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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외숙 법제처장이 26일 오후 '대통령 개헌안'을 국회에 송부하려고 국회 입법차장실을 방문해 진정구 차장에게 대한민국헌법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 가운데는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 국회에 제출된 정부 개헌안 김외숙 법제처장이 26일 오후 '대통령 개헌안'을 국회에 송부하려고 국회 입법차장실을 방문해 진정구 차장에게 대한민국헌법개정안을 제출하고 있다. 가운데는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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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말을 준말로 바꾼 것은 아주 뜻밖

지난 3월 22일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헌법 개정안은 청와대 홈페이지에서도 다운받아 살펴볼 수 있다.(https://www1.president.go.kr/Amendment)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헌법을 다운받아 에이포(A4)에 올려놓아 보니 열여덟 장 남짓 된다.
대한민국 헌법 개정안을 발표할 때 조국 민정수석은 법조문 말을 쉽게 다듬었다고 했다. 본말을 준말로 바꿔(제시하여야→제시해야, 아니한다→않는다) 친숙한 문장이 되게 했고, 일본 말투를 활력 있는 우리 말법으로 다듬었고(의하여→따라, 행위로 인하여→행위로), 한자를 우리말로 바꿔(證據湮滅의 염려→증거를 없앨 염려, 助力→도움) 말을 편하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빈말이 아니다. 아래에 다듬은 것을 낱낱이 들어본다.

의하여→따라, 보장된다→보장한다, 국민→사람, 자(者)→사람(몇 곳은 여전히 '자'로 되어 있다), 제시하여야→제시해야, 아니한다→않는다, 행위로 인하여→행위로, 유죄의 판결→유죄 판결, 추정된다→추정한다, 당해→해당, 근로자→노동자, 국회 외에서→국회 밖에서, 행한다→수행한다, 집회된다→연다, 1인→1명, 기타의→그밖의, 환부하고→돌려보내고, 기간 내에→기간 안에, 경과함으로써→지나면, 의결을 얻어야→의결을 거쳐야, 계약을 체결하려 할 때에는→계약을 맺으려면, 찬성이 있어야 한다→찬성해야 한다, 저촉→위반,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권한을 행사하지 못한다, 속한다→있다, 대통령의 선거→대통령 선거, 교전상태에 있어서→교전상태에서, 때에 한하여→때에만, 얻어야→받아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법률로 정하는 바에 따라, 훈장 기타의→훈장을 비롯한, 관하여는→관한 사항은

특히 법조문에 들어 있는 일본말과 일본 말법을 우리말과 우리 말법으로 다듬었다. 개정안을 살펴보면 얼마나 마음을 썼는지 한눈에 보인다. 사실 헌법을 정하고 여덟 차례에 걸쳐 개정을 했지만 이와 같이 말을 다듬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그도 일본말과 일본 말법을 우리말과 우리 말법으로 고쳤다는 것은 마땅히 칭찬해야 하고 박수 받을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만 바꿔도 헌법 조문이 쉽게 읽히는데, 본말을 준말로 바꾼 것은 그야말로 뜻밖이었다.

사실 이것은 우리나라 어문 교육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는 수정이라 할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초·중·고등 교과서에서 준말이 사라졌다. "공부를 했다" 하지 않고 "공부를 하였다" 하고 있다. '했다'가 '하였다'의 준말이기 때문에 안 쓰는 것이다. 심지어 교과서에 들어와 있는 문학 작품 속 준말도 죄다 본말로 바꾸고 있다. 그래서 요즘 대학생들은 "축구를 했다" 하지 않고 "축구를 하였다" 하고 쓴다. 그런데 실제 입으로 하는 말은 모두 준말이다.

