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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어, 빵은 부스러지지 않게, 맥주는 시지 않게 해주소서'(Ebers Papyrus, BCE, 1552)

건조하고 메마른 아프리카 사막 한켠으로 푸른 빛 강물이 흐른다.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 이 물줄기는 남수단을 거쳐 이집트까지 6700km의 여행을 시작한다. 이집트의 유일한 강, 나일강이다.

나일강 이집트와 나일강
▲ 나일강 이집트와 나일강
ⓒ Jacques,N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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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기원전 9000년 전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시작했다. 매년 7월부터 9월까지 범람한 나일강은 이곳에서 수렵과 낚시로 연명했던 인류에게 비옥한 땅을 선물했다. 이 땅은 풍요로운 야생 밀과 보리를 제공했다. 인류는 이 밀과 보리를 재배하는 법을 통해 잉여생산물을 비축했고 자연스럽게 권력과 부족국가가 탄생했다.

그러나 인류 4대 문명 중 하나인 이집트 문명은 4000년이 지나서야 생겨났다. 메소포타미아와 마찬가지로 이집트 문명의 씨앗을 키운 것은 농경이 아니라 홍수였다. 나일강의 발원지 에티오피아, 이곳에서는 매년 여름 폭우가 내렸다.

폭우가 만든 큰 물줄기는 남수단을 지나 이집트로 오면서 잔잔한 나일강 줄기를 거친 황소와 같이 만들었다. 나일강의 홍수로 인한 범람은 비옥한 땅을 만들었으나 이집트인들의 터전까지 빼았았다. 7월부터 9월, 이집트 인들은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곤 했다.

메네스. 기원전 3000년 경 이집트 최초의 통일 국가를 세운 왕. 통일 이집트의 강력한 왕이었던 그는 멤피스에 수도를 정하며 나일강의 홍수를 막기 위한 댐을 계획했다. 멤피스 전체를 둘러싼 이 거대한 댐을 건설하는 일은 이집트인들에게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 경이로운 토목공사를 성공적으로 끝낸 후, 이집트인들은 자연을 다룰 수 있는 과학기술과 큰 자부심을 얻었다. 드디어 가장 강력하고 화려한 문명이 이집트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집트인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죽음 이후에도 현재의 삶이 이어지며, 죽음은 현세와 내세를 잇는 정거장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순간을 즐기며 행복하게 사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신을 믿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면 죽음 이후의 삶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이집트의 왕, 파라오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였다. 따라서 파라오가 사후에 지내야 할 무덤은 그 어떤 것보다 화려해야 했다. 우리의 예상과 달리 피라미드 건설은 착취와 고통의 결과가 아니었다. 이집트인들에게 파라오의 무덤을 짓는 일은 힘든 일이었지만 즐거움이자 자부심이었다. 피라미드는 노예가 아닌 농민과 같은 자유인 그리고 석공과 같은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국가의 대역사(役事)에 참여하는 일은 단순히 자부심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는 나와 가족의 생존을 위한 일이었다.

나일강이 범람하는 7월부터 9월까지 농민들은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이들은 피라미드와 신전 건설에 자발적으로 참여했고 그 노동의 대가로 빵과 맥주를 받았다. 빵과 맥주는 이집트인들의 하루 세 끼를 책임지는 주식이었다. 특히 맥주는 고단한 몸과 지친 정신을 보듬어주는 존재였다. 메소포타미아에서 건너왔지만 맥주는 이집트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고 음용되었다.

커다란 자(jar)에 둘러앉아 갈대로 만든 빨대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은 이집트에서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소통할 때, 남녀간 사랑을 고백할 때도 항상 함께 한 음료는 맥주였다.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하층민부터 귀족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맥주를 마셨다. 이들에게 맥주는 술이 아니고 소통을 위한 매개체였으며 생명수였다.

오시리스의 눈에서 흘린 눈물, 호루스의 눈을 마시게나

 이집트 피라미드
 이집트 피라미드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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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리스(Osiris), 그는 이집트의 농경과 초목의 신이다. 신화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를 이집트의 왕이라 칭하고 최초의 왕이 되었다. 그는 백성을 야만에서 해방시켰으며 율법과 농경법을 전수해 주었다. 오시리스는 이집트인들에게 풍요와 질서를 선물했다. 그가 농업과 풍요를 상징한다면 그의 넷째 오누이이자 아내인 이시스(Isis)는 지혜의 여신이자 곡물의 여신, 그리고 맥주의 여신이었다. 이시스는 인간에게 맥주 만드는 법을 전수했다고 한다.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파라오 뿐만 아니라 이집트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들의 존재를 시기하는 신이 있었으니 바로 오시리스의 셋째 동생 세트(seth)였다. 사막의 신이자 폭풍의 신 세트는 오시리스를 질투한 나머지 그를 죽인 후, 이집트를 통치할 계획을 세운다.

세트의 계략에 의해 죽음을 당한 오시리스는 그를 담은 관과 함께 강에 버려졌으나 다행히 이시스에게 발견되었다. 그러나 세트는 다시 오시리스의 시체를 찾아 몸을 14갈래로 찢어 강에 버린다. 이후 이시스는 시체의 조각을 찾아 부활시키고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를 낳게 된다.

