도 그랬다. 왜 청취자들은 <영화음악> 프로그램 폐지 반대운동 등 프로그램을 지켜내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걸까.

MBC에서 '가장 탄압받았던' 프로그램

 청취자들의 많은 인기를 얻었던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의 홈페이지 로고.

청취자들의 많은 인기를 얻었던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의 홈페이지 로고. ⓒ 문화방송


<영화음악> 프로그램은 1980년대부터 MBC FM의 심야를 책임졌던 프로그램이었다. 1992년부터 1995년, 2003년부터 6개월간 고(故) 정은임 아나운서가 진행했던 <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는 정은임 아나운서 특유의 진행과 영화에 대한 열정이 영화 마니아, 나아가 새벽 라디오 청취자들의 귀를 잡아끌었다.

어느새 영화음악의 최장수 DJ가 된 이주연 아나운서 역시 그랬다. 그는 2001년, 2006년, 2013년에 이르기까지 세 번, 약 10년에 걸쳐 '이영음'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이영음'은 영화 애호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청취자에게 MBC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MBC 수난기였던 과거 보수정권 당시 정치·사회, 그리고 김재철 등 당시 사장들을 위시한 경영진에 대한 '직설'로 변하지 않는 프로그램임을 증명했다.

이런 이유로 '이영음'은 MBC 경영진들의 '표적 1순위'가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2013년에는 갑작스레 표준FM으로 자리를 옮겨 <영화는 영화다>라는 프로그램을 편성했던 적이 있었다. 프로그램을 수십 년간 이끌었던 홍동식 PD 역시 MBC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었을 정도로, MBC 라디오와 TV를 통틀어 '가장 탄압받았다'라고 표현해도 무방한 프로그램이 <영화음악>이었다.

하지만 파업이 결실을 맺고 최승호 사장 시대가 열림에 따라, 라디오 청취자들은 <이주연의 영화음악> 역시 더욱 나은 분위기에서 방송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게 되었다. 프로그램의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다. 옛 MBC 경영진이 종영시켰던 '이영음 2기' 때의 두 작가들도 복귀했다. 하지만 사장 부임 6개월 만에 '이영음 폐지'가 결정됐으니, 기대에 대한 배신감도 최근 '폐지 반대 운동'의 기저에 깔린 셈이다.

MBC의 새벽을 상징했던 '흑진주'

 '이주연의 영화음악' 소개글. '이영음'은 DJ부터 작가, PD까지 별명을 갖고 있던 특별한 방송이었다.

'이주연의 영화음악' 소개글. '이영음'은 DJ부터 작가, PD까지 별명을 갖고 있던 특별한 방송이었다. ⓒ 문화방송(주)


<영화음악>은 MBC의 새벽을 상징하는 '흑진주'로 자리 잡은 프로그램이었다. 한 시간 동안 귀로 듣는 영화의 콘셉트를 지닌 '블링블링 사운드트랙'은 <영화음악> 프로그램의 상징 그 자체였다. 역대 DJ들의 영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영화에 대한 가감없는 평론, 그리고 청취자들의 새벽잠을 깨우는 평론가, 기자, 교수 등 여러 게스트들의 영화로 풀어나가는 수다가 매일 이어졌다.

또한 새벽에 방송하는 이점도 있었다. 상업영화에 초점을 맞춘 지상파 영화 관련 라디오나 TV 프로그램과는 달리 <영화음악>에는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 등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 영화에 대한 시선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 영화제에는 방송 차량을 보내 현장 녹음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실제로 박찬욱 감독은 '데뷔 후 영화 흥행에 실패하고 충무로에서 부르는 이가 없었을 때 <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에 출연하면서 다시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이주연의 영화음악> 역시 최근 방송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퀴어 영화인< 120BPM >을 소개하는가 하면 <소공녀>의 감독과 배우를 초대하는 등 흥행과 상관없이 영화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여러 청취자들은 '<영화음악>이 영화의 다양성을 지키기 때문에 폐지하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 청취자는 <영화음악>을 지키기 위해 개설된 '이주연의 영화음악' 인터넷 카페에 "작지만 좋은 영화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주었던 유일한 영화 프로그램이었다"라는 글을 올려 많은 청취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도 했다.

청취자들이 '시즌 4' 기다리는 이유

 '이영음'의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이 만든 '이영음의 영화음악' 카페.

'이영음'의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이 만든 '이영음의 영화음악' 카페. ⓒ 박장식


<이주연의 영화음악>의 이주연은 라디오 DJ들 중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기록을 갖고 있다. 한 사람이 같은 프로그램을 세 번째 진행했기 때문이다. 2001년 4월부터 1년간, 2006년부터 2012년 MBC 파업까지 5년 9개월, 2013년부터 올해까지 총 4년 5개월간 진행했다. 고(故) 신해철씨의 '고스트스테이션'이 여러 방송사를 거쳐 세 번(고스트네이션을 포함하면 네 번) 방송된 것 이외에는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아나운서로서 대기록을 세운 셈이다.

그래서 청취자들은 '이영음'이 하루빨리 시즌 4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MBC는 새로이 오후 8시에 편성된 < FM영화음악 정은채입니다>가 두 달간 한시적으로 진행되고, 그 이후의 DJ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청취자들은 이주연 아나운서가 두 달 후 복귀와 새벽 시간으로 복귀하기를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이주연의 영화음악' 카페 회원들 다수는 이미 집단행동에 돌입한 상황이다. 이들은 MBC의 시청자 게시판에 항의를 남기는가 하면, MBC 라디오의 SNS와 최승호 사장의 SNS 등에 '프로그램을 폐지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게시글을 여러 차례 업로드하고 있다. '이영음' 때문에 새벽을 기다렸던 이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반영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주연의 영화음악 MBC 라디오 라디오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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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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