글을 쓸 때 본말을 쓰게 하는 것은 말과 글의 간극을 더 벌려 놓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말은 준말이 아주 발달해 있다. "(너는) 주말에 어디(를) 다녀왔어?" "응, (나는) 부산(에) 갔다 왔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준말뿐만 아니라 주어('너와 나')도 조사('는, 를, 에')도 생략해 버린다. 우리말의 '경제성'이다. 이렇게 봤을 때 우리나라 어문 교육 정책의 '본말 쓰기'(준말 안 쓰기)는 우리말의 특성에 반하는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또 우리나라는 말과 글의 간극이 아주 심한 나라에 든다. 영어권에서도 '쉬운 영어 쓰기 운동'(Plain English Campain)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관공서 문서나 고지서뿐만 아니라 일반 회사의 문서도 쉬운 영어로 쓰고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과 가까운 영어를 쓰는 정책이다.

김제동은 우리 헌법 조문을 달달달 외는 사람이다. 2017년 9월 13일, 그는 MBC 노조 파업 현장을 찾아가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면서 힘을 보탠다. 그는 연설 말미에 가장 좋아하는 시 한 구절을 읽겠다고 하면서 자신이 먼저 한 구절 읽으면 따라 읽고, 이렇게 같이 읽자고 한다. 김제동이 읽은 시는 ‘헌법 전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이 시는 한 구절씩 끊어 읽기에 힘들다. 그래서 그 또한 그렇게 읽지 않고 죽 읽고 만다. 한 문장치고는 너무 길기 때문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K7lnxrzut80)
▲ 김제동과 헌법 전문 김제동은 우리 헌법 조문을 달달달 외는 사람이다. 2017년 9월 13일, 그는 MBC 노조 파업 현장을 찾아가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면서 힘을 보탠다. 그는 연설 말미에 가장 좋아하는 시 한 구절을 읽겠다고 하면서 자신이 먼저 한 구절 읽으면 따라 읽고, 이렇게 같이 읽자고 한다. 김제동이 읽은 시는 ‘헌법 전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이 시는 한 구절씩 끊어 읽기에 힘들다. 그래서 그 또한 그렇게 읽지 않고 죽 읽고 만다. 한 문장치고는 너무 길기 때문이다.(https://www.youtube.com/watch?v=K7lnxrzut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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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5자, 200자 원고지로 2.4장이나 되는 글이 한 문장

헌법 개정안 가운데 '전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전문(前文)은 말 그대로 헌법 조문 앞(前)에 있는 글이고, 보통 글에서 서문이나 머리말에 해당한다. 헌법에 전문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헌법에는 법조문 앞에 제법 긴 전문을 두어 대한민국의 역사와 우리 겨레가 나아갈 길을 자세히 말하고 있다.

헌법 전문과 관련하여 가장 뜨겁게 논쟁이 되었던 부분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이 말은 4조에도 있다)에서 '자유민주'라는 말일 것이다. 이것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같은 사회 체제를 뜻하는 말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뜻하는 말로 해석하느냐의 문제로 갈려 논쟁을 해왔다. 지난 1월 2일 국회 헌법개정특별위 자문위원회 개헌안은 이 낱말을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로 손을 보았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이 구절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또 자유와 민주를 한 칸 띄어 쓰지도 않았다.

또 하나 자주 문제 삼았던 것은 헌법 전문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글자만 395자(공백까지 하면 499자), 200자 원고지로 2.4장이나 되는 글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어 읽기에 숨이 차고, 뜻이 훤히 드러나지 않고 읽을수록 도리어 어수선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 문장으로 나누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 왔다. 특히 초등학생이 읽기에 너무 길고, 어렵다는 점도 있다. 헌법을 쉬운 말로 쓰면 권위가 떨어진다는 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권위의 문제라기보다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의 기본권(개헌안 10조 '행복할 권리', 11조 ①항 '법 앞에 평등할 권리', 22조 ①항 '알 권리')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알기 쉬운, 글자만 알면 읽어 바로 알 수 있는 법률, 행정 절차, 행정 문서를 요구할 수 있고, 또 끊임없이 다그쳐야 한다.

