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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비 소식 전까지는 대기 상태가 '최악'이래."

우울감이 몰려온다. 6살, 4살 두 아이는 겨울에 강추위가 몰려와도 감기에 잘 걸리지 않을만큼 튼튼한 아이들인데 최근 며칠간 계속 기침을 달고 산다. 연일 최악의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으면서 시작된 기침이다.

맘껏 바깥 놀이를 하고 싶어 봄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아이들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비가 오는 것도 아니고, 엄청 추운 것도 아닌데 집 안에만 있으라니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할까.

아이들의 뛰어놀고 싶은 욕구는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나가라고 할 수 없는 엄마의 입장이란 너무 괴롭다. 내가 어릴 때는 상상도 못해본 일. 공기가 좋지 않으니 나가지 말라는 말을 하고 있을 줄이야. 물도 사먹는다는 말에 놀라워 했는데, 이제는 공기도 사마셔야 하는 시대인가. 

"형편 돼서 이민 가는 분들 너무 부러워요"


연일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상태를 나타내며 호흡기 질환 환자 증가가 우려되고 있다. 27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을 찾은 어린이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연일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상태를 나타내며 호흡기 질환 환자 증가가 우려되고 있다. 27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을 찾은 어린이가 마스크를 착용한 채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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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우리나라 맘에 안 들어도. 미우나 고우나 내 나라 내 조국이니 적응하고 살자는 생각이었는데. 미세먼지는 진짜 답이 없네요. 맑고 깨끗한 공기 있는 곳으로, 아이들 건강하게 자라날 수 있는 곳으로 이민 준비합니다."

맘카페에는 미세먼지를 피해 청정지역으로 이민을 준비하는 가족들의 이야기가 많다. 이민에 성공해서 자리를 잡은 사람은 푸른 하늘 사진을 올려주기도 하고,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정보를 공유하며 진지하다. 장기적으로 이 땅의 공기에는 희망이 없다는 푸념이 넘친다.

"맘껏 못 노는 애들도 너무 불쌍하고. 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불쌍하고. 이제 해가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는데 이보다 더 심해지면 어떻게 살라는 거죠? 삶의 질이 완전 최악이네요. 형편 돼서 이민 가는 분들 너무 부러워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나도 이민을 가고 싶다. 이민에 성공하거나 준비 중인 가족들이 그저 부럽다. 기침하는 아이들을 두고 보기 안타까워도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은 그저 한숨만 쉬는 일이라니 우울하고 화가 난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미세먼지 관련 청원이 쇄도하고 이 가운데 '미세먼지의 위험 그리고 오염 및 중국에 대한 항의'라는 제목의 게시물에는 29일 현재 19만 명이 넘는 이들이 청원에 동참했다.

청원인은 미세먼지의 가장 주된 원인으로 중국발 미세먼지를 꼽으며 중국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외교적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이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단교와 국제소송도 고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세먼지에 대한 불편함 토로는 이민과 중국으로 끝나는 현실이다.

중국만을 향한 비난은 정당하지 않다

수도권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 이틀째인 27일 오전 서울 종로에서 차량들이 지나고 있다
 수도권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 이틀째인 27일 오전 서울 종로에서 차량들이 지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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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JTBC에서는 이렇게 오래가는 고농도 미세먼지 상황의 원인을 2가지로 요약했다. 먼저 중국, 그 중에서도 동쪽의 공업지대를 거친 바람이 한반도로 유입되고, 이어서 이런 바람이 유입된 직후 대기정체로 국내의 미세먼지가 그대로 쌓였기 때문에 최악의 공기가 되었다는 거다.

그러니 공기 질을 높이려면 중국의 미세먼지 배출을 줄여야 하고, 국내 자동차나 발전소에서 내뿜은 미세먼지도 함께 줄여야 한다. 중국만 탓하고 있을 수는 없다. 국가에서 강력하게 법을 만들고 세금을 투입하여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국민들에게 마스크나 공기 청정기를 보급하는 일은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다. 발전소 등 먼지 다량 배출사업장의 관리와 감시를 강화하고 전기차나 천연가스차 등 저공해 자동차 보급을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한다.

지원금을 통해 노후 경유차 조기 폐차를 유도하거나 전기차 충전소를 확대하여 장기적으로 미세먼지 저감을 시킬 수 있는 일에 적극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자해야 한다. 

미세먼지에 대한 푸념에 "중국이 망했으면 좋겠다. 중국 너무 싫다"는 반응이 많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비난이기는 하지만 꼭 중국의 문제로 단정 짓는 일은 불편하다.

중국의 미세먼지는 공장들이 많아서 그런 거고. 공장들은 전 세계로 저렴한 상품을 수출하기 위해 열심히 풀가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가 사용하는 물건 중에 대부분이 중국산 아니던가. 집안을 한 바퀴 돌아봤다.

지금 쓰고 있는 이 노트북도 Made in china. 방금 커피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인 커피포트도 제조국이 중국이다. 아. 커피를 마신 머그잔도 중국산. 등산화도 중국산. 아이가 잘 가지고 노는 장난감도 중국산. 여기 다 나열하지 못할 만큼 많은 물건들이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내 삶은 made in china로 채워있다.

내가 사용하는 물건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공장지대에서 최악의 미세먼지를 마시며 일하고 있는 중국인들을 향한 비난이 정당한가? 우리나라 기업들도 더 저렴한 인건비를 위해 중국에 나가있다. 결국 중국의 미세먼지는 나의 소비를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 거다. 중국만을 향한 비난은 정당하지 않다. 

미세먼지는 국가적으로 꼭 해결해야 하는 엄청난 재난이다. 국민들이 맘껏 숨쉴 수 있는 기본권보다 더 중요한 일이 뭘까.

지난해 우리 국민 1619만 명이 '급성기관지염'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미세먼지가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됐다고 한다. 미세먼지가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세로토닌 호르몬 분비를 저하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세먼지가 점점 심해지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에 좌절하는 사람이 많다.

정부는 구체적인 계획을 통해, 더 강력한 규제를 통해, 더 많은 공적자금 투자를 통해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희망을 줘야 한다. 물론 중국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외교적 해결 노력도 필요하다. 지금은 뚜렷한 비전이 보이지 않아 정말 너무 암담하다. 오죽하면 이민만이 답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쓰일까.


태그:#미세먼지, #중국, #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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