수년 후 호루스와 이시스는 세트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이집트를 되찾게 된다. 호루스는 오시리스를 부활시키지만  그는 저승으로 돌아가 내세를 통치하는 신으로 남게 된다. 이후 오시리스는 이집트인들에게 농업과 풍요의 신일 뿐만 아니라, 부활의 신 그리고 저승을 관장하는 신이 된다.

'오시리스의 눈에서 흘린 눈물, 호루스의 눈을 마시게나.'

고대 이집트의 장례식 진행 중, 제사장은 맥주 한 잔을 놓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기서 오시리스의 눈물은 맥주를 의미한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선물 중 하나가 맥주였던 것이다. 이집트 최초의 왕이자 내세를 지배하는 신인 오시리스의 눈물을 맥주로 묘사한 것을 보면 맥주가 이집트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엿볼 수 있다.

맥주 먹고 토하는 즐거움을 허하노라

 이집트인들에게 생명수 같았던 맥주
 이집트인들에게 생명수 같았던 맥주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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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t(heqet), tnmw(tenet), haAmt(kha-ahmet). 이집트인들은 맥주를 이렇게 불렀다. 이집트에서 맥주를 만드는 일은 예술로 생각되었다. 맥주를 만드는 사람은 모두 여자였는데 이들은 모두 큰 존경을 받았다. 맥주 양조 방법을 가르쳐 준 것은 이시스였으나 맥주 양조장을 돌봐주는 신은 테네니트(Tenenit)라는 여신이었다. 수많은 양조장이 이집트 전역에 있었으며 테네니트에 의해 좋은 맥주가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이집트에서 맥주를 마시고 즐기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서기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과도한 음주는 권장되지 않았다. 상류관료인 서기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기간 많은 공부를 해야했다. 서기 지망생들이 공부에 지장을 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취했을 경우, 강한 체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이집트인들이 술을 마시고 토해도 되는 시기가 있었다. 바로 축제였다.

이집트 최고의 신인 라(Ra)는 태양의 신이자 파라오의 숭배 대상이었다. 라는 매일 12시간 배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한다고 여겨졌으며 파라오는 그의 아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라에게도 반기를 들었던 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라는 그의 신전이던 헬리오폴리스에서 자신을 반역하려는 무리를 발견하게 된다. 라는 크게 분노하여 자신의 딸인 하토르(Hathor)에게 자신을 반역한 인간들을 죽이라고 명령한다. 본래 하토르는 하늘과 별의 여신이자 인간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쳐 준 행복을 상징하는 신이다. 하지만 하토르는 두가지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분노와 파괴의 신인 세크메트(Sekhmet)가 그녀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세크메트가 된 하토르는 반역의 무리를 말살했다. 그러나 인간의 피를 맛본 그녀는 살육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곧 세크메트에 의해 인간의 세상은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녀를 힘으로 제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라는 작은 지혜를 낸다. 그는 인간에게 7000통의 붉은 맥주(Red beer)를 양조하게 한 후 들판이 모두 붓도록 했다. 붉은 색의 맥주가 인간의 피인 것으로 착각한 세크메트는 이를 모두 마시고 취해 잠이 들었다. 평온히 잠든 세크메트는 다시 하토르로 돌아왔고 인간은 멸종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집트에서 하토르를 찬양하는 축제는 여름에 열렸다. 여름은 나일강이 범람한 후 적갈색 땅을 선물하는 시기였다. 축제 때 사람들은 나이와 신분에 관계없이 맥주를 마시고 밤새 즐겼다고 한다. 이때 취하는 것은 전혀 흉이 아니었다. 인류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인 맥주를 마시고 취하는 것이 어찌 흉이 될 수 있었을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피라미드는 사막의 먼지와 함께 그 화려했던 기억만을 남기며 쓸쓸히 사막 위에 남아있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이집트 왕조는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이집트는 그리스 로마와 비잔틴의 지배를 거쳐 서기 641년 이슬람의 국가가 된다. 노동의 괴로움을 잊게 해주었던, 사람 사이를 소통하게 해주었던, 축제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했던 맥주는 더 이상 이집트에서 찾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고통으로 얼룩져 있을 것 같았던 피라미드가 사실 이집트인들의 삶을 지켜주는 한 부분이었음을 맥주를 통해 깨달았다. 그들의 노동은 위대한 왕의 사후세계를 위한 즐거움이었음을,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맥주를 얻기 위함이었음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퇴근 후 치킨과 함께 마시는 한 잔의 맥주 또한 우리에게 생명수와 다름아닌가? 맥주 한 잔에서 인생의 행복을 찾았던 5000년 전의 이집트인들처럼. 

<참고문헌>
야콥 블루메 저, <맥주, 세상을 들이켜다>, p.44
손주영, 송경근 공저, <이집트역사 다이제스트100>, p.31
https://www.history.com/topics/ancient-history/the-egyptian-pyramids
https://www.ancient.eu/Beer/
http://www.ancientegyptonline.co.uk/beer.html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사)한국맥주문화협회장으로 '맥주는 문화'라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브런치에도 중복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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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맥주문화협회장으로 '맥주는 문화'라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beergle@naver.com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출판 담당 기자로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ohmybook20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