이번 개헌 헌법 전문에서 더하고 뺀 곳

초등학생 또한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다. 3월 20일 조국 민정수석은 '문재인 대통령 개헌안 1차 발표'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이번 개헌은 첫째도 둘째도 국민이 중심인 개헌이어야 함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또 "어린이·청소년·노인·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한편,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더구나 이번 개헌안에는 제36조에 ①항을 추가했는데, 그 내용은 "어린이와 청소년은 독립된 인격주체로서 존중과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이다. 하지만 이번 헌법 개정안 '전문'은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어렵고, 여전히 한 문장이고 길다.

아래에 개정 헌법 전문을 들어본다. 빨간 글씨에 밑줄을 그은 곳은 이번 개정안에 더한 것이고, 파란 글씨로 괄호 안에 가운뎃줄을 그은 곳은 지운 것이고, 그 앞뒤로 파란 글씨로 된 것은 다듬은 것이다. 다듬은 곳은 모두 여섯 곳이고, 이 가운데 '우리들의 자손의'는 '미래 세대'로 고쳤는데 차라리 '우리 자손의'로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혁명,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 6·10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을 바탕으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치와 분권을 강화하고,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개개인(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과 지역간 균형발전 도모(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자연과의 공존 속에서 우리들과 미래 세대의(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9(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지금 우리 헌법은 오른쪽과 같이 거의 한자로 되어 있고, 조사와 동사 정도만 한글로 되어 있다. 이번 개정안은 이렇게 씌여 있는 것을 한글로 고쳤을 뿐만 아니라 알기 쉬운 우리말로 다듬었다. 《내 손 안에 헌법》(고인돌, 2017) 35쪽
 지금 우리 헌법은 오른쪽과 같이 거의 한자로 되어 있고, 조사와 동사 정도만 한글로 되어 있다. 이번 개정안은 이렇게 씌여 있는 것을 한글로 고쳤을 뿐만 아니라 알기 쉬운 우리말로 다듬었다. 《내 손 안에 헌법》(고인돌, 2017) 35쪽
ⓒ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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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오덕이 다듬은 헌법 전문
 
1997년 이오덕(1925∼2003)은 대한민국 헌법을 알기 쉽고 간결하게 다듬어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지식산업사)를 펴낸다. 이 책은 2017년 고인돌 출판사에서 <내 손 안에 헌법>으로 다시 출판했다. 아래 헌법 전문은 이오덕이 우리말과 우리 말법으로 다듬어 놓은 것이다. 이오덕은 전문(前文)이란 말도 괄호 안에 한자를 쓰지 않으면 전문(全文)과 혼동이 되기 때문에 아주 '앞글'로 하자고 한다.

오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이어받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 통일의 사명을 따라서 정의·인도와 동포 사랑으로 겨레의 단결을 튼튼히 하고, 모든 사회의 나쁜 버릇과 옳지 못함을 깨뜨리며, 자율과 어울림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의 기본 질서를 더욱 튼튼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사람마다 기회를 고르게 하고, 능력을 한껏 떨쳐내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 생활을 고르게 높이고 밖으로는 오래 세계 평화와 인류가 함께 번영하는 데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 자손의 안정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마련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 제정하고 여덟 번에 걸쳐 고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따라서 고친다. (<내 손 안에 헌법> 26∼28쪽)
'완수'와 '영원히 확보', 주어와 술어가 잘 안 맞아 비문

이렇게 고쳐 놓은 것을 어떻게 볼지는 저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읽어 보면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초등학생도 옛날 공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도 읽어 바로 알 수 있는 말로 되어 있다. 또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알아들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정신만큼은 받아 안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이번 개정안 전문을 보면서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구절에서 '완수'와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에서 '영원히 확보'가 좀 걸렸다. 완수(完遂 완전할완·이를수)는 말 그대로 '뜻한 바를 완전히 이루거나 해낸다'는 말인데, 대한민국 국민에게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한다는 말은 너무 과하지 않나 싶다. 또 군사 정권 시절의 '권위'가 들어가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설령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과 안위와 복지를 살뜰히 챙기는 국가와 정부라 하더라도 그 나라 국민에게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라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다. 도가 지나친 말이다.

