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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엔 가슴 아픈 일이 많이 있습니다. 힘이 없어, 지혜가 부족해서 어려움을 당했다고 배웠습니다. 왜 우리 주변에 고통 당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길까요. 왜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 할까요. 누군가를 꼭 적으로 만들어야만 나머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걸까요. 다 같이 평화롭게 잘 살 수는 없는 걸까요. 이런 질문을 품고 역사 현장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을 넘어 몸으로 연결되는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제주입니다. 제주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면 기대감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막상 기도순례를 떠나려고 했을 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70년 전, 그리고 그 이전부터 제주가 겪어야했던 가슴 아픈 역사를 알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지금도 갈등과 아픔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변화를 갈망하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너와 나, 우리와 너희를 넘어 모두의 생명평화라는 간절한 마음 품고 기도순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라산 구상나무 숲의 외침, 어떻게 살아야 할까?

3월 17일 일정은 한라산 순례였습니다. 기도순례와 산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처음 한라산 얘기를 들었을 때 가졌던 생각입니다. 그러다 제주 사람들에게 늘 든든한 배경처럼 자리 잡고 있을 한라산을 직접 몸으로 경험하고 싶어 마음 내서 산에 오르기로 했습니다.

산 오르기 앞서 간단히 몸 풀고, 굳게 마음먹으며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초반부는 완만해서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걷다보니 몸도 따뜻해지고, 나무들이 발산하는 좋은 기운 맡으며 가볍게 올랐습니다.

기분 좋게 걷는 길은 길지 않았습니다. 중턱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숨이 가빠오고 근력의 한계를 느꼈거든요. 이때부터 제 자신과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산을 오르려 했는지 떠오르지 않고 힘들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울 무렵, 구상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구상나무는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일대에만 자생하는 우리나라 토박이 나무입니다. 학명조차 ‘Abies Koreana’이지요. 하지만 100여 년 전 구상나무의 가치를 알아본 윌슨이라는 식물학자에 의해 변종된 ‘아비에스 코리아나 윌슨’은, 이제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해져 우리나라에서 조차 비싼 로열티를 내고 사야 하는 형국이 되었지요.
 구상나무는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일대에만 자생하는 우리나라 토박이 나무입니다. 학명조차 ‘Abies Koreana’이지요. 하지만 100여 년 전 구상나무의 가치를 알아본 윌슨이라는 식물학자에 의해 변종된 ‘아비에스 코리아나 윌슨’은, 이제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해져 우리나라에서 조차 비싼 로열티를 내고 사야 하는 형국이 되었지요.
ⓒ 신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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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추운 지방에 사는 나무입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쪽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제주도에 뿌리내리고 있는 이상 북쪽으로는 갈 수 없고, 고지대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데 이미 올라갈 수 있는 만큼 다 올라갔기에,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70년 전, 단지 중산간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당시에는 중산간 지역에 사는 사람들뿐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 아무 잘못 없는 이들까지 함부로 죽였다고 합니다) 넋들을 마주하는 것 같았지요.

70년 전 구상나무 숲은 당시 무자비하고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겠지요. 구상나무는 먼 옛날 일어났던 일을 기억하고 그 아픔을 잊지 말아 달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묵직한 생명과 죽음의 당부 앞에서, 힘들어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아픔의 무게를 안고 조용히 침묵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습니다. 백록담에서도, 내려오는 길 에도 구상나무 숲의 외침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이 깊은 당부를 이어받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으며 내려왔지요.

 순이삼촌 문학비와 죽어가는 구상나무 숲. 순이삼촌 문학비는 4·3사건 당시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던 현장을 비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가슴 저며 오는 아픔 담긴 광경이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순이삼촌 문학비와 죽어가는 구상나무 숲. 순이삼촌 문학비는 4·3사건 당시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했던 현장을 비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가슴 저며 오는 아픔 담긴 광경이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 신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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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제주를 더욱 깊이 만나다

숙소로 가기 위해 차에 타려는데 빌린 차가 긁혀 있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뺑소니를 직접 당했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는데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자신이 사고를 냈다며 다가왔습니다. 블랙박스가 있지도 않고, 연락처도 없어 도망갈까 하다 자신도 사고 당한 경험이 있어 그냥 갈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후 사고 수습을 하며 평범한 제주 사람들의 진면목을 마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비용이나 시시비비를 따지기에 앞서 상대방이 어떨지 먼저 살피는 자세였거든요. 자연이 주는 넉넉함 덕분인 걸까요. 아니면 오랜 세월 쌓인 아픔을 이겨낸 사람들에게 깃든 내공인 걸까요. 처음 차를 봤을 땐 마음이 너무 힘들었는데, 사고를 통해 제주 사람들을 깊이 만나 감사했습니다.

차를 견인해서 렌터카 업체로 돌려보내는 길, 견인차 뒷좌석에 앉아 견인하시는 분으로부터 들은 제주살이 이야기가 마음 깊이 남습니다.

