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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다'라는 단어를 발음해 봤다. '다타' 하고 조금 길게 호흡을 내뱉었다. 혀끝에서 '타' 하고 터지는 듯한 소리의 공명이 봄빛 새파랗게 돋아나는 새싹의 부드러운 떨림과 조우하는 것 같다. '닿다'는 사전적으로 어떤 곳에 이르다. 또는 어떤 물체가 다른 물체에 맞붙어 사이에 빈틈이 없게 되다는 뜻이다.

좁게는 글쓰기 수업에서부터, 넓게는 문화예술 교육사업을 통해 지역의 청소년들을 만났다. 첫 만남이 시작되는 4월 중순, 혹은 지금처럼 3월 말에 가장 실감하는 말이 '닿다'라는 말이다. 어떻게 저 아이들이 품고 있는 마음의 길에 좀 더 이를 수 있을까.

150년간의 근대적 교육의 산물인 학교는 어떻게 변했는가. 교육의 커리큘럼은 변했다고 하지만, 외관상 빽빽하게 줄을 맞추고 앉아서 일방적인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왜?"라는 질문 보다는 그저 암기에 익숙해야 하는 교실의 전경이 씁쓸하게만 느껴지기도 했다.

저마다의 아이들은 어른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질문도 궁금해 했다. 질문 자체를 꺼릴 수밖에 없는 지금의 교육 환경에서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나눌 상대를 찾는 것은 더 큰 힘이 든다. 차라리 혼자서 괜찮은 척 하는 것이 익숙한지도 모른다. 계속 그래야만 할까.

박연숙, 『소설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박연숙, 『소설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 지상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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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학교 베어드학부대학에 재직 중인 박연숙 교수가 책을 냈다. <소설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이다. 철학하기를 좋아하는 아마추어 철학자라 소개한 저자는, 소설에 말을 걸어 자아와 세계를 탐구한다. 그 대상은 청소년들이기에 난해한 철학적 용어 대신,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소설과 철학을 닿게 했다.

책은 전체 전체 3부로 구성되어 15개의 챕터를 다루고 있다. 언급한 소설로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변신>, <우아한 거짓말>,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필경사 바틀비>, <헝거 게임>, <기억 전달자>,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멋진 신세계>, <엔더의 게임>, <파랑새>, <어린 왕자>, <리버 보이>이다. 이 소설을 다 읽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저자는 친절하게 책의 챕터마다 줄거리를 요약하고 자신의 감상을 덧붙였다.

철학은 왜 하는가? 저자는 '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대학 전공으로 철학을 선택했단다. 철학과 소설의 만남이란 인간의 존재와 가치를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읽어내는 작업이라고 저자는 책에서 밝혔다.

자신이 누구인지, 다른 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자유가 무엇인지, 자신이 꿈꾸는 이상향은 무엇인지,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려면 사유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를 등대 불빛처럼 비췄다.

매슬로우의 인간 욕구 5단계 이론 중 가장 높은 단계가 자아실현의 욕구라고 했다. 생리, 안전, 사랑과 소속, 존경의 욕구가 모두 채워졌을 때 인간은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 극대화 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잠재력을 끌어 내기 위해 저자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책 제목대로 문답법이다. 예를 들어 아름다움은 도대체 무엇일까?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 믿어도 될까? 자유, 목숨보다 더 중요할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성일까 등이 그렇다.

"소유 양식의 사람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발견하는 대신 기계적인 반복 학습으로 목표 달성에 최선을 다합니다. 반면 존재 양식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수동적으로 선생님 강의를 듣고 필기하고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에서 강의 내용을 듣고 그에 반응하며 자신의 생각을 깊이 있게 하고 자신의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에 관심을 갖습니다."(213~214쪽)


어쩌면 저자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구절일지도 모르겠다. 능동적인 삶의 태도를 덧붙이기 위해 저자는, 니체,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벤담, 데카르트에서 부터 마지막 에리히 프롬까지 청소년 독자를 이끌었다.

어른이라고 정답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란다. 다만 네가 했던 고민을 나도 해봤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함께 다시 고민해보며 삶의 방향을 찾아보자고 말하는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 영국 시인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 인빅터스의 마지막 구절을 인용했다.

어둠의 공포만이 거대하고 절박한 세월이 흘러가지만 나는 두려움에 떨지 않으리. 지나가야 할 문이 얼마나 좁은지 얼마나 가혹한 벌이 기달릴지는 문제되지 않는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다. (233쪽)


각자가 직면한 고통이 크든 작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에 대한 질문 후 찾아오는 나에 대한 온전한 공감은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 내지는 존중의 감정을 키우는 일이다.

궁극에는 그것이야말로 공동체를 생각하는 삶이다. 남이 시혜처럼 주는 선물이 아닌 내게 절로 다가온 영혼의 울림 같은 것. 책의 대상은 청소년이었지만, 마음이 여린 어른이 읽어도 좋은 책이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고, 자신과 만나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의식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반성하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지를 묻지 않는다면, 영혼 없는 좀비와 다를 바 없습니다." (235쪽)


소설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 문득 당연한 것이 궁금해질 때 철학에 말 걸어보는 연습

박연숙 지음, 지상의책(2018)


태그:#박연숙, #소설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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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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