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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에 넥슨의 게임 '클로저스'의 성우였던 김자연씨가 메갈리아 티셔츠를 자신의 SNS에 인증한 것을 두고 게임 이용자들의 항의가 빗발친 사건이 있었다. 모두 기억하듯 결국 김씨는 클로저스 성우를 그만둬야 했다. 2016년 뜨거웠던 사건들 중 하나다. 티셔츠 하나 인증했다고 자신이 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사회가 진정 민주주의 사회인가 하는 의견이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 오갔고, 나 역시 그 의견에 찬성한 바 있다.

1년 8개월이 지나 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났다. 김학규 IMC게임즈 대표는 지난 26일 자사 게임인 '트리 오브 세이비어'의 원화가가 자신의 SNS 계정으로 '한국여성민우회' 계정 등을 팔로우해 남성 게임이용자들의 항의를 받자 이를 문제삼았다. 김 대표는 해당 원화가와 면담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후 올린 공지문에서 김 대표는 "사회적 분열과 증오를 야기하는 반사회적인 혐오 논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방지와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에 해당 원화가와 면담을 진행했다"라고 했다.

정말 이쯤되면 사상검증이 도를 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업무와 무관한 부분에 대해 남성 유저들의 항의가 있으면 당연히 사상검증을 해도 되는 것인가.

'게이머게이트', 게임문화 내의 성차별이 적나라하게 폭로된 사건

'게이머게이트'는 게임문화 내의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한 공격을 자행한 사건이다.
 '게이머게이트'는 게임문화 내의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한 공격을 자행한 사건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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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에서는 지금의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과 유사한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독립 게임 개발자인 조이 퀸(Zoe Quinn)이 자신이 우울증을 겪었던 경험을 기반으로  2013년 '디프레션 퀘스트(Depression Quest)'를  출시한다, 일부 유저들과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호평을 받았지만,  그런 긍정적인 평가가 과하다고 생각하는 일각에서는 퀸을 비난함과 동시에 그녀의 신상을 털기에 이른다. 표면적으로 그들이 내세운 이유는 게임에서 우울증을 묘사하는 방식이 너무 개인적이라 공감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퀸에 대한 일부 남성 게이머들의 공격이 그녀가 여성이라는 지점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진행되게 된다. 특히 2014년 그녀의 전 애인이 그녀의 '문란한 성생활'을 지적하는 글을 쓰는데, 내용인 즉슨, 퀸이 그와 사귀면서 다섯 명의 남자와 바람을 피웠는데 그 중 게임 업계 종사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폭로는 즉각 여러 남초 커뮤니티로 퍼져 급기야는 해당 업계 관계자들이 그녀와의 성적 관계를 대가로 그녀의 게임을 호의적으로 평가해줄 것을 약속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게된다.

하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해당 게임평론가는 퀸의 게임에 대해 평론을 한 적이 없고 짧게 언급을 했을 뿐이고 그것조차도 퀸을 만나기 전이었다. 하지만 사실관계에 대해 관심없는 게이머들은 이 (존재하지 않는) '사건'을 평론의 공정성과 개발자의 도덕성(?)이 붕괴한 대표적인 예라면서 퍼트리고 다닌다.

게이머게이트는 이런 게임업계 내부의 공정성과 도덕성의 붕괴를 지적하는 것을 기치로 내세우며 퀸을 포함해 해당 사건을 비판하는 평론가와 페미니스트 등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진 해시태그 운동(#GamerGate)을 일컫는다.

정말 듣기만 해도 의아하지 않는가? '게이머게이터'들은 공정성과 도덕성이 어떻게 땅에 떨어졌는지, 정작 그 근거가 되는 사건들은 사실과 다르거나 악의적으로 조작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으로 논증하기 보다는 성적 괴롭힘, 강간 협박, 신상털이에 준하는 행동으로 맞받아치는 데에만 집중한다. 게임문화 내의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한 공격은 덤이다.

게임업계가 워낙 남성중심적이고 남성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큰 것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비슷해서, 이런 움직임은 비이성적인 혐오의 표출이 아니라 '소비자의 정당한 요구'로 포장되었고, 여기에 일부 미디어가 가세하기도 했다. '양 쪽 모두의 입장을 들어봐야 한다'면서 게이머게이트의 주동자들이 혐오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는 슬쩍 옹호해주는 방식으로.

그러나 현재 미국사회의 주류적인 분위기는 이를 극단적인 보수주의, 소위 대안우익(Alt-right)이라고 규정할 정도로 게이머게이트는 게임업계 내의 여성혐오와 남성중심적 사고, 비민주적 절차를 폭로한 사건 중 하나로 비판받고 있다.

이번 일을 게이머게이트에 비유하는 것이 과하다고? 그 정도 수위는 아닌 것 같다고? 맞다. 설명한 바처럼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강간, 살해협박에 준하는 것들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이름으로 사상검증을 허하는 환경에선 저런 일들이 얼마든지 자행될 수 있을거라는 건 자명하지 않나.

게이머게이트를 다룬 <가디언>의 2016년의 기사 중 한 구절은 2018년 한국에 가져다 놓아도 기시감이 든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모든 것은 2년 전에 선례가 있었습니다."(Everything we're seeing now, had its precedent two years ago.)

다시, 창작자가 사상을 이유로 배제되지 않기를

김자연 성우 사건은 본질적으로 사상검증이었으며 개인의 노동권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대표적인 사례다.
 김자연 성우 사건은 본질적으로 사상검증이었으며 개인의 노동권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대표적인 사례다.
ⓒ @KNKNO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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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해당 원화가의 면담을 마치고 "메갈의 주장이나 가치에 대해 동의하지도 않고, 그런 활동에 동참한 적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라는 말을 했다. 당연히 자신의 직업이 걸린 일인데 '페미니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라는 정도의 해명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문제는 '너는 특정 사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은 자주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상사의 면담이라면 사상검증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애초에 업무와 무관한 일에서 남성 게이머들이 논란을 키웠다는 것을 김학규 대표도 모르지 않았으리라 본다. 도대체 게임을 하는데에 있어 애니메이터가 민우회와 페미디아를 팔로우한다는 사실이 어떤 연관이 있단 말인가? 사실 당사자가 공공연하게 페미니즘과 여성인권에 대해 주장하고 다닌다 해도, 그런 행위들이 게이머들의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침해하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면 문제가 된다고 보기 힘들다.

계속되는 사상검증의 칼날 앞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으랴. 게임업계는 게이머게이트가 남긴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김학규 대표에게 묻는다.

"저는 한국여성민우회 회원이고, 페미디아에 글을 실은 적도 있습니다. 저는 이 사회의 '긍정적 가치'를 해치는 존재입니까? 당신의 구분대로라면 저도 '메갈' 하겠습니다."


태그:##사상검증, ##게이머게이트,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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