"여기는 바닥이 좁아서 길게 보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서로 함부로 대할 수 없어요."

제주의 관계망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무의식에 가까운 인식이, 서로를 우리로 여기며 모두를 지키는 힘으로 든든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낮에 한라산에서 만난 구상나무가 시간을 넘어 우리가 연결되어있다고 말해주었다면, 저녁에 만난 사람들은 제주라는 공간에 두루 걸쳐 우리가 연결되어있다고 일러주었습니다. 그 가르침에 고마움 느끼며, 몸은 피곤했지만 기쁘게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아픔과 상처 넘어 우리 안에 뜬 생명평화 무지개

18일 오전 일정은 다랑쉬오름과 다랑쉬굴이었습니다. 다랑쉬오름은 오름의 여왕이라고 불립니다. 직접 가보지 않고는 그 오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꼭 가야겠다 마음먹었지요.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에 함께하는 분들 중에 같이 가게 된 분들이 있어 수월하게 다녀왔습니다.

다랑쉬오름에 도착하니 전날 맑은 하늘은 온데간데없고, 흐린 하늘과 강한 바람이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제주의 또 다른 면모를 만난 것이지요. 또 다른 제주를 온몸으로 느끼며 다랑쉬오름에 올랐습니다. 한라산에 비하면 높지 않지만, 가파른 기울기로 오르는 길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하지만 힘겹게 오른 만큼 눈앞에 펼쳐진 장관은 더 깊은 감동이었지요.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마을과 밭들, 여기저기 우뚝 솟아 있는 오름들, 저 멀리 바다 너머 보이는 성산일출봉과 우도. 감격스러운 풍광입니다.
 가까이 내려다보이는 마을과 밭들, 여기저기 우뚝 솟아 있는 오름들, 저 멀리 바다 너머 보이는 성산일출봉과 우도. 감격스러운 풍광입니다.
ⓒ 신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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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맑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이것이 제주의 일상에 가깝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름다운 관광지 이면에 깃든 아픔을 날씨가 말해주고 있다 생각하며 다랑쉬굴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다랑쉬굴은 다랑쉬굴이라는 푯말이 없다면 어딘지 알 수 없을 만큼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굴 입구조차 분간할 수 없고, 여기저기 널린 현무암 바위와 무성하게 자란 풀만 가득했습니다. 그 현장 앞에 다다르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운이 감돌았고 누구도 쉽게 입을 열 수 없었습니다.

다랑쉬굴은 참화를 피해 숨어 다니던 인근 마을 사람들의 시신이 발견된 곳입니다. 1992년에 시신 11구가 발견되었지만, 유가족들은 한참 세월이 흐른 뒤인 그때조차도 소리 내어 애도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굴은 급하게 콘크리트로 봉해지고 유골은 화장해서 흩뿌려야했고요. 가슴 아픈 죽음 앞에 침묵하며 예를 갖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침묵은 그날 오후 4·3평화공원으로 이어졌습니다. 생명평화 고운울림 기도순례라는 이름으로 참여한 순례자들이 4·3평화공원에 모였습니다. 행방불명인표석에 모여, 시신을 찾을 수 없었던 희생자들 이름 석 자를 마음에 새겼습니다.

참고 참은 눈물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던 걸까요. 흐리기만 했던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 시원하게 내리지도 못하고 거센 바람과 엉겨 흩뿌릴 뿐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미어지는 마음으로 비바람과 뒤엉켜 넋들과 하나 되어 갔습니다. 그렇게 온 몸과 온 마음으로 하나 되어 갔습니다.

"미움과 거짓을 만드는 대립과 갈등을 풀어주소서.
지치고 어두워진 얼 밝혀 생기로 신명나게 하소서."

이어서 울려 퍼진 징울림. 해원과 치유를 구하는 시간이 시작됨을 알리는 소리였습니다. 깊은 아픔, 넋두리도 풀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사라져야만 했던 이들을 기리기 위함입니다. 구십여 명의 순례길벗들이 따로 걷던 걸음을 멈추고 하나로 모인 자리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여졌습니다. 무지개가 뜬 것이지요.

크나큰 고통만 품은 채 세상을 떠나야했던 넋들에게 깊은 원망만 자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깊은 아픔을 겪었던 이들은 이미 너그러운 가슴으로 이 땅을 품어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죽임의 힘도 결코 앗아갈 수 없는 생명과 평화가 우리 안에 이미 깃들어 있음을 약속 받은 느낌입니다.  그 약속 헛되이 사라지지 않도록,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생명평화 일궈 나가겠습니다.

 행방불명인표석 너머로 뜬 무지개. 순례 길벗들에게 내린 아름다운 선물이었습니다.
 행방불명인표석 너머로 뜬 무지개. 순례 길벗들에게 내린 아름다운 선물이었습니다.
ⓒ 신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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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아이들과 북한산 자락을 산책하며 햇빛과 바람과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공동육아어린이집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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