그리고 전문의 주어(주체)가 '대한국민'인데, 이 주어가 자기자신에게 "완수하게 하여"는 어울리지 않는다. 바로 앞 "발휘하게 하며"도 마찬가지이다. 또 뒤에 나오는 "제정되고"와 "개정된" 또한 그 주어는 '대한국민'이기 때문에 '제정하고', '개정한'으로 해야 한다. 문장이 길다 보니까 주어와 술어가 잘 맞지 않은 것이다. '영원히 확보'한다는 말도 앞에 더한 "자연과의 공존 속에서"와 어울리지 않는다. 확보(確保 확실할확·지킬보)는 말 그대로 확실하게 자신의 것(안위와 이문 같은 것,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을 지킨다는 말이다. 앞에서는 심각하게 '자연과의 공존'(엄격히 말하면 '자연환경과의 공존'이라 해야 한다)을 말해 놓고 뒤에 가서는 '딴소리'(인간 중심의 말)를 하는 꼴이 아닌가 싶다. 더구나 '영원히' 확보한다고 하니 더 마음에 걸린다. 이오덕은 '완수하게 하여'를 '다하게 하여'로, '영원히 확보할'을 '영원히 마련할'로 했는데, 나는 '다하고'와 '마련할'로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에 있어서"나 "에 의하여" 같은 말은 뒤 법조문에서는 모두 '에서' '에 따라'(또는 '로')로 고쳤는데, 여기 전문은 그대로 두었다. 이것 또한 뒤 조문처럼 고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오덕도 이 전문이 한 문장으로 되어 있는 것이 내내 걸리기는 했다. 그런데도 그는 이것을 그대로 두고 다듬었다. 그는 그 까닭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헌법 '앞글'은 글월 하나가 너무 길게 되어 있어서 매우 읽기가 거북한데, 이것을 알기 쉬운 글로 하자면 마땅히 몇 토막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자면 보태고 깎고 해야 할 말이 있어야 하겠기에 법조문을 함부로 고치는 일도 조심이 되어 그만두었다. 그러다 보니 낱말 고치는 일도 이 '앞글'에서는 시원스럽게 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 두고 싶다. (<내 손 안에 헌법>,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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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오덕, 《내 손 안에 헌법》(고인돌, 2017) 표지 ·
ⓒ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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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와 '사용자' 그리고 '고용자'

이번 헌법 개정안에는 잘못 쓴 말을 고친 곳(붙이지→부치지, 증가하거나→늘리거나)도 있다. 그런데 '때'를 '경우'로 바꾼 것은 아주 적절하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바란다면, '사용자'란 말이다. 3월 20일 조국 민정수석은 "국가를 떠나 보편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천부인권적 성격의 기본권에 대해서는 그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하고, '근로'를 '노동'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이것은 이번 개헌이 "자유롭고,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 국민이 중심인 개헌"이 되고자 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헌법 조문에서 '근로'가 '노동'으로 바뀌면서 '근로자'는 '노동자'가 되었다. 그런데 '사용자'는 여전히 '사용자'로 되어 있다. 헌법이 '인간다운 삶'을 담아내고, '사람'을 중심에 놓고, 사람 나고 법 났듯이, 사람이 '사람을 사용한다'는 것은 아주 무서운 말이고, 그런 세상이라면 이미 사람다운 세상이 아닐 것이다. 누가 나를 비누나 휴지처럼 '사용하고' 있다면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나는 사용자보다는 '고용자'가 그래도 더 나은 말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하면 노동 관련 법률에서도 모두 고쳐야 하겠지만 법의 기본법인 헌법만이라도 고쳐 놓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얼마 전 오마이뉴스 이무완 기자가 이번 정부 개헌안의 낱말과 구절을 꼼꼼히 살펴보고, 그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일본말과 일본 말법, 한자말, 영어 말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낱낱이 정리하여 기사(‘대통령 개헌안, 우리말로 다시 쓰기①∼⑥’)를 썼다. 이 기사는 이곳(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17386)에 가면 볼 수 있다.



태그:#김찬곤, #대한민국 헌법 전문, #본말 준말, #헌법 전문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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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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