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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집에 돌아와보니 <어벤져스>의 피규어와 인형을 가지고 놀며 좋아하는 너희를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어. 그 중에서도 헐크는 아빠 어렸을 적에도 있었던 캐릭터였지. 그 때는 드라마에서 평범한 일반인이 녹색으로 분장한 보디빌더로 바뀌면서 사건을 해결하는 연출 수준이어서, 지금의 헐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조악한 캐릭터였지만, 그래도 아빠에게는 충분히 인상적인 영웅 캐릭터로 남아 있단다.

사실, 더 좋아했던 캐릭터는 '실베스타 스탤론'이란 배우가 연기했던 <람보>와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까지 했던 '아놀드 슈왈제너거'의 <코만도>라는 영화 캐릭터들이었지. 그 중에서도 코만도는 아빠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였어. 근육질의 주인공이 혼자서 몇백 명을 상대하는 전형적인 액션물의 전개도 그 때는 좋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을 남긴 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예쁜 여자 배우 '알리사 밀라노'였지.

극중에서는 아놀드의 딸로 출연했었는 데, 정말 예쁘다고 감탄했던 건 비단 아빠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거야. 중학교 때는 그녀가 가수가 되어 발매한 앨범을 열심히 흥얼거리며 다녔던 추억도 있고 말이야.

영화 <코만도>의 알리사 밀라노
 영화 <코만도>의 알리사 밀라노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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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잊어 버리게 되었지. 그녀도 성인이 되고 나서는 우리나라까지 알려질만한 활동들이 크게 없었던 것 같아. 하지만 그런 그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20년도 넘게 지난 지금 아빠와 네가 살고 있는 세상에 생겨나는 구나.

"Me too(미투)"라는 두 단어가 지금 한국 사회를 강하게 강타하고 있어. '하비 와인스타인'이라는 미국의 영화 제작자가 그 세계의 권력과 기득권을 이용해 수많은 여배우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폭로되었어. 그 후 누구라도 자신이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있다면 "나도 그런 일을 당했다" 한마디로 "Me too"라고 외치라는 한 여배우의 트위터 선언이 순식간에 번져 나가면서 2017년 하반기에 시작되었다고 해.

그 여배우가 누굴까? 금세 알았겠지만, 바로 '알리사 밀라노'였단다. 물론 그녀는 기폭제 중에 하나가 된 것이고, 그동안 곯아 왔던 문제들이 수면 위로 드러난 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아빠 역시 자연스레 지금 시대에 닥친 "Me too"라는 이슈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지.

한국판 '미투' 보며 떠오르는 영화

한지공예로 만들어진 여인상, 쑤저우 박물관
▲ 여인상 한지공예로 만들어진 여인상, 쑤저우 박물관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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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초 현상(한 반에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 보다 몇 명씩 더 많은 현상)이 보이기 시작해서 남자가 더 많던 초등학교(그 때는 국민학교) 시절을 보내고, 남중, 남고, 그리고 남자들이 우글거리는 과를 졸업한 탓에 사회가 얼마나 남성 위주로 성 역할이나 관계를 설정해왔는지 몰랐던 것 같아.

그러고 보니, 너희를 키워보기 전까지는 새삼 그게 어떤 의미인지 조차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해. 최근에 줄줄이 폭로되는 과거의 성추행, 성폭행에 연루된 사람들을 보면 정말 놀라게 되는데, 과연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에 연루되어 있을까?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것들까지 포함해서 본다면 아빠 역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바라보니 또 다른 면이 보였어. 한국에서의 미투는 요즘 화두가 되고 있지만, 이미 시작된 일이었어. 하지만 이제서야 미디어를 타고 증폭되는 과정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서지현이라는 검사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신이 당했던 8년 전의 성추행에 대해서 폭로했단다. 그 이후에 언론들은 미투를 앞다투어 다루기 시작했고, 유명한 연극 연출가 이윤택씨나 배우 조민기 그리고 한 때는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했던 안희정 충남도지사까지 줄줄이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이 찾아 오게 되었지.

