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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을 처음 접한 것은 스무 살 때였다.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어느 날 자신의 입원 소식을 전해왔다. 문병을 갔다가 그녀의 어머니를 만났다. 나를 밝게 맞아주셨던 어머니는 이내 눈물을 보이셨다.

"내가 잘못된 거야. 내가 뭔가를 잘못한 거야."

나는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위로했다. 눈물을 닦으시며, 어머니는 내게 부탁하셨다. 부디 자주 와달라고. 와서 당신의 딸에게 활기를 좀 전해주라고. 하지만 울상을 한 친구 앞에서 밝은 모습을 보이기란 쉽지 않았다. 노력했지만, 전염되는 건 주로 내 쪽이었던 것 같다.

'죽음만을 생각한다'는 친구에게, 스무 살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모든 사람은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너 역시 살아야만 한다고, 근거 없는 허술한 주장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의문을 가졌다. 과연 우리 모두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로부터 이십년 가까이 지났다. 다행히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지금이 행복하기에, 내 삶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또 삶이 힘들다는 이가 곁에 있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여전히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미숙하고, 누구도 설득할 수 없겠지만, 그 대신 추천할 만한 책 한 권을 알고 있다. 바로, 오카다 다카시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책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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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로서 인생의 위기에 직면한 사람들을 만나왔던 저자는, 과학적 접근과 의학 지식만으로는 사람을 고통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죽고자 하는 사람을 합리적 이유로 설득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미 힘겨운 시간들을 지나온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으로, 삶이 힘든 이들에게 용기를 건네고자 한다.

"나는 이 책에서 삶의 고통을 짊어지고 고난과 불합리한 시련에 직면하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더라도 끊임없이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는 인간, 의미와 용기를 얻기 위해 고투하는 시행착오, 그리고 그것이 다다른 궁극의 지혜를 말하려 한다." (pp10-11)


1장의 소제목은 '부모와 사이가 나쁜 사람에게'다. "지나치게 짧은 쇠사슬로"(p27)로 부모와 이어져 몇 번의 자살 기도를 했던 저자의 지인과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한 절망을 가졌던 쇼펜하우어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도, 서로에게 불행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자식간의 관계일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쇼펜하우어가 가장 창조적일 때는 어머니와의 불화가 심했을 때라고 한다. 저자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 갈구와 그것이 충족되지 않아 느낀 격한 욕구불만이 그에게 창조적 에너지를 공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통을 지적 발전으로 승화시킨 그로부터, 뭉클한 감동이 전해진다.

"어머니에게 맞서기 위해서라도 그는 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처럼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패배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는 나름대로 자신을 확립하고 자신을 긍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와 갈라서고 반목을 계속한 것이 그에게는 인생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 셈이다." (p51)


2장은 '자기부정과 죄악감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여러 번의 자살 예고로 부모와 그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던 남자가 있다. 바로 <데미안>의 작가, 헤르만 헤세다.

"그의 인생은 삶의 고통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죽음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남은 역사이기도 했다. 죽음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깨끗이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쉰 살 이후의 일이었다." (p56)


어린 시절의 말썽으로 인한 부모로부터의 외면은, 헤세에게 '안전기지'가 없다는 불안을 심었을 것으로 저자는 해석한다. 부모와의 관계가 안정적일 때, 아이는 불안을 쉽게 느끼지 않고 탐구심과 사회성 등을 기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안전기지에 대한 필요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마찬가지라고.

헤세는 부모 대신 친구, 그리고 쉰이 넘어 만난 세 번째 아내를 안전기지로 삼았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줄 안전기지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말을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따라서) 안전기지 같은 존재를 원한다면 자신도 상대에게 안전기지가 되어야 한다. 함께 있을 때 편한 관계를 맺는다면 자연스럽게 상대도 자신에게 안전기지가 되어줄 것이다. 당신이 안전기지를 계속 갖고 싶다면 당신 역시 상대에게 지속적으로 안전기지가 되어주어야 한다." (p84)


헤세는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한 슬픔과 죄의식으로 위험한 일까지 벌이곤 했지만, 결국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나 이탈함으로써 자신을 구속했던 모든 것을 깨려고 했"(p69)고, 성과를 거둔다. 책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로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리 훌륭한 가치관일지라도 자기 선택이 아닌 부모의 선택이라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부모가 지어준 옷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자기가 본래 원하는 삶을 입을 수 없기 때문이다." (p70)


3장은 '자신답게 살 수 없는 사람에게'로, 자기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조언이 담겼다. 저자는 의무와 책임, 자유와 가능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은 지극히 인간다운 일이며,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 균형을 찾을 것을 권한다.

그 외에도 4장 ''굴레'에 속박된 사람에게', 5장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6장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철학', 마지막 7장은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서'로 책을 맺고 있다. 각 장마다 슬픔을 삶의 에너지로 바꿀 수 있었던 나쓰메 소세키, 서머싯 몸, 장 자크 루소 등의 이야기가 실려 흥미와 감동을 함께 전한다.

당신이 지금 행복하다면, "힘겨운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철학 처방전"(부제)은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느 힘겨운 날 문득 떠올릴 수 있는 비상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혹시, 당신이 지금 힘들다면, 고통을 겪었던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나 보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그들을 연민하다가 당신이 위로받는다면, 참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 힘겨운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철학 처방전

오카다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책세상(2018)


태그:#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오카다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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