그런데, 이 장면에서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어. 바로 <내부자들>이라는 영화였어. 영화 속에서 조직폭력배는 증거를 찾아서 정계, 재계, 언론계가 결합된 스캔들을 폭로하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조직폭력배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믿지 않아.

결국 현직 검사가 같은 사실을 폭로하게 되자 사람들은 주목하고, 그 스캔들은 세상을 흔들게 되지. 같은 스캔들을 말하는 그의 직업을 언론들은 묻지. '당신은 누구냐고' 그러자 그 배우는 말하지. '대한민국 검사라고'. 이미 폭로되었던 사건들이 다시 수면에 올라오면서 영화에서는 반전이 일어나게 되지.

영화가 아닌 현실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그동안 사회적으로 주목도가 낮은 사람들이 이미 억울하다고, 성추행, 성폭력을 당했다고 외쳤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가 지금 다시 재조명되고 있단다. 그렇다면 언론의 주목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일들은 얼마나 많이 무시당하고 묻혀있을까? 하는 점이야.

평범한 아니 그나마 약한 인지도가 있는 인물들이 고발한 것은 주목받지 못하고, 현직 검사가 텔레비전에 실명으로 인터뷰를 하고 나서야 세상이 움직이는 무정함에 놀라게 되는 거지. 영화보다 어찌보면 더 영화같은 현실이 2018년에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걸 바라보며 씁쓸해지기도 하고,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기초적인 상식이 지켜져야 하는 세상

하인리히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 산업재해가 발생하여 사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되면서 발견하게 된 법칙이지. 큰 사고는 항상 사소한 것들을 방치할 때 발생한다는 것이 핵심이 되는 이야기인데, 이 성폭력에도 적용해본다면 분명 드러나지 않은 일들은 더 많을 거야.

발생한 모든 사건에서 사회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그런 성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거부하기 힘든 상대를 고르고, 그들을 상대로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회 곳곳에 얼마나 더 많은 그런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지.

이번 일은 남녀의 경계를 가르거나, 남자를 통제해야 하는 것에 대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 상식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 생긴 문제인 것이지. 상대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야.

<호모 데우스>라는 책에서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하지. '살인이 나쁜 이유는 피해자의 가족, 친구들에게 끔찍한 아픔을 남기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성폭력은 본인에게 상처를 남기고,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아픔과 분노를 남기게 되지.

누군가는 이것을 성간의 대결처럼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하려고도 하지만, 이건 대부분의 남자에게도 필요한 변화라는 생각을 한단다. 왜냐하면 남자에게도 가족은 있기 마련이고, 어머니 없이 태어날 수 있는 인간은 없으니 구성원 중에 여자는 있을 수밖에 없지. 만약 그의 가족이 그런 상처를 입은 기억을 가지고 산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개로왕이 살던 시절에 백제나 현재나 힘있는 자들의 폭력은 여전한 건 아닐까?
▲ 백제 도성 사진 개로왕이 살던 시절에 백제나 현재나 힘있는 자들의 폭력은 여전한 건 아닐까?
ⓒ 허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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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역사적으로 강자는 적고 약자는 더 많았던 것처럼, 사회적으로 더 힘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가족 중에 누군가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성범죄를 시도한다고 생각해본다면 너무나 끔찍한 일이 아닐까?

삼국사기의 도미부인을 권력으로 범하려 했던 '개로왕' 같은 자는 현대판으로도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고, 힘이 없는 필부 '도미'처럼 자신의 가족이 좋지 않은 일을 당해도 제대로 대항하기 어려운 서민 남자들이 더 많은 것이 '현재'이자 '미래'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더욱 상식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는 게 모두에게 더 나은 세상이 아니겠니? 

입에 담기 부끄러운 일들이 매일 매일 터져 나오고, 내가 살았던 사회의 부끄러운 면들을 목격하면서 너희에게 설명해주기 힘든 날들이지만, 이번 일이 더 나은 세상, 즉 타인이 원하지 않는 것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초적인 상식이 당연하게 지켜져야 하는 세상으로의 한 걸음을 더 내딛은 거라고 믿어보자.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중복 게재할 수 있습니다(electricjin.blog.me)



태그:#미투, #서지현, #내부자들, #성폭